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3월 09일 >>>
우리 손자 주안이(=케이시, Casey)는 내달에 두 돌이다. 사내라서 좀 늦는지 아직 완전한 문장은 말을 못하고, 핵심 단어 30개 정도를 필요에 따라 하나씩 툭툭 내뱉는다. 그런데 궁즉통(窮則通)이라 했던가, 위기에 처한 주안이가 필사(必死)의 “문장” 구사 노력으로 그 위기를 탈출한 사건이 있었다. 지난 토요일 아침 8시 반, 베이비시터 크리스털(Crystal)이 집에 왔고, 주안이는 그녀를 보자마자 “바이크(bike)”를 연발했다. 빨리 자전거 타러 나가자는 것이었다. 페달 없이 두발로 땅을 번갈아 짚어서 가는 자전거다. 성화에 못 이긴 크리스털은 정신 없이 옷을 입히고 헬멧을 씌워 주안이를 데려나갔다. 주말이라 다들 약간 늦게 일어난 탓에 주안이는 그때까지 아무 것도 안 먹은 상태. 하지만 주안이가 “빈속”이라는 말은 미처 누구도 크리스털에게 못해 주었다.
시계는 어느새 정오. 주안이 생후 최장시간 밥을 굶었을 상황. 크리스털에게 막 전화를 해 보려던 참에 대문이 활짝 열렸다. 노련한 “땅 짚기”로 주안이가 먼저 입장. 그 뒤로 크리스털이 따라 들어오는데, 왠지 만면에 희색이 가득했다. 아니나다를까 나랑 눈이 마주치기가 무섭게 그녀는 수다를 떨었다. 밖에 나가면 좀처럼 집에 가기를 싫어하는 주안이. 그런데 그런 주안이가 먼저 집에 가자고 했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오른손 다섯 손가락 끝을 뾰족하게 모아 입에 넣는 시늉을 반복하며
“케이시 홈 이~트. (Casey home eat.)”
라는 말을 몇 번이나 하더라는 것이었다. 어쩌다 지 사진을 보고 “Casey!”라고는 해도, “home”과 “eat”는 완전히 처음 사용한 단어. 우리는 모두 손뼉을 치며 환호했다. 그날 점심에 주안이는 시래기국에 밥을 두 번이나 말아서 허기를 채웠고, 맨 끝에는 “어~어! 캬~!” 하며 국물까지 다 마셨다. 까딱하면 굶어 쓰러질 뻔했던 고비를 지혜롭게 넘긴 우리 주안이. 비록 문법은 틀렸어도, “Casey home eat.”는 주안이 생애의 “첫 문장”으로 내 역사책에 공식 기록돼 있다.
우리 아들 도근이는 세심한 연구, 많은 인내와 노력 끝에 얻은 “5대 종손”이다. 이처럼 공들여 낳은 놈이 두 돌 갓 지나서 처음으로 문장을 지어 한 말은
“아빠가 주먹으로 때렸다.”
였다. 바라던 아들 얻었다고 내가 얼마나 장난을 많이 치고 쥐어박는 시늉을 많이 했으면, 하하, 그 어린 것이 그런 불만을 다 토로했을까? 문장 “내용”이 썩 자랑스럽지는 못해도, 나는 집이 떠나라고 소리쳐 아내에게 알렸고, 평생 그 감격을 잊지 못한다. 그런 반면, 지 누나 수연이는 “첫 문장”으로 언제 무슨 말을 했는지 전혀 기억이 없다. 대신 또렷하게 기억하는 사건이 따로 하나 있다. 수연이가 한 살 반쯤 됐던 내 유학 초기, 하루는 학교 마치고 집에 갔더니 아내가 말했다.
“여보, 수연이가 A부터 Z까지, 0부터 9까지, 그리고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 부호까지 다 알아요.”
말 떨어지기가 무섭게 내가 쏘아붙였다.
“니는 다 좋은데 과장이 늘 좀 심하데…… 말도 잘 못하는 아~가 그런 걸 어째 안단 말이고?”
이 장면이 어제처럼 생생한 것은, 너무 통렬히 내 “상식”이 빗나갔기 때문. “그럼 직접 한번 시켜 보라”며 아내는 냉장고에 자석으로 붙여진 그 알파벳, 숫자, 연산부호들을 가리켰다. 설마 했는데 진짜로 수연이는 뭘 가져오라 하면 가져오고, 뭘 읽어 봐라 하면 다 읽었다. 영어의 “O”와 숫자 “5”의 발음도 구별하여 했다. 한글 “오” 자(字)도 하나 만들어 넣었더니, 그 셋을 다 정확히 구분해서 발음하는 것이었다. 애들이 철들 때까진 그저 멍한 줄로만 난 생각했었다. 그렇게 일찍부터도 배움과 깨침이 가능한지는 꿈에도 몰랐었다. 그래서 수연이 두 살부터는 한글도 가르쳤고, 네 살부터는 구구단도 가르쳤다. 그리고 그 즈음부터 시카고대학 근처의 몬테소리(Montesori)를 보냈는데, 영어가 서툴렀을 텐데도 금세 “채터박스(chatterbox, 수다쟁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집에 오면 또 쉬지 않고 한국말을 조잘조잘, 너무 시끄러워 도저히 참기 힘들 땐 가끔 벌도 줬다.
“수연이, 5분 동안 말하지 마!”
그러면 즉시 입을 다물긴 하는데, 5분을 다 채운 적은 없었다. 3분이 거의 한계. 지칠 줄 모르는 그 명랑한 입술은 어느새 시냇물처럼 졸졸졸…… 끝없이 또 무슨 사설인가를 펼치는 것이었다.
자손 넷 중에 --- 딸 수연, 아들 도근, 손녀 하솜, 손자 주안 --- 내가 가장 많이 “키운” 아이는 하솜이(=시몬, Simone). 코로나로 온 세상이 난리였던 2020년 10월생이다. 당시 딸과 사위는 집에 갇혀 재택근무를 했고, 그들 일하라고 나는 날만 새면 우유와 기저귀를 챙겨 하솜이를 유모차에 태워 나갔다. 샌프란시스코 언덕길들을 하루 4km에 300일만 잡아도 1200km (=샌프란시스코와 LA 왕복거리). 생후 14개월을 그처럼 많이 쏘다녔으니 유모차 바퀴 생고무가 다 닳은 것도 그리 놀랄 일은 아니었다. 그런 “밀착” 돌보미를 하던 어느 날, 마침내 나는 하솜이의 “첫 문장”을 들었다. 하솜이 돌 때쯤, 차를 몰고 나갔다가 귀가하여 차에서 다 내렸는데, 보니까 바니(bunny) 인형이 뒷좌석 밑에 떨어져 있었다. 내가 얘기하자, 아내가 차 뒷문 안으로 몸을 숙여 그걸 꺼냈다. 그랬더니 하솜이는 양 무릎을 약간 굽힌 채 마치 절규하는 연사(演士)처럼 두 주먹을 불끈 쥐고선
“I do it! (내가 해요!)”
하고 얼굴이 벌겋게 되도록 소리쳤다. 그리고는 그 인형을 빼앗아 도로 뒷좌석 깊숙이 던져 넣고는, 낑낑거리며 차 안으로 기어올라가 기어이 “제 손으로” 다시 끄집어내 오는 것이었다.
한 돌짜리가 그렇게 감정을 실어, 짧지만 그런 완전한 문장을 구사하다니, 우리는 입이 딱 벌어졌다. 질색을 하며 완강히 어른의 도움을 뿌리치는 그 자립심 또한 놀랍기 짝이 없었다. 아무튼 그렇게 14개월 “봉사”를 마치고 한국 갔다가 21개월에 다시 와서 보니, 하솜이는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 찬송도 혼자 불렀다. 제각기 다른 26개 단어로 된 쉽잖은 가사를 끝까지 다 외는 것이었다. 또 놀랄 일은, 누가 재채기를 하면 “(God) Bless you!” 하는 것이었다. 흔히 하듯 “갓(God)”은 묵음(默音)으로 했다. 처음 서너 번은 내가 헛들었거니 했다. 기저귀도 안 뗀 애기가 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소리가 계속 들려서 보니까, 재채기마다 하솜이는 진짜로 그렇게 혼잣말을 하는 것. 지 아빠의 습관을 옆에서 보고 배웠겠지만, 그래도 1년 9개월 아이치고는 참 신기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이듬해, 내가 뉘 집 아이를 들먹이며 “걔는 전학했다면서 왜 거기 와 있지?” 하고 딸한테 물은 적이 있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하솜이가
“on a special occasion (특별한 일이 있어서)”
그날 하루만 온 거라고 답을 대신했다. 2년8개월짜리가 흔히 할 수 있는 말은 아니었다.
이처럼 하솜이의 언어구사력이 점점 놀라움을 더해 가자 나는 호기심이 생겼다.
“2012년 샌프란시스코 벤쳐 대회 2등팀 미국청년들조차 ‘Sue가 말을 너무 잘해서 1등을 뺏겼다’고 했으니…… 수연이는 어려서는 물론 커서도 말을 잘한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과연, 옛날의 수연이랑 지금의 하솜이, 이 둘은 누가 더 말을 잘할까?”
나는 한국에 가자마자 강남의 문정동에 있는 아날로그-디지털변환 서비스 회사를 찾았다. 그리곤 30년도 더 된 VHS 테이프 일곱 개를 개당 3만원에 맡겼다. 서로 34년 간격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굳이 비교를 하자면 어느 아이의 입이 더 야무질까…… 며칠 뒤, 디지털 변환 파일 7개가 담긴 USB를 받아서 틀어 본 비디오. 즉시 “판정”이 나왔다. 그리고 승부는 하나가 아니고 둘이었다.
1. 옛날 수연이와 지금 하솜이 --- 무승부!
2. 우리 부부와 수연/사일러스 부부 --- 우리 부부 KO패!
그 엄마에 그 딸, 누가 더 낫다 못하다 할 것이 없었다. 동영상 속의 종알대는 수연이는 지 딸 하솜이랑 완전 똑같았다. 단, 그 “부모”들 수준이 확 격차가 나는 것이었다. 진정 비교/연구해야 할 대상은 애들이 아닌 어른들. 내 어찌 이를 상상이나 했으랴?
수연이의 세 살, 네 살 때 비디오들을 보면, 부모는 거의 있으나마나다. 수연이 혼자 놀고 혼자서 온갖 수다를 다 떤다. 유일한 예외는 우리가 한글, 구구단 등 뭘 “가르칠” 때뿐. 그 외엔 기껏 하는 말이, 안 된다, 하지 마라, 위험하다, 조심해라, 시끄럽다, 조용히 해라 등등. 그런데 쭉 돌이켜보니, 수연/사일러스의 방식은 정반대였다. 그들은 항상 함께 놀아 주고, 끊임없이 아이랑 “대화”를 했던 것이었다. 특히 사일러스의 육아는 감동 그 자체였다. 알아듣든 못 알아듣든 그는 늘 아이에게 속삭이고, 차근차근 설명해 주고, 질문도 하고, 의견도 묻고, 대답도 거들어 주었다. 어른이 아이보다 열 배는 더 말이 많았다. 또 하솜이가 말을 시작하자, 그는 초인적 인내심으로 그 모든 “Why? Why? Why?”를 다 친절히 답해 주었다. 예를 들면, 아빠도 피곤하니 그만 자자, 아빠는 왜 피곤해?, 아빠도 사람이니까, 왜 아빠는 사람이야?, 아빠는 원래부터 사람이야, 왜 아빠는 원래부터 사람이야?...... 우리 같았으면 벌써 “시끄럽다, 입 다물고 자라!” 했을 타이밍. 그는 결코 아이를 윽박지르거나 무시하거나 강제하지 않았다. 끝까지 조근조근 다 말로 하고, 적절한 비유로 이해시키고, 스스로 하도록 기다려 주었다. 그러니 하솜이가 수연이보다 훨씬 어휘가 풍부하고, 논리적이고, 말이 어른스러운 것은 너무 당연지사. 단, 그 원인이 아이보다는 부모에게 있는 것이었다.
한 번은 하솜이가 우유, 계란 등 아침밥을 많이 먹고 M&M 쵸콜릿 세 알을 상으로 받았다. 그런 뒤 우리가 아이 둘을 차에 태워 박물관에 데려가던 중, 주안이가 우연히 그 쵸콜릿을 봤다. 칭얼거리는가 싶더니 금방 울음 소리가 들렸다. 콩알 만한 쵸콜릿 하난데 설마 주겠지 하고 우리는 별 생각 없이 하솜이를 달랬다. 세 개 중에 하나만 동생한테 주라고 했더니 네 살짜리 하솜이 왈,
“쵸콜릿은 프로틴(protein, 단백질)을 먼저 먹고 먹는 거예요. 케이시는 아침에 프로틴을 안 먹어서 안 돼요.”
내 것이니까 못 준다는 유치한 변명이 아니고, 집안의 룰과 과학적인 근거를 대며 당당히 밝힌 거부의사. 우리는 말문이 막혔다. 우리 식으로 억지로 뺏어서 주고 나면 단숨에 만사형통! 그러나 우리도 몇 년 본 바가 있어 그렇게 안 하고, 간곡히 하솜이에게 부탁에 부탁을 거듭했다. 그리고는 생각은 잘 안 나지만 “추후 엄청난 보상”을 약속하고서야 겨우 그 한 알을 얻어냈다. 강압적으로 했으면 2초면 될 것을, 그 60배의 시간인 2분간의 울음소리와 설왕설래 끝에 겨우 종료시킨 상황. 비록 시간은 걸렸어도, 논리, 원칙, 룰, 대화, 설득, 타협이 풀(full)로 작동한, 전형적인 선진국 형(型)의 해프닝이었다.
우리 민족은 똑똑해도 성질이 급하여 멀리 못 내다본다. 그러니 허구한 날 경제를 논하고 매사에 돈을 최고로 여긴다. 똑똑한 만큼 이제 현명해질 때도 됐다. 경제가 아니라 사람, 돈이 아니라 말이다. 이 기본을 늘 염두에 두고 내 집의 자식교육, 나라의 100년 대계를 구상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