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밀가루,카페인 끊기 9일 차
아침에 간단히 집안일을 마치고 도서관에 갔다.
이호 교수님의 '살아 있는 자들을 위한 죽음수업'을 뽑아 들고 자리를 잡았다.
어렵지 않게 다양한 사례들을 들어가며 산 자에게 죽음을 가르치는 내용에 푹 빠져들었다.
흥미롭게 책을 읽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11시 반에 가까워졌다.
어쩐지, 집중력이 점점 흐려지더라.
그때, 도서관 근처에 있는 맛있는 치킨 집이 생각났다.
포장해 갈까? 아니면 매장에 앉아서 조금 먹고 남은 걸 싸갈까?
치킨의 유혹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걸 감지한 나는 챗지피티 앱을 열었다.
우리 치킨 먹으러 갈래?
지피티는 단호했다.
지금 그거 먹으면 속이 또 안 좋아질 텐데, 완전히 회복되고 나서 먹는 게 어때? 잘하고 있잖아.
사실 나는 지금 IBS(과민성장증후군) 개선을 위해 지피티의 조력을 받고 있다. 별다른 건 없다. 먹는 것과 관련해서 하소연을 하거나, 식단을 관리하는 다이어트 코치처럼 활용하고 있다.
설탕, 밀가루, 카페인을 끊은 지 이제 겨우 9일 차.
생각보다 빠르게 치킨이 먹고 싶어졌다.
도서관을 나선 나는 터덜터덜 집으로 향하는 길에 슈퍼에 들렀다. 닭안심을 한 팩 구매하고 집에 와서 닭을 씻고 코코넛 파우더를 살짝 입혔다. 약간의 오일을 두른 팬에 구워서 한 입 먹는 순간, 이렇게 맛있을 수가. 감탄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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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에 '선택이론'이 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인간은 자기 자신 뿐이라는 것이다. 모든 것은 우리 자신에 의해서 선택되고 그 선택에 따른 결과는 결국 나 자신이 책임지게 된다.
불행은 잘못된 선택에 따른 결괏값을 책임지지 않아서 발생한다. 내부통제가 가능해지면 그만큼 바람직한 선택을 하게 된다. 물론 치킨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지금 나에게 치킨은 해로운 선택이라는 뜻이다.
심리학자 마크 리어리는 저서 '나는 왜 내가 힘들까'에서 자기 통제에 성공하고 싶다면 일단 1차 방어선을 지키는 데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달콤한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예 달달한 먹거리를 사지 않고, 카드 빚으로 고생하는 사람은 카드를 들고나가지 않는 것이 1차 방어선이다.
치킨의 유혹이 고개를 든 순간, 가족을 먹이겠다는 핑계로 치킨을 포장해 온다면? 그야말로 스스로 1차 방어선을 허물어버린 격이 된다. 그 유혹을 참는 것은 어느 구도자의 고행에 가까운 일이 될 것이다.
자기 통제는 근육과 비슷하다고 리어리는 말한다. 겉바속촉의 육즙 터지는 치킨 대신 내 소화기능이 처리할 수 있는 대체 식품을 선택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근력 운동에 가깝다. 하지만 근육은 쓰면 쓸수록 발달하게 마련이다.
아주 빠르게 치킨이 땡겼지만 그만큼 빠르게 대처할 수 있었던 것은 식단 관리 초반이어서 가능했을 것이다. 사실 당뇨병, 고혈압, IBS(과민성장증후군) 같은 생애주기 질환이 지속적인 관리가 어려운 것은 GOAL이 없기 때문이다.
유지가 관건이긴 하지만 적어도 다이어트는 5킬로 감량, 10킬로 감량이라는 달성할 목표가 있다. 그에 비해 만성적인 질환의 경우 자기 통제의 실험은 한평생 지속된다. 그렇기 때문에 빠르게 대체 식품을 선택하는 순발력과 근지구력을 키워야 한다.
성취하고자 하는 명확한 목표가 없을 때 자기 통제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설, 밀, 카 끊기를 오래 유지하기 위해 뚜렷한 목표를 잡기로 했다.
목표 : 소중한 나를 지키기
내가 언제 나를 이렇게 소중하게 생각해 준 적이 있었나. 기억이 없다. 어쩌면 지금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그저 소중하게 잘 지켜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