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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부부, 동상이몽의 동지 (간증문)

by 김지민

2016년 >>>


제목: 부부, 동상이몽(同床異夢)의 동지

발표일: 2016년 (부부학교 봉사자 간증)

발표 장소: 진새골 온누리교회

발표자: 김지민


안녕하십니까? 저는 김지민입니다. 저희 부부는 재작년에 이 부부학교를 수료했습니다. 그리고는 여기 진새골 교회의 교인이 됐습니다. 많은 남편들처럼 저도 평생 아내를 힘들게 했었고, 부부학교를 통해 그만큼 뉘우친 바 또한 컸습니다. 기간은 짧지만 지난 2년, 그 뉘우침을 행동으로 보여 준 것이 타의 모범이 된다 하여, 일종의 “모범수 자격”으로 이 자리에 세워 주신 것 같습니다. 낭독 중에 과격한 표현이나 저속한 용어구사는 100% 저의 것으로서, 천성이 온유하고 평소 품위를 중시하는 제 처와는 전혀 무관합니다. 또한 그것은 수준 높은 온누리교회와도 전혀 무관함을 미리 밝혀 드립니다. 아무쪼록 저의 이 생생한 사례가 여러분의 부부화합과 가정평화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저는 일찍부터 지극히 보수적인 여성관을 갖고 있었습니다. 연애 2년 반, 결혼생활 30년을 제 아내가 과연 어떻게 살았을지는 다음의 계명들이 잘 말해 줍니다. 여성분들에겐 정신 나간 소리로 들리시겠지만, 남성분들에겐 입가에 회심의 미소를 자아내는, 주옥과 같은 명언들일 것입니다. 몇 가지만 소개하겠습니다.


1. 여자는 견해가 없다.

2. 여자는 태어난 것만 해도 죄다.

3. 남자의 모든 잘못은 여자의 부덕한 소치다.

4. 여자는 있어도 없는 듯, 없으면 불편한 듯한 존재가 돼야 한다.

5. 여자는 할 말이 있어도 3분 참고, 3일 참고, 결국 안 하는 것이 제일 낫다.

6. 여자의 기본자세는 반무릎 자세, 늘 “제가 하겠습니다!” 하며 벌떡 일어설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7. 남자가 걸으면 여자는 뛰고, 남자가 서면 여자는 걷고, 남자가 앉으면 여자는 서고, 남자가 누우면 여자는 앉고, 남자가 자면 여자는 눕고, 남자가 깨면 여자는 깨 있어야 한다.


참고로, 이 계명들에서 “남자”와 “여자”만 서로 바꿔 넣으면, 그것이 변화된 지금 제 모습입니다.


이렇듯 완고한 제가 이 사람을 만난 것은 1983년 5월 5일 어린이날, 어느 고스톱 판에서였습니다. 첫 대면부터가 “돈 따먹기”라는 불순한 동기에서 비롯됐고, 또 천사 같이 이상적인 여인을 손수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망상에 제가 사로잡혀 있었고, 그리고 또 이 사람의 고집이 원래 만만치 않았던 탓에, 저희는 만나면서 줄기차게 싸움만 했습니다. 그래서 늘 저는 마음 속으로 “아, 연약한 여자 하나 손아귀에 넣는 일이 이렇게도 힘든가......” 탄식하며 반드시 이 사람을 제압하고야 말 것을 다짐하고 또 다짐했습니다.


이것이 과장이나 농담이 아닌 것은, 결혼 전 처가에 인사 갔을 때 처삼촌과 나눈 대화가 증명해 줍니다. “그래, 자네 어떻게 해서 우리 경희와의 결혼을 결심하게 됐는가?” 자랑스런 조카딸의 칭찬이 줄줄 나오기를 기대하시던 순간, 상상초월의 제 대답은 이러했습니다. “네, 연애로는 도저히 시간이 모자라서 평생교육을 작정하고 결혼을 결심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이처럼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죽을 때까지 한번 해 보자.” 하며 출발했습니다. 그리곤 30년 세월이 흐른 지금 무조건항복을 선언하며 이 글을 낭독하고 있습니다. 그 항복이란 당연히 아내를 향한, 제 잘못의 시인과 반성과 깊은 사과를 뜻합니다. 하지만 전혀 불필요한 싸움에 그 아까운 시간들을 허비했구나 하는 자괴감은, 그 무엇보다 뼈아프고 절실한, 제 스스로를 향한 항복입니다.


저를 이렇게 무릎 꿇게 만든 것은, 부부학교 때 신종곤 목사님 부부의 “피플퍼즐(People Puzzle)” 강의에 나오는 “차이”라는 단어였습니다. 조목조목 아름답기만 한 제 계명을 하나도 안 지키는 아내를 “천하에 못된 여자”로만 여기던 것을, “못된 게 아니고 그냥 좀 다른 건가?” 하고 다시 생각하게 만든 것이었습니다. 따지고 보니, 아, 정말 그랬습니다. 제 아내는 나쁜 여자가 아니라, 나처럼 자신만의 소중한 계명들을 가슴에 품고 사는, 나와는 “매우 다른” 사람일 뿐이었던 것입니다. 사실 이 사람이 진짜 심성 고약한 여자였다면 분명히 그 증거가 있었을 텐데,


1. 그 흔한 고부간의 갈등 한 번 없었고,

2. 자식들 양육도 그릇되게 했어야 할 것인데 그런 증거가 안 보이고,

3. 친구, 교우, 이웃간에도 불협화음이 있었을 것인데 그렇지 않았고,

4. 사람은 몰라도 하늘이 아실 것이므로 벌을 주셨을 텐데 그것도 아니고,

5. 분노, 경멸감, 증오심 등 정신적 불편 외에는 내 의식주가 너무 편안했고......


따라서 “못된 여편네”라고 늘 욕하고 윽박지른 것은 지극히 충동적이고 주관적인 것이었음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랬습니다. 평생 그 수백 차례 싸움의 원인은 “나는 빨강이 좋은데 너는 왜 흰색이 좋으냐?”는 식의 기호의 차이 내지 가치관의 차이에 불과했습니다. 얼마나 요란하게 싸웠으면 미국에 살 때는 경찰차가 올 때도 있었고, 사는 집마다 석고 보드 벽에 뻥뻥 구멍이 났습니다. 맨손으로 집도 지으시는, 타고난 목공이신 어느 목사님께서 항상 그 흠집들을 때워 주셨는데, 그때마다 하시는 부탁은 “예수 믿으세요”가 아니고 “주먹 안 다치게 조심하세요”였습니다. 이처럼 저는 성격 급하고, 눈치 없고, 자존심 강하고, 융통성 없는, 못난 사람이었고, 그것은 상당 부분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돌이켜보면 부부간의 불화뿐 아니라 사업실패 또한 인간 덜된 것이 원인이었습니다. 감사하게도 부부학교에서 이처럼 뒤늦게라도 깨달음을 얻어, 이제 최소한 부부싸움이란 단어는 제 사전에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왜 싸울 때마다 그토록 이성을 잃었는지, 그 수수께끼는 최근에 다 풀렸습니다. “꼭 잘못했다 말을 해야 잘못한 줄 아나......” 무슨 대화 중에 아내가 중얼거린 이 말이 무려 30년 만에 제게 중대한 힌트를 준 것입니다. 돌아보면 그 수많은 싸움 끝에 사과는 항상 제가 했지, 아내는 조금도, 단 한 번도, 굽힌 적이 없었습니다. “미안하다” 말이 도저히 안 나오는 특이 체질이었던 것입니다. 사실 피플퍼즐에서 저희는 둘 다 주도형이 나왔는데, 얌전한 요조숙녀로 만드려고 했던 바로 그 여자가 주도형이라니, 저는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도 간신히 주도형인 저보다 훨씬 막강한 “왕주도형”임을 알고는 거의 졸도할 뻔했습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제가 30년을 촐랑댔던 것입니다.


아무튼 집집마다 벽에 구멍이 난 것은 모두 아내의 그런 고집이 제 부족한 인격과 핵융합 반응을 일으킨 결과였습니다. 옛날 같았으면 그런 말 끝에 또 난리가 났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렇지, 니 같이 못된 인간 입에서 미안하단 말이 나오나? 고래 힘줄보다 더 질긴 그 고집, 남자를 잡아도 수백 명은 잡겠다!” 하며 난리를 쳤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아내의 그 혼잣말을 못들은 척했습니다. 그리고는 속으로 “사람은 누구나 다 극복 안 되는 부분이 있지. 나도 마찬가지고, 이 사람도 일종의 그런 거겠지. 원래 타고나기를 그렇게 타고나서......” 하며 조용히 삭이고 말았습니다.


사실 부부란 서로 다를 수밖에 없는 존재들입니다. 남자는 세상을, 여자는 남자를 바라보는, 엇갈린 시선의 동반자입니다. 남자는 큰 영광을, 여자는 작은 행복을 꿈꾸는, 동상이몽의 동지입니다. 하지만 서로 이해하기 힘든 부분은, 일단 이해하려고 들기만 하면, 모든 것이 이해되고 설명될 수 있습니다. 가령 아내가 가끔 가슴에 맺히는 말을 하면, 저는 요즘 이렇게 정리하고 넘어갑니다. “옛날의 나 같았으면 이럴 때 여지없이 이단옆차기 나가는 타이밍 아닌가? 이를테면 이 사람도 지금 자신이 가진 최상의 무기인 '말'로써 나를 공격하고 있는 셈 아닌가? 그 무기가 말이기에 망정이지 만일 나보다 센 주먹이었다면 나는 벌써 요절나지 않았겠는가? 아, 정말 감사하다!”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또 설사 아내가 매일 지하철에서 소매치기를 하고 온다 해도, “야, 미쳤나? 잡혀서 감옥 가고 집안 망신시킬 일 있나?” 하고 고래고래 소리치는 대신, “여보, 요즘은 불경기라서 좀 힘들지? 나쁠 때가 있으면 또 좋을 때도 있겠지.” 하고 부드럽게 위로하고, 스스로 돌아설 때를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부부학교 이후 저는 이처럼 크게 변화되었고, 실제로 다음과 같이 몇몇 위기들을 극복했습니다.


작년 초, 84세의 저희 어머니께서 갑자기 쓰러지셔서 아내랑 부산에 내려갔습니다. 그 전에 이미 아버님도 13년째 중풍이시라, 참으로 암담했습니다. 입원이 얼마나 길어질지도 모르고 해서, 부모님 근심을 조금이라도 줄여 드리고자 아내에게 제안했습니다. “여보, 아버지가 내 사업에 보태 쓰라고 주신 1억이 그대로 있으니 절반만 내놓자.” 그랬더니 아내 왈, 이제 곧 전세만기가 되는데, 전세가격이 너무 올라서 그렇게 하면 형편없는 집에 이사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자기는 내일의 영광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기보다는 지금 하루하루를 아름답고 행복하게 살고 싶으니까, 차라리 헤어지자고 했습니다.


시어머니께서 사경을 헤매고 계시지, 중풍 앓으시는 시아버지 계시지, 4대종손 맏며느리로 시집 와서 한 번도 시부모님을 안 모셨지, 또 무엇보다 그 돈은 전세와는 아무 상관 없는 돈이지...... 아무리 따져 봐도 그 상황에서 여자가 그런 말을 할 수는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게 도대체 인간인가, 악마인가? 이걸 때려쥑여야 되나, 찢어쥑여야 되나? 옛날 같았으면 아내의 그 말이 채 문장을 끝맺기도 전에, 제 몸이 공중부양하며 적의 급소를 강타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부부학교 졸업생인 저는 "아, 안 되는구나!" 하고 힘들었지만 깨끗이 단념했습니다. “들어올 때는 맘대로 들어와도 나갈 때는 절대로 맘대로 못 나간다”는 돈에 대한 확고한 그녀의 철학은, 사안이 아무리 더 위중하다 해도 절대로 안 바뀔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집사람은 5천만 원이 아닌 천만 원을 내고는 도로 서울로(진새골로) 올라가서 이사 갈 집의 수리를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처가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이 판국에 집수리가 다 뭐꼬? 시부모 병간호를 지가 해야지 어째 김서방 자네가 하노? 내가 그레 안 키웠는데, 가~가 미쳐도 단단히 미쳤네. 이혼하자 하면 그냥 해 뿌라, 김서방!” 장모님, 처이모님, 처제, 동서, 모두가 한목소리로 집사람을 성토했고, 저는 한동안 세상에 둘도 없는 천사 대접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참 야박한 것이 세상인심, 그 “찐”하고 뜨겁던 전우애는 딱 한순간에 가더니,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아이고, 우리 경희가 큰소리칠 만도 했네. 이레 좋은 데가 세상에 또 어데 있노? 그 더운 여름에 차도 없이 혼자서 이 큰 집 다 수리한다꼬 진짜 고생 마이 했겠네.” 몇 달 뒤 진새골 저희 집을 와서 보신 장모님과 처이모님은 그렇게 아내 편을 들며, 마치 다 씹은 껌처럼 저를 버리셨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외로운 개척자 제 아내는 누가 뭐라든 꿋꿋이 살 곳을 마련했고, 그 덕에 저는 지금 지상천국에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 시간 되시면 이 교회 단지 안에 있는 저희 집을 꼭 한번 방문해 주십시오. 한국에서 그보다 더 좋은 곳은 없습니다. 맑은 날은 맑은 날대로 아름답고, 눈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날은 그런대로 더더욱 운치가 있습니다. 혹시 부부싸움 하시면 같이 오십시오. 반드시 회복돼서 가실 것입니다.


그러다가 8월이 되어 저도 올라갈 때가 됐는데,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체력회복을 위해 매일 드셔야 하는 쇠고기를, 제가 없으면 돈이 아까워 어머니께서 못 사 드실 게 뻔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30년 만에 처음으로 제가 월급에 손을 댔습니다. 은행에 가서 매월 백만 원씩을 어머니께 자동이체 시킨 것입니다. 그리고는 불안한 마음으로 문자를 보냈는데 답변인즉슨, “이제 좀 살 만하니까 또 사고를 치나? 더 이상은 못 살겠다, 당장 이혼하자! 그리고 30년 동안의 가사노동비 10억 원도 내놔라.” 하는 것이었습니다. 역시 옛날 같았으면 바로 달려가서, 홍콩 액션영화를 방불케 하는 환상의 육박전을 또 한판 벌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업그레이드 부부학교 출신답게 저는 그 길로 조용히 일어나 은행으로 갔습니다. 그리고는, 전전날 야심만만하게 사인(sign)했던 그 모든 문서들을 다 폐기시켰습니다. 소위 “3일 천하”로 끝나 버린 소리 없는 반란이었습니다.


한번은 친구에게 천만 원을 빌려주고는 잊어버렸습니다. 한참 세월이 지나 집사람이 말했습니다. “당신이 알면 시끄러울 것 같아서 내가 조용하게 처리했다. 몇 번 전화해서 빨리 갚아라 했는데 도저히 안 갚아 주길래, 매달 10만 원, 20만 원 할부로 해서 몇 년 만에 다 받아 냈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또 언젠가는 중요한 부부동반 약속에 시간이 촉박한데 아내가 없어졌습니다. 웬일인가 전화해 봤더니, 동네 노인들 꼬셔서 보약 팔아 먹는 약장수 트럭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데, 준다 준다 하던 계란 한 판을 두 시간째 아직 안 주고 있다며, 미안한데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제 아내는 얼마나 알뜰한지, 일 년에 한두 번 가는 미장원도 저 달동네 무허가 미용실을 갈 뿐 아니라, 옷은 늘 헌 옷을 고쳐 입습니다. 저희 동네 삯바느질 가게 아주머니는, 제가 아내 옷을 찾으러 가면 어김없이 아내 칭찬을 합니다. “보니까 돈이 없어서 그러시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정말 배울 점이 많습니다. 옷 갖고 오실 때마다 제가 늘 배우고 또 배웁니다.” 이상의 몇몇 사례들만 봐도, 5천만 원이 일시에 나간다, 또는 백만 원이 매월 나간다 하는 건, 아내에게 있어 "이혼"이 아니라 "무기징역"에 해당하는 중대 사안입니다. 그렇다면 돈에 대해 피도 눈물도 없는 이러한 성향은 그 뿌리가 어디에 있을까? 이어지는 에피소드들이 답해 줄 것입니다.


새해 담뱃값 대폭 인상이 임박했던 재작년 2014년 말, 저희 장모님께서는 천리행군을 하셨습니다. 위절제 수술을 받아 위도 없으신 8순 노인께서, 한 가게에서 한 갑씩밖에 안 주는 담배를 그 엄동설한에 몇 시간을 걷고 또 걸어 무려 스물 두 갑을 구입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새해 아침, 장모님을 모시고 사는 제 손아래 동서에게 스무 갑, 즉 두 보루를 내밀며 인상된 값을 요구하셨습니다. 그러자 처제가 옆에서 “엄마, 담뱃값이 너무 올라서 이 사람 인자 담배 끊었다.” 하며 능청을 떨었습니다. 그러자 장모님 왈, “아니, 자네, 그런 게 어디 있나? 어제까지만 해도 피우지 않았나? 그렇게는 안 되네. 이것만 마저 피우고 끊게!” 그렇게 장모님은 몇 만원 이문을 남기고 그 담배를 강매하셨습니다. 그리고 남은 두 갑은 꼭꼭 묻어 두셨다가, 동서가 한밤중에 담배가 떨어져 다급해질 때마다 낱개로 한 개피씩 고가에 팔아, 더 많은 추가 이문을 남기셨습니다.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 예리한 손익분석과 기회포착, 신속근면한 실행력, 위기를 극복하는 적절한 억지와 권모술수. 누가 이런 장모님을 잘못됐다 할 수 있으며, 그 피를 이어받은 제 아내를 또 누가 감히 손가락질할 수 있겠습니까? 죄가 있다면 조상님들이 죄요, 같은 논리로 수천 년을 더 거슬러올라가 보면, 결국 천지만물을 지으신 이가 좀 유별난 DNA를 이들 혈통에 부여하여 인류발전을 도모하신 것 아니겠습니까? 실제로 이 포기를 모르는 악착같은 DNA는 그 외손녀에게 또 한 대를 더 내려갔습니다. 그리고는 무일푼에서 창업 4년 만에 전세계 회원수 5백만 명의 수학/과학 사이트를 탄생시켰습니다. 현재 가치는 우리 돈으로 천억 원. 궁극적인 목표는 1조 원짜리로 만들어 나스닥에 상장시키는 것. 그 목표달성이 얼마나 갈급하면 결혼식 웨딩드레스 보러 갈 시간도 없다며 환갑 다 된 엄마를 대신 입어 보라고 보내니...... 이런 것을 보더라도 뭔가 남다르다, 유별나다 하는 것은 나무라고 억누를 것이 아니라, 한없이 존중해 주고 또 장려해 주어야 할 일 아니겠습니까?


부부가 서로 다르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가, 여기 또 하나의 사례가 있습니다. 저희 어머니께서 올 3월에 또 입원하셨다가, 두 달 만에 억지로 퇴원은 하셨는데, 이번엔 작년과 달랐습니다. 사람도 못 알아보시고, 시간도 방향도 분간 못하실 뿐 아니라, 무엇보다 음식을 못 드셨습니다. 85세 노인께서 큰 병 끝에 정신도 없으시고 곡기도 끊으시고 이틀간 늘어져 계신다. 다음 순서는 너무 뻔하지 않습니까? 어쩔 줄을 모르고 발을 동동 구르던 차에, 마침 집사람이 서울에서 내려왔습니다. 사정을 듣더니 복약지도서, 즉 병원에서 준 처방내역을 좀 보자고 했습니다. 병원약이 좀 많아 보이긴 했어도, 내가 내 손으로 그걸 어떻게 한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 못하고 있었던 터였습니다.


그런데 집사람은 눈도 깜빡 안 하고 4페이지 분량의 빽빽한 처방전과 하루 스무 알도 더 되는 약들을 번갈아 보며 대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이거 필요 없고, 이것도 안 드셔도 될 것 같고. 이건 또 뭐 이런 걸 넣어 놨어? 이것도 빼고......” 하더니 마침내 자신의 처방을 내밀며 이렇게만 드리라고 했습니다. (참고로, 이 사람은 미술전공입니다.) 옛날 같았으면 제가 어떻게 했을지 눈에 선합니다. “이게 지금 미쳤나? 야, 니가 의사가? 약사가? 니는 무식한 게 나설 데나 안 나설 데나 꼭 이렇게 나서네.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다 도로 갖고 온나!” 하며 무안을 줬을 것입니다. 하지만 대형 종합병원의 이름난 내과과장과 한갓 가정주부에 불과한 아내, 이 둘 중에 저는 주저 없이 아내를 택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께서는 바로 그 다음날부터 눈에 띄게 회복되셨습니다. 마침내 3주 뒤, 어머니께서 저랑 가사도우미 아줌마랑 셋이서 고스톱 한판 치자 하실 정도로 회복되시는 걸 보고는, 저도 짐을 싸고 2개월 간병생활을 마감했습니다.


사경을 헤매시는 시어머니의 약을, 딸도 아닌 며느리가 손댄다는 것,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의 아내가 그랬다면 어떻게 하셨겠습니까? 남편 여러분, 아내가 매사에 자기견해가 분명하고, 고집불통이고, 도저히 꺾이는 법이 없다면 불평하지 말고 감사하십시오, 하늘이 복을 주신 겁니다. 무지개가 일곱 색깔이듯, 다르다는 것은 그만큼 아름다운 것이고, 다르다는 것은 풍성하고 발전적인 것이고, 다른 그것이 바로 복입니다. 여러분과 너무나 다른 아내의 바로 그 차이점이, 장차 늙고 병들었을 때 여러분을 지탱해 주는 힘이 될 것입니다. 늘 아내를 인정하고, 칭찬하고, 아내에게 양보하고, 아내에게 힘을 실어 주고, 아내 말은 전부 맞다 해 주고, 그냥 아내가 하자는 대로 다 하십시오. 평생 모아 봐야 한 움큼도 채 안 되는 행복, 그냥 아내에게 다 몰아 주십시오. 아내를 우습게 보며 30년을 불행 속에 살다가, 아내를 무섭게 보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평화를 얻은, 살아 있는 샘플이 여기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혹시 여러분 중에 이런 분 계십니까? “누워서 침뱉기라 차마 말을 못해서 그렇지, 내 와이프야말로 진짜로 ‘다른’ 것이 아니라 ‘나쁜’ 여자다. 직접 안 겪어 보면 모른다. 세상에 이만큼 치사하고 이기적이고 지독한 여자는 없다. 내가 미쳐서 안 날뛰는 것만 해도 기적이다.” 네, 그런 남편은 더욱 하늘에 감사하십시오. 실제로 그런 아내는 존재하지 않겠지만, 혹 만에 하나라도 있다면 그 남편은 하늘로부터 특별히 택하심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을 큰 인물 만드시기 위해서 최고의 강적을 붙여 주셨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데도 아닌 바로 안방에 딱 들여 놓고, 하루도 안 쉬고 연단시켜 주시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그런 악처 한 사람만 이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하고, 극복할 수 있다면 세상 어떤 사람과도 화평할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어떤 일에도 성공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인격적으로도 만인의 칭송을 받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어떤 남편은 이렇게 말씀하실지도 모릅니다. “이론은 근사한데, 그런 좋은 세월 보기도 전에 홧병 나서 죽어 버리면 어떻게 합니까? 그 억울함은 누가 보상해 줍니까?” 아, 그렇게 되면 그건 더더욱 감사할 일입니다. 온 천지에 선교사만 많고 순교자는 없는 이 때에, 그렇게 해서 돌아가시기만 한다면 여러분 가문에 그만한 영광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또 저기 하늘나라에서는, 역사상 가장 억울하게 죽으신 예수님께서 맨발로 뛰어 나오셔서, "수고했다, 장하다, 그 아픔을 내가 안다!" 하며 여러분을 위로하고 반겨 주시지 않겠습니까?


남편이 절제하고 인내하면 아내가 기쁘고, 아내가 기쁘면 자식들도 덩달아 기쁘고, 자식들이 기뻐야 가정이 살고 나라가 살고 민족이 생존하고 미래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많은 수치스러운 통계에서 한국의 세계 1등은, 잡다한 이론과 화려한 설교들이 이미 힘을 잃었음을 증명합니다. 입술이 아닌 몸을, 땀이 아닌 피를, 삶이 아닌 죽음을 요구하는 준엄한 하늘의 꾸짖음입니다. 남편 여러분, 순교하십시오.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썩으십시오. 폼나게 대형교회의 파송을 등에 업고 외국은 못 갈지라도, 구석구석 각자의 집을 자신의 순교지로 알고, 거기서 입술 깨물고 인내하며 나름 억울한 희생을 당하십시오. 먼 훗날 역사는 이렇게 기록할 것입니다. "최초에 서양의 선교사들은 전하다가 죽었고, 그 뒤에 우리의 남편네들은 행하다가 죽었다"고 말입니다.


제가 부부학교도 하고, 정신 똑바로 차리고 세상을 다시 보니, 남편이 아내보다 잘난 집은 단 한 집도 없습니다. 세월이 갈수록 남자는 아집만 늘고, 반대로 여자는 지혜가 더욱 자라 갑니다. 그러니 웬만하면 조용히 돈이나 벌면서 아내에게 다 맡기고, 참견도 조언도 하지 마십시오. 행여나 아내가 많이 잘못됐다 해도, 남자는 결코 여자를 바꿀 수 없고, 힘으로는 더더욱 꺾을 수 없습니다. 창세 이후 수천 년, 우리 인간이 오죽 뻣뻣했으면 전능하신 하나님조차 항복하고 십자가를 지셨겠습니까? 오직 위로와 격려와 사랑과 희생만이 답입니다. 그 옛날 2천 년 전, 예수께서 몸으로 보여 주신 그 방법 외에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성경에도 “피차 복종”하라고 했습니다. 남편 여러분, 부디 아내에게 순종하십시오. 그것이 곧 하늘에 순종하는 길이요, 거기서부터 여러분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기 시작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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