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이 주는 유익
아침 출근길에 항상 설교를 들으며 운전하고 온다.
35분 정도 설교를 듣다 보면 벌써 부대에 도착했다.
오늘은 또 어떤 말씀을 주실지 기대하며 운전대를 잡는다.
오늘 말씀은 "고난당한 것이 유익이다."
고난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찾아온다.
그 고난을 어떻게 대하는 가는 두 부류로 구분된다.
첫째는 고난을 정말 유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3개월 전 어떤 간부가 몰래 지휘관실에 쪽지를 두고 간 적이 있었다.
그는 내가 대대장을 시작했을 때부터 지켜보고 있었다.
자신이 생각할 때 대대장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을 몇 가지 적었다.
쪽지를 보고 누구일까 고민해 보고, CCTV도 돌려보았다.
누구인지 찾으면 그 간부는 얼마나 불편하겠는가?
퇴근하면서 쪽지를 받은 것과 간부들을 힘들게 했다면 미안하다고 단체톡방에 사과의 글을 올렸다.
그 간부의 생각이 맞고 틀리고 따지기 보다, 대대장을 누군가 관심 갖고 지켜보고 있음을 알게 했다.
"문제를 만들려고 하면 안 걸리는 사람이 없다."
그 간부 덕분에 다른 부대와 비교하지 않게 되었고, 사적 이익이 되는 것 하지 않고, 인격적으로 문제 되는 공개하지 않으며, 공개적으로 질책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3개월이 지나서 감찰부에서 정기 부대진단을 했다.
그 간부가 고난을 준 덕분에 특별한 것 없이 지나갔다.
오늘의 말씀처럼 고난이 유익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둘째는 고난을 유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A병사는 몽유병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군에 입대해서 신교대대 훈련을 마치고 부대로 전입 왔다.
군 생활이 즐거운 병사가 어디에 있겠는가?
힘들지만 국방의 의무를 다하며 군이 주는 유익을 누려야 한다.
군 생활에 대한 의지가 부족하니 몽유병도 더 크게 다가왔다.
정신과에 3개월 동안 입원도 했지만, 통제된 생활을 견디지 못했다.
군 생활 절반이 지났지만 결국 현역복무부적합 전역했다.
고난은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서 인생의 길은 달라진다.
시편 119:71절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