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 밀가루, 카페인 끊기 12일차
간은 업무 인수인계 중
떡볶이와 작별 연습 중
앞서 브런치에 올린 두 개의 글 제목이다.
본의 아니게 현재 진행형인 '중'을 연달아 올리고 나니 내가 지금 어떤 과정의 한 복판을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악을 듣거나 차를 운전해서 앞으로 나아갈 때면 과거와 미래, 지금-여기를 살고 있는 몹시 생소한 감각으로 다가온다.
'지금 이 순간'이 과연 존재하는지, 존재한다면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가 '지금 이 순간'인지 모호한 경계선을 나눌 수 있을지 궁금하다.
브런치의 글쓰기를 누르고 자판을 두들길 때마다 글자들이 화면에 채워진다. 빈 공간이었던 과거가 순식간에 글자로 가득한 과거가 되어 버린다.
미래는 찰나의 순간에 지금을 관통하여 과거가 되어 버린다.
45세를 갓 넘긴 지금, 나는 인생의 중간 항로를 지나고 있다. 막연하게 먼 미래였던 40대의 한 복판에서 나는 계속해서 무엇인가를 진행'중'에 있다.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말은 그저 실패를 다독이는 구호이자 도움이 안 되는 위로라고 여긴 적도 있었다. 어찌되었든 우리 사회에서는 '결과'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달고, 짜고, 자극적인 즐거움만 추구하는 날들(과정)은 기어코 '결과'가 되어 나타나게 마련이다. (과체중, 비만, 간질환, 만성염증, 고혈압 등)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혜원이 생각났다.
영화는 혜원이 고시에 실패하고 도망치듯 찾은 고향에서 사계절을 보내며 자신을 재발견해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나를 돌보는 것을 잊은 현대인들에게 자연과의 조화가 안겨주는 울림을 느끼게 해 준 영화라고 생각한다.
언제부턴가 장바구니는 온갖 가공식품들로 넘쳐났고, 신선한 음식들은 손질이 귀찮은 존재로 평가절하 당했다. 외식과 배달이 용이한 세상 속에서 사람들은 더 편한 것에 쉽사리 몸을 맡겨버린다.
나를 홀대하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막대한 결괏값을 치러야 한다. 몸이 필사적으로 저항하고 나를 공격하는 지경에 이르는 무서운 결말이 그것이다.
우리 인간은 원래 자연을 좋아하는 '자연 속의 유기체'이다. 이것을 외면하고 거스르면 몸은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한다.
하지만 또 몸은 꽤나 관대하여 동아줄을 잡을 몇 번의 기회를 주기도 한다. 예전에 먹었던 달고, 짜고, 매운 인위적인 음식들 대신 나는 오늘도 조금 더 자연에 가까운 음식을 선택했다.
지방이 부족한 거 같아서 연어 회를 방울토마토와 함께 먹었고, 후식으로 몇 알의 딸기를 음미했다. 조미료가 가득했던 음식, 액상과당이 과도하게 들어간 과자들. 내가 살아온 과정 속에 필수불가결한 것들이 이제는 먹거리 리스트의 맨 아래로 재배치되었다.
명상록에서는 말한다.
네가 과거에 겪었고 미래에 겪게 될 온갖 괴로운 일들을 한꺼번에 다 생각하지 말고, 현재 네가 당면한 일에만 집중해라.
외식을 영원히 안 하고 살겠다는 말은 아니다. 불가능함에 압도되어 다시 쉽게 나를 풀어버리는 실수를 번복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현재 겪고 있는 과정인 지금을 생각하고자 한다. 내가 지금 당면한 일은, 홀대했던 내 몸을 보듬어 주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나를 돌보며 오늘도 '살아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