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 밀가루, 카페인을 끊은 지 3주가 지났다.
허무하다.
끊기 전에 두려워하고 기대했던 연옥의 모습과는 전혀 딴판의 매일을 보내기 때문이다.
입에 촥촥 감기는 맛도리들을 끊으면 엄청난 고통이 기다릴 거라 예상했었다. 하늘의 구름이 바닐라 아이스크림으로 보이고 동네 빵집에서 풍기는 빵 냄새가 나를 미친 듯이 유혹할 거라고 믿었다. 아이가 먹겠다고 사다 놓은 초콜릿을 나의 다른 인격이 부지불식간에 튀어나와 먹어치울지도 모른다는 망상도 해봤다. 그리고 나는 말한다.
"제가 안 먹었어요."
하지만 그런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처음 며칠간의 두통과 무기력을 빼고는 너무 살만하다.
"이게 네 사랑의 전부니?"
내가 즐겨 먹던 과자와 빵들이 눈을 흘기며 따지고 묻는 것 같다.
빵, 과자, 떡볶이, 피자, 라면
손쉽게, 게다가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있는 음식들은 하나같이 밀가루와 설탕으로 똘똘 뭉쳐있다. 지난 삼주 간 나와 비슷한 처지, 이 맛있는 음식들에 사로잡힌 중년 여성들의 영상을 찾아봤다.
밥 먹기 귀찮아서 과자로 대충 때우기, 먹고 돌아서서 또 먹기, 먹어도 먹어도 배고프다고 또 먹기.
그녀들이 걱정되는 한편, 그 모습이 내 모습이었다고 생각하니 나 자신이 안쓰러웠다. 건강한 식습관으로 개선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했다. 선생님들도 보수교육을 받듯이 어른도 식습관 교정을 받을 필요가 있다.
설탕, 밀가루, 카페인을 끊은 김에 스위치온 다이어트를 시작했고 이제 일주일이 다 되었다.
금기식품들을 미리 끊어 놓고 식단도 순한 맛으로 조절을 해 놓은 덕에 아직까지는 크게 어려움 없이 순탄하게 진행 중이다.
첫 3일은 하루 네 번 단백질 쉐이크를 먹고, 4일 차부터는 점심 한 끼가 허용된다. 그리고 3번의 단백질 쉐이크를 섭취해야 한다.
시어머니께서 작년에 주신 선식에 들어있던 쉐이커를 다시 꺼냈다. 물을 붓고 단백질 가루를 한 숟가락 크게 떠서 쉐킷쉐킷 섞다 보니 옛 기억이 떠올랐다.
아이를 출산하고 모유를 오래 먹이지 못했다. 빠르게 젖이 말라버렸기에 분유가 아기의 주식이 되었다. 단백질 쉐이크를 섞고 있자니 아기에게 분유를 타 먹이던 그때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그래, 내가 나를 다시 키우는구나.
세상에 갓 태어난 아이들은 엄마 젖 밖에 모르고 자란다. 이유식을 먹게 될 때도 라면부터 주지 않는다. 아기의 소화기관이 충격을 받지 않도록 점진적으로 먹을 수 있는 식품의 가짓수를 늘려나간다.
입맛은 학습된다. 즉, 배울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몇 년간 귀찮다는 이유로 인스턴트 음식에 의존하며 점점 더 자극적인 맛을 딥러닝해왔다. 획기적인 변화가 필요했고 그래서 스위치온 다이어트를 선택했다.
스위치온 다이어트는 단순히 체중을 감량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프로그램이 아니다. 지금껏 생존을 위한 식사를 넘어 탐닉에 가까운 먹부림을 해 왔다면, 이 습관을 삭제하고 식습관을 개선하는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일주일 동안 시간에 맞춰 분유(단백질 쉐이크)를 먹는 나를 보니 거대한 아기 한 명을 키우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제대로 돌봐주지 못한 몸집만 큰 아기였다. 달콤하고 매콤한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려고 했지만 오히려 그것은 몸에 더 큰 스트레스를 주고 있었다.
중년이 되니 나를 돌보는 일에 관심이 많아졌다. 마음을 돌보는 일에 몇 년간 많은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그러다 보니 몸을 돌보지 않고는 마음을 돌볼 수 없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실제로 설탕, 밀가루, 카페인을 끊으면 정서가 안정된다고 한다. 혈당이 안정되면 감정 기복이 줄어들고, 도파민 분비의 균형이 회복되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양질의 수면은 전반적인 기분 조절 능력을 향상시켜 주기 때문이다.
마음이 먼저냐, 몸이 먼저냐,라는 어려운 질문을 나에게 한다면 '몸이 먼저'라고 과감하게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몸을 돌볼 줄 아는 사람이 자신의 마음도 돌볼 수 있다.
오늘도 몸집이 커다란 아기에게 분유를 먹이며 건강한 식습관이 무엇인지, 왜 음식을 조절해야 하는지 알려주려고 한다. 앞으로 남은 3주는 새로 태어난 아기를 한 명 돌보는 마음으로 나를 소중하게 키워주는 시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