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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탁의 용기

나에게 누군가 부탁한다면

by 시절청춘

얼마 전 밖에서 저녁식사를 했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술자리를 가졌었다.
그것도 20년 정도 차이가 나는 후배와 둘이서..

지금도 그렇지만, 그날은 내가 많이 피곤했고, 피로가 풀리지 않아서 신경이 다소 예민해져 있던 때였다.(물론, 핑계일 수도 있지만..)​


아무튼 그날은 퇴근시간쯤 갑자기 찾아와 후배가 자기 차로 퇴근을 하자고 했다. 갑작스러운 말에 이유가 있는지 물었다.
"요즘 출장도 많이 다니시는데, 오늘은 특히나 많이 피곤해 보이는 것 같아서 제가 모시고 퇴근하고 싶어서 그럽니다."라고 했다.(우린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다.)
잠깐 망설였지만 나도 그날은 정말 운전대를 더 이상 잡고 싶지 않아서 "그래 고마워"라고 말했고, 그 차로 퇴근을 하게 되었다.


퇴근길 차 안에서는 내일 아침 출근을 위한 출발시간과, 오늘 후배가 진행했었던 일들에 대한 진행 상황과 결과들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10여분쯤 가다가 후배 녀석이 다소 주저하는 듯하다가 갑자기 묻는다.
"혹시 저녁식사 어떻게 하실 겁니까"
"왜? 집에서 먹겠지.."라고, 대답한 뒤 후배를 바라봤다.
"아닙니다. 시간 되시면 같이 저녁 식사 할 수 있을까 해서 여쭤봤습니다."
"아내랑 아기는 어떡하고? 집에 빨리 가야 되잖아. 왜? 집에 무슨 일이라도 있어?"
후배 녀석은 이제 돌이 갓 지난 아이의 아빠이다 보니, 매일 집과 직장만 왔다 갔다 하기 바빴고, 회식이 있어도 며칠 전부터 얘기를 하고서는 참석하는 친구였기에 다소 의아했었다.
"가족이 오늘 아이 데리고 친정을 가서, 온전한 저 혼자만의 시간이라서 식사같이 하고 싶어 그랬습니다."라고 말하며 내 눈치를 살피는 듯 주눅이 잔뜩 들어 보였다.(거절이 두려워서였을까?)
얼굴을 보며 잠깐 생각을 하다,
"그래, 그러자."라고 말을 해 주었다. 순간 후배의 표정이 밝아지는 것을 보니, 기분은 좋았다.


"다른 사람들도 불러도 되겠습니까?"라고 하길래
"같이 밥 먹고 싶은 사람 있으면 연락해. 나야 상관없으니까."라고 말을 해 주었다.(혹시나 부담감 가질까 봐서였다.)
다소 밝아진 얼굴로 다른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때가 6시 어간이었던 것 같다.
"누나 뭐 해?"
"저녁 먹으려고 밥하고 있지?"
"나랑 같이 저녁 먹을래요?"
"나 밥 먹었는데.. 빨리 얘기를 해주지.. 근데 누구랑 먹는데?"
"청춘님이랑 먹는데, 예전에 셋이서 같이 먹었던 기억이 나서 전화를 했어. 닭갈비 먹으려고 하는데 안 나올래?"
"음.. 아니야.. 두 분이서 많이 드셔.. 나는 저녁 먹었으니까.."
"그래, 알았어. 미안해. 쉬어 누나."
전화가 끊기기 전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에는 아이가 엄마에게 나가냐고 묻는 듯했고, 엄마는 안 나간다고 하는 듯했다.
전화를 끊는 후배 표정이 다시 침울해지길래
"그냥, 아무에게도 전화하지 말고 둘이서 먹자."라고 얘길 했다. 후배는 알겠다고 하면서도 못내 아쉬웠는지, "제가 한 달 전쯤 마지막으로 밖에서 식사한 게 청춘님과 누나 그리고 저, 이렇게 세명이었고, 그날 너무 즐거웠었던 기억이 생각나 다시 한번 그렇게 만났으면 어떨까는 생각에 전화를 했던 겁니다."라고 말을 했다. 늦게 얘기했으니 어쩔 수 없는 거라며 결국 둘이서 식사를 하러 갔다.


1차에서 닭갈비에 소주를 2병 정도 마시고, 집으로 오는데, 낯선 가게가 오픈을 해서 호기심에 들어가 2차를 마셨다. 2차에서는 닭똥집에 소주 1병을 마셨다.

다음날 생각해 보니, 그날은 후배가 자신의 자유로운 하루저녁을 위해 외식을 하는 자리에 나를 데리고 간 거였는데, 결국 후배는 내 스트레스에서 나온 푸념들을 받아준 것처럼 돼버린 하루였다.

왜 이 얘기를 이렇게 주절주절 적고 있는 것이냐면, 이 후배를 보면서 내 모습이 조금씩 보여서 마음이 착잡했었기 때문이다.
그날 나에게 말을 할 때나, 다른 친구에게 전화를 할 때 주저하면서도, 억지로 용기를 냈었고, 대화나 통화하는 내내 너무나 눈치를 보고 있다고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정말 거절이 두려운 듯한 모습으로...
누군가에게 그런 부탁의 말들을 많이 해보질 못했으니, 자신감은 없어 보이고,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주저주저하다가 말을 꺼내는 것이 확연하게 느껴졌었다.
옆에서 그런 모습들을 직접 보고 있다 보니, 너무 미안하기도 하고, 어찌 보면 안쓰럽다고 까지 느껴졌었다.
"다음부터는 그냥 밥 먹고 싶으면 언제든지 얘기해라.. 대신 조금만 일찍.."이라고 말을 하면서 힘을 실어줬지만, 계속 주저주저하던 모습이 눈에 밟힌다.​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어주고, 부탁을 한다는 것은 나름 상당한 용기를 내고 있음을 말한다. 이 후배가 내게 밥 먹자고 말하기 전에 주저했던 것은, 내가 평소에 '너네 직급의 친구들과는 사적인 자리를 만들어서 밥을 먹지는 않을 거다.'라고 공공연하게 말을 했던 것이 이유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슷한 직급에 있던 두 세명에게서 실망을 하다 보니(혼자만의 판단 기준에서) 내가 그런 말을 했던 것이다. 후배는 그런 내용들을 알고 있다 보니, 말을 하면서도 거절을 당할 수 있다는 전제를 깔아 두고 어렵게 용기를 냈었던 것 같다.

누군가 나에게 부탁을 한다면, 큰 부담이나 무리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는 애써 거절하지 않으려고 한다. 누가 됐던지 간에 부탁해 오는 그 사람의 용기에 찬사를 보내며, 가능한 범위 내에서는 그냥 들어주는 것이 옳다는 생각으로 생활해 나가련다.

#부탁 #용기 #거절 #마음은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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