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수난 성지 주일] 환대의 시작

앞장서서 예루살렘으로 오르는 길을 걸어가셨다. (루카 19,28)

by 어엿봄

예수님께서 앞장서 나아가신다. 그분은 당신에게 어떤 일이 닥칠지 아시면서도 뒷걸음치지 않으시고 수난과 죽음을 향해 걸어가신다. 군중은 올리브 가지를 손에 들고 마치 임금을 맞이하듯 환호하며 그분께 고개를 숙였다. 그들의 기꺼운 환대는 곧 무자비한 심판으로 바뀔 것이다. 예루살렘 그리고 그곳에 새겨진 하느님 백성의 역사에 예수님이 걸어 들어가신다. 나라는 예루살렘 성전을 허물기 위해 나의 죄를 겪어내신다. 그렇게 나를 통과하시며 수난과 죽음에 순종하시어, 끝내 새 생명을 지어내실 것이다. 이 가장 거룩한 때, 성주간의 시작에 그렇게 예수님은 나에게 들어오시고 나를 끌어안으신다. 환대를 하는 자는 내가 아니라 그분이다. 그분이 팔 벌려 반갑게 안아주는 내가 오늘의 예루살렘이다.


나는 성문을 열어 그분을 맞이하고 싶었다. 그분이 통과하는 문, 그 안의 도시에는 나의 고통이 서려있다. 하느님을 따르기 위해 분투했던 시간들이 그려져 있다.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고민하고 따져냈던 매서운 생각의 마디들이 새겨져 있다. 내 고집과 편견으로 상대를 밀어내고 못 박았던 과거가 펼쳐져있다. 내가 옳았기에 용서할 수 없어 내뱉던 고함이 또 한편으로는 무고하게 맞으면서 속으로 삭인 분노의 외침이 아직도 성안을 배회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예루살렘은 온갖 장식과 보물로 치장한 도시였으니 그것은 내가 힘써 얻어낸 내 역사의 결과물이었다. 하느님이 살아야만 하는, 억지로라도 그분을 붙들어 앉혀야 하는 그리하여 이 세상의 온갖 악을 심판하시라고 종용하는 내가 살고 있는 곳이다. 이곳에 머무르기가 참 아프다. 그런데도 예수님이 들어오신다. 흐트러진 질서를 바로 하고 죽지 않을 생을 틔우기 위해 오시는 그분이 내 고통을 통과하시겠단다. 깨끗하고 맑아진 새 예루살렘에 기쁨과 평화가 넘치게 하여 진정한 환대를 살게 하시려고 그분이 오신단다.


성안의 주민들에게 눈길이 간다. 한 번도 제대로 마주한 적 없었던 그들의 얼굴을 본다. 그 얼굴이 담아내는 고통과 아픔 그리고 기쁨과 행복을 느낀다. 우리의 예루살렘은 치유될 것이다. 새 예루살렘 성전에서 주님께 찬미와 영광드릴 그날을 기다린다. 이제 때가 가까웠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드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분께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이름 앞에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자들이 다 무릎을 꿇고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모두 고백하며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게 하셨습니다.

(필리 2,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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