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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당 안하는 여자

by 진재

젊은 시절 나는 밀당을 잘 못했다.

쉬운 여자는 아니었지만 남자를 애달프게 구워 삶는 여자는 더더욱 아니었다.


밀당을 잘 하는 사람은 자기 관리가 잘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쉽게 엎어지지도 않고 뚝 잘라내지도 않고 적당한 텐션을 두고 관계의 거리를 설정하는 기술자와 같다.


젊은 시절 남녀 사이의 밀당을 잘 못했던 것처럼 나와 내 몸과의 관계, 나와 음식과의 관계에서도 나는 번번이 밀당에 실패했다.


유독, 꾸준히, 오랫동안 애착을 갖고 있던 과자가 있다.

그건 바로 땅콩향과 버터향이 은은하게 풍기는 마가레트다.


많고 많은 과자들 중에 나는 왜 마가레트에 애착을 넘어 집착을 했을까 생각해 보았다.



어린 시절 엄마는 토스터기에 마가레트를 구워주셨다.

식빵이 세로로 들어갔다가 박진감 있게 튕겨 나오는 토스터기가 아니라 누워서 들어가는 오븐 토스터기였다.


엄마, 나, 동생 몫까지 토스터기 안의 그릴 위에는 마가레트가 가지런히 정렬하고 있었다.


땡, 하는 소리가 나면 엄마는 오븐의 문을 열고 집게로 마가레트들을 집어 차례로 접시에 옮기셨다.

마가레트는 마치 자기가 갓 구워낸 쿠키인 양 흐물거리면서 버터향을 뿜어댔다.


어찌나 뜨거운지 바로 집어 먹을 수 없었다.

갓 구운 쿠키인 척 하는 녀석이 한김 식으면 우리는 기다렸다는 듯이 하나씩 집어 바삭하고 베어 물고 부드러운 속을 음미했다.

이미 수십년도 전에 '겉바속촉'의 맛을 실현하신 '맛잘알' 나의 엄마였다.


어른이 되어서도 나는 마가레트를 그냥 까먹기 보다는 오븐에 구워서 먹었다.

그때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집게로 마가레트를 접시에 옮겨 담고 뜨거운 흥분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세월이 지나도 변함없는 '겉바속촉'의 맛. 엄마를 생각나게 하는 맛. 어린 시절로 회귀하는 듯한 맛.


그랬다.

마가레트를 먹는 건 '맛'의 이면에 숨어있는 '정서적 충족감' 때문이었다.

어른이 되고 결혼을 해 타지에 나와 살면서 나는 돌아갈 수 없는 아주 먼 곳으로 떠나온 기분이었다.

어딘가 허전한 기분이 들 때마다 마가레트를 먹으면서 헛헛한 심리적 허기를 달래주었다.


사실, 우리가 느끼는 허기의 최소 1/4이상, 어쩌면 반 이상은 '심리적 허기'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다이어트에 일시적으로 성공을 해도 요요가 생기는 것은 '몸의 항상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심리적 허기'를 채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겨울과 봄에 먹어치운 마가레트는 과연 몇 박스일까.

그렇게나 많은 마가레트를 먹어치울 만큼 심리적 공허감을 느꼈다고 생각하니 스스로가 측은해졌다.


생각 끝에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몸 뿐만 아니라 마음, 근본적인 허기를 보살펴 줘야 다시 마가레트를 광적으로 뜯어 먹는 일이 없겠구나.


방법은 역시 알아차림이다. '허기'가 느껴질 때 이것이 진짜 배고픔인지 '정서적 허기'인지 잘 관찰을 해야 한다.


정서적 결핍은 (가루)(분)의 대상이 아니다.

밀가루와 당분으로 헛헛함을 채우는 것은 아주 일시적인 위안이 될 뿐이다.


몸은 내 정서를 반영한다.

오늘에서야 내가 왜 그렇게 밀당을 조절 못했는지 이해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그리고 더 단단해짐을 느꼈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계속 밀당하지 않는 여자로 남기로 했다.

(가루)(분)에 쉽게 속을 내어주지 않는 내면을 보듬어주는 단단한 여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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