1. 아이에게 한계 설정하기
아이를 낳고 혼돈의 육아를 보내던 중 운 좋게 부모교육을 받게 되었다.
동시에 각종 육아 전문가들의 책과 영상을 찾아보던 중 공통점을 발견했다.
그것은 '한계 설정'이었다. 부모가 아이에게 한계를 설정해 주면 아이는 그 안에서 편안함을 느낀다는 것이다. 솔직히 처음에 이 말을 들었을 때는 다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의 짧디 짧은 생각에서 한계를 정한다는 건 그만큼 제약이 많아진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한계 속에서 편안함을 느낀다는 것은 독재의 통치를 받으며 자유롭다는 말처럼 모순되게 들렸다.
전문가들의 말인즉,
아이들은 아직 세상을 배워가는 존재들이다. 그런 아이들에게 알아서 하라고 자유를 주면 무엇을 해야 할지 혼란스러울 뿐이다. 그러니 부모가 한계를 설정하고 그 안에서 아이들 마음껏 세상을 탐구하게 하라는 것이었다.
그 사실을 인지한 이후로 적당한 한계를 찾는 것에 고군분투했다. 아이는 계속 자라기 때문에 머리가 커진 만큼 한계설정의 범위가 다양하게 넓어져야 했다.
2. 또다른 한계 설정, 미니멀리즘
한계를 설정하면 편안함을 느낀다, 또는 자유를 느낀다는 이론은 미니멀리즘에 푹 빠지고 나서부터 본격적으로 피부에 와닿았다. 아이가 아닌 나에게 직접적으로 한계를 설정했기 때문이다.
불필요하게 사들인 물건들, 다 읽고 다시 안 보는 책들, 영원히 오지 않을 손님들을 위한 식기들.
이런 것들을 대처분 하고 집이 비어갈수록 내가 사지 말아야 할 것들의 한계가 명확해졌다. 쇼핑몰에 가도 예전보다 덜 휘둘리게 되었다.
귀여워서, 한 번 써 보고 싶어서, 있으면 언젠가 쓸 거 같아서.
이런 다양한 이유로 꼭 필요하지 않은 물건들을 허무하게 사들였다.
지금은 내 마음을 사로잡는 디자인의 물건을 만나도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내가 이걸 조만간 또 처분하겠지.'라는 생각이 먼저 들뿐이다. 정 미련이 남으면 사진을 찍어서 집에 가는 길에 다시 들여다보았다. 그러면 대부분은 역시 안 사길 잘했다는 결론에 가 닿았다.
옷도 거의 매일 비슷한 옷을 입는다. 클래식 콘서트나 모임에 입고 가는 포멀 한 복장도, 집에서 입는 편한 옷도, 운동하러 갈 때 입는 복장도 대부분 고정되어 있다.
스티브 잡스가 매일 같은 옷을 입은 이유는 생각할 에너지를 세이브하기 위해서였다. 나 역시 시간도 감정도 세이브가 되었다. 거울 앞에서 옷을 입었다 벗었다 하면 머리를 쥐어짜고 '입을 옷이 없다'고 한탄할 일이 없어졌다.
3. 불가능할 것 같았던 식단에서의 한계 설정
'한계설정이론'이 이번에 내 마음 속에 큰 획을 그은 것은 설탕, 밀가루, 카페인 끊기가 일주일을 넘기면서부터다.
카페인은 그렇다고 쳐도, 사실 밀가루를 안 먹고사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가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대부분의 음식이 밀가루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2014년 고기 vs. 밀가루 끊기 도전을 하는 여자 개그우먼들을 보여준 예능이 있었다. 나는 그때 밀가루 끊기가 더 힘들거라고 생각했다.
고기 끊기도 힘들지만 밀가루 끊기는 먹을 수 있는 것이 너무 제한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침에 먹는 토스트, 점심에 먹는 라면, 간식으로 먹는 과자. 모두 밀가루로 범벅이 된 것들이 아닌가.
하지만 뜻밖에도 설탕과 밀가루를 끊었더니 오히려 고민할 일이 줄어들었다.
빵집을 찾아다니며 무슨 빵을 먹을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다. 슈퍼에 가도 과자 코너를 서성이지 않게 되었다. 예전에는조금이라도 설탕이 덜 들어간 과자를 고르느라고 시간을 허비하고 마음을 들었다 놨다 감정을 소모했다. 그럴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되려 심플해졌다.
식재료에 있어서 한계를 설정하니 뜻밖의 자유가 생기고 더불어 마음이 편안해졌다. 물론 앞으로 3주 5주 나아가다 보면 난관에 부딪히는 일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생각지 못한 이득들이 계속 생기니 이것을 그만 둘 이유가 없다.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직접 느껴본 '한계설정'은 나에게 평온함을 선물했다. 다음 번에는 또 어떤 종류의 한계설정이 내 삶에 평온함을 가져다줄까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