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 위의 내비게이션
법의학자 '이호'교수님의 책 '살아있는 자들을 위한 죽음수업'에서 고백을 하나 하신다.
나는 내비게이션을 좋아한다.
그 이유는 내비게이션은 잘못된 길로 들어섰으니 다시 돌아가라는 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비게이션의 "새로운 경로를 탐색하겠습니다."라는 말이 교수님의 가슴에 박힌 것처럼
우리도 인생을 내비게이션 같은 태도로 살면 좋겠다는 말씀이 내 가슴에 박혔다.
설탕, 밀가루, 그리고 카페인을 끊은 지 이제 2주가 지나갔다.
디저트로 즐기던 과자를 먹지 못하니 냉장고를 기웃거리며 입가심 거리를 스캔했다.
딸기 한 톨이라도, 바나나 반 개라도 기어이 먹어야 직성이 풀렸던 시간이 지나고 나니 달콤함을 갈망하는 마음도 조금씩 잦아들었다.
어제는 모르겠지만 오늘은 분명히 세 끼 모두 디저트를 먹지 않았다.
일부러 참은 것이 아니다.
먹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7할을 넘어가니 안 먹는 쪽으로 쉽게 기울어졌다.
요즘 세상은 병원에서 분만을 하니 아이들이 태어나는 시간과 날짜는 대체로 정확하다.
몇 날, 며칠, 몇 시, 몇 분 몇 초.
과거, 분명히 나는 디저트를 먹지 않는 사람이었다.
대체 몇월, 며칠, 몇 시부터 꼬닥꼬닥 디저트를 챙겨먹는 사람으로 둔갑한건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점진적으로, 침습적으로 디저트에 스며들었고 어느새 디저트는 본식과 간식의 자리까지 당당하게 내놓기를 요구했다. 이놈들은 마치 남의 둥지를 빼앗는 뻐꾸기의 새끼 같구나.
식사 후에는 안절부절 뭐라도 마려운 강아지처럼 달콤한 디저트를 찾던 마음이 잦아드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요즘 몸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며 다양한 정보를 접하게 되었다.
밀가루가 소화가 잘 안된다는 말이야 많이 들어봤지만
밀가루 불내증이라는 말은 처음이었다.
불내증이 여기에도 붙는구나.
나는 유당 불내증이 있다.
라떼는 나에게 나쁜 남자와도 같다.
먹고 싶지만 먹고 나면 속이 시끄러워지고 괴로워진다.
가만히 돌이켜보니 밀가루를 먹고 내 몸에 생겼던 일들은 구구절절 밀가루 불내증을 가리키고 있었다.
빵, 과자, 라테.......불내증인 주제에.......
아귀가 맞지도 않는 톱니바퀴를 매일 가열차게 돌려야 했으니, 나의 장이 파업을 선언할 만도 하다.
건강하게 먹는 법을 잊고 매끈하지만 그 끝에 각종 성인병이 도사리고 있는 길을 질주했다.
나는 지금 식탁의 경로를 '재탐색'하고 있다.
설탕과 밀가루, 각종 초가공 식품들로 범벅이 된 길에서 빠져나와 새롭게 찾은 길로 나아가기 위해 오늘도 애쓰고 있다.
그저 이 결심과 행동이 한 여름밤의 꿈처럼 일시적인 이벤트로 종결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호 교수님의 말이 나의 식습관 개선에 큰 힘을 불어넣어 준다.
후회하고 괴로워할 시간에
그저 새로운 최적 경로를 찾아
뒤돌아보지 않고 새 길로 가면 좋겠다.
돌아보지 말고 새 길로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