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 밀가루, 카페인 끊기 11일차
시작은 장 건강을 개선하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설탕과 밀가루, 더불어 커피까지 끊고 열 하루가 지났다.
수시로 오독오독 씹어대던 과자와 포만감이 들도록 먹던 빵이 뚝 끊겼지만 의외로 외롭지는 않았다.
먼저 회복한 것은 맛을 감지하는 미뢰였다. 고구마나 바나나, 그리고 블루베리의 달콤함에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었다.
하루, 이틀, 날짜가 지날수록 은근한 기대감이 올라왔다.
빵이랑 과자 끊고 열흘 쯤 되면 2kg는 빠져있겠지?
오늘 아침, 체중계에 조심스럽게 발을 디뎠다.
믿을 수 없었다.
단 1kg도 줄지 않은 것이다.
규칙적인 식사 외에 먹어대던 디저트와 간식의 칼로리가 뚝 끊겼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싶었다.
허탈했다. 배신감마저 느껴졌다.
'관둘까?' 하는 충동이 체중감량의 기대를 밀쳐내고 불쑥 솟아났다.
하지만 유명한 다이어트 전문의의 영상을 보던 중 이 요지부동 몸무게의 비밀을 알아냈다.
간 때문이었다. (노래가 귓가에 맴돈다.)
그동안 쓰나미처럼 몰려드는 당을 대사하느라고 간은 지방을 대사하는 법을 잊어버렸다. 사람의 몸은 기계가 아니라 입력값이 달라졌다고 순식간에 다른 결과를 내지 못한다.
영상 속의 의사가 담담하게 말했다.
간이 회복하는 데에는 최소 2주에서 한 달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즉, 나의 간은 지금 업무 인수 인계 기간의 한복판에 있는 셈이다. 회사를 그만 둘 때에도 한 달 전, 아르바이트도 최소 2주 전에는 알려줘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몸은 기억의 집이다. 하루 아침에 새로운 삶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내 몸 속에는 오래된 습관의 의자가 놓여있고, 그 위에 예전의 내가 앉아 있다.
인간은 결코 빨리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진실한 것들은 언제나 느리게 움직인다. 모든 변화에는 밟아 가야 하는 절차가 있다. 그러니 조급해하지 말자고 다시 한 번 나를 다독인다.
몸은 항상 응답한다. 내가 그에게 했던 말과 행동 그대로.
오늘도, 내일도 나는 같은 방식으로 식탁 앞에 앉을 것이다. 나의 간이 새로운 대사를 배울 수 있도록.
그리고 그 배움 속에서 나도 함께 나의 몸을 천천히 배워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