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10일 >>>
우리 부부가 미국 딸한테 오면 사위, 손녀손자까지 식구가 총 여섯. 아침에 1등으로 깨는 나는 6시 반에 2층으로 올라간다. 내 주요 임무의 하나인 식기 세척/정리정돈을 위해서다. 식구들 아침잠 방해할까 봐, 일찍 일어나도 꼭 그 시각에 올라간다. 집은 1층 손님방을 우리가 쓰고, 3층 방 세 개를 딸네가 쓰고, 2층에 부엌, 응접실, 집무 공간이 있는 구조다. 살금살금 계단을 올라가 부엌에 들어서면, 불을 켜고 곧장 식기세척기 문을 연다. 밤새 완벽히 건조가 된 모양은 언제나 기분 만점! 그때부터 “운동”이 시작된다. 삐그덕거리는 마루 소리, 딸그락거리는 그릇 소리 없이 조용히 꺼내고 챙겨 넣자면 단전(丹田)에 꽤 힘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각종 요리기구, 용기, 그릇, 접시, 냄비, 프라이팬, 양푼, 병, 수저, 포크, 나이프, 물컵, 커피잔, 안 깨지는 재질의 아동식기 일체…… 딱 20분 숨 죽이고 온몸에 용을 쓴다.
이렇게 세척기가 비워지면, 싱크대에 있는 그릇, 포크, 컵 등을 집어넣을 차례. 딸네 식구가 밤참을 먹은 흔적이다. 음식이 묻은 것은 한 번 대충 헹궈서 두면 좋은데, 그런 배려는 기대하기 어렵다. 내가 다 헹궈 넣어야 된다. 음식이 말라붙은 것은 물에 담가 뒀다가 나중에 수세미로 씻고 넣는다. 싱크대까지 못 오고 식탁에 그대로 있는 것들도 같은 요령으로 처리, 끝으로 식탁을 닦는다. 그러면 대충 시계가 7시. 그새 올라온 아내가 손녀 도시락을 싸서 넣고, 나는 4인분의 커피를 내릴 시각이다. 30초간의 격렬한 원두 분쇄 소음은 일종의 기상나팔! 7시40분 발(發) 애들 통학 밴(van)이 올 때까지 40분 남았다는 신호가 된다. 그러면 3층에서 애들 양치 소리가 들리고, 곧 하솜이와 주안이가 재잘재잘 아빠랑 내려온다. “하이! 굿모닝! 좋은 아침!” 반가운 인사들이 오가고, 사위는 아이들 아침을 준비한다.
이 와중에 누구든 손이 먼저 가는 사람이 두 돌 된 주안이의 기저귀를 갈고 옷을 입힌다. 물통, 일일 리포트, 그날 여벌 옷, 한 주간 침대시트, 보름치 기저귀 등 주안이 준비물은 100% 내 담당이다. 네 살 반 된 하솜이는 지 엄마가 머리도 빗기고 옷도 입힌다. 가끔은 할머니가 한다. 그런데 이 40분 보내기가 늘 그리 녹록하지만은 않다. 아니, 거의 매일 무슨 변수가 있어도 있다. 애들이 늦잠을 잔다든가, 양치질을 안 하려 한다든가, 싸워서 하나가 운다든가, 꾸물꾸물 늦장을 부린다든가, 공연히 떼를 쓴다든가, 밥을 잘 안 먹는다든가, 학교 가기를 싫어한다든가…… 이런 것들을 어떻게든 다 수습, 애들을 데려 나가 차에 앉히고, 안전벨트 매 주고, 백팩(backpack)과 함께 실어 보내면 임무 완수! 밴이 떠나고 집에 들어가 2층으로 올라가면, 사위가 만세를 부른다.
“Yay, we did it again today! (예이, 오늘도 해 냈어요!)”
한바탕 폭풍우를 지나 보낸 상큼함이다.
아이 둘이 그렇게 10시간 집을 떠나면, 어른들도 바쁘다. 사위는 3층, 딸은 2층에서 재택근무 시작. 나는 아침 먹은 식기 치우고, 쓰레기통 비우고, 그날 회사일 체크. 아내는 부엌 치우고, 집안 청소 하고, 장볼 것 있나 보고, 내 회사일의 분량에 따라 장보기/외출 계획을 세운다. 아내랑 안 나가거나 심부름이 없거나 하면, 나는 시카고대학 도서관에 앉아서 일을 한다. 그리고 낮시간을 어떻게 보내든, 오후 5시가 되면 마음이 바쁘다. 애들이 5시20분쯤 오기 때문이다. 밴이 도착하면 짐 챙겨서 데려 들어오고, 신발/외투 벗겨 정리하고, 다음 날 준비물 체크하고, 좀 놀아 주다가 식탁에 앉힌다. 그러면 사위의 선창으로 --- 놀랍게도 요즘은 두 살배기 주안이의 선창으로 --- “Amazing Grace (어메이징 그레이스)” 찬송을 부른다. 하루 중 가장 귀한 1분, 여섯 명 모두가 “하나 되는” 순간이다. 그렇게 애들 저녁을 먹이고, 세척기 돌려 놓고 공원 데려가서 같이 놀고, 자전거 태우고, 집에 와서 사위가 애들을 재우면 하루가 끝난다.
주말, 또는 주중의 저녁, 베이비시터가 오면 당연히 큰 힘이 된다. 하지만 대체로는 이것이 미국에서의 나의 하루다. 가끔 아내에게 탄식 반 농담 반 말한다.
“아! 지금쯤은 사장이나 회장 같은 것을 하고 있어야 되는데……”
그러면 어김없이 아내가 쏘아붙인다.
“아이구, 수연이는 젊으니까 하지, 당신은 지금 나이에 그런 거 하면 머리 터져요! 얼마나 좋아요? 매달 직원들 월급 줄 걱정 없지, 때 되면 꼬박꼬박 월급 들어오지. 오래 살고 싶으면 조용히 주어진 일이나 열심히 하세요!”
질책인지 충고인지, 늘 대사가 거의 똑같다. 그래도 진정 위로가 되는 예수의 말씀이 하나 있다.
“지극히 작은 일에 충실한 사람은 큰 일에도 충실하고……”
나 비록 그 “큰 일”은 영영 못 볼지 몰라도, 내일도 오늘처럼 작은 일, 더 작은 일에 충실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