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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난 배부른 느낌이 싫어요

by 김지민

2025년 8월 29일 >>>


오늘은 기분 상쾌한 날, 체중이 66.9를 찍었다!


나는 대학시절만 해도 체중이 55kg밖에 안 나갔다. 태권도 시합마다 밴텀급 계체량을 통과했으니, 하하, 그냥이 아닌 “공인(公認)” 55kg. 이후 결혼하고 유학 가서는 앉아서 공부만 한 탓인지 어느새 62. 공부 마치고 직장생활/사업 하면서는 완전히 고삐가 풀려 67. 그러자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 입술 깨물고 선언했다.

“이 67이 나의 마지노선!”

그리곤 내 나태/방만의 무게 67-55=12kg을 뼈저리게 자책하며 지난 10여 년, 나름 처절하게 싸웠다. 푸쉬업, 계단 오르내리기, 등산, 단식, 간헐적 단식, 걷기, 맨발걷기...... 그런데 하나같이 "대충", 또는 “하다 말다” 해서 그랬나? 점점 67의 방어가 힘들어지는가 싶더니, 최근엔 뻑하면 69, 과식하면 70. 급기야 이달부턴 기록(記錄)을 시작했다. 매일 기상 즉시 계체량, 수치를 적고 "체중 그래프"를 업데이트, 그걸 보며 자극을 받자는 취지였다. 효과가 좀 있었는지, 오늘 마침내 66.9를 봤다. 실로 오랜만에 소수점 앞에 66이 온 것이다.


아침마다 행하는 이 계체량의 궁극적 목표는 그 수치를 67 미만에 안착시키는 것. 잠시 한 번씩 반짝 66을 보려고 중노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평소 늘 그런 체중을 유지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이 66.9는 사실 엉터리다. 왜냐하면 내가 “반칙”을 썼기 때문이다. “공인”이 아닌 “자체” 개체량이다 보니, 내가 멋대로 숫자를 바꾼 것이다. 오늘 같은 경우, 정직하게 기상 즉시 쟀을 때는 68.0. 그런데 아내의 “칡 제거” 명령을 3시간 수행하고 파김치가 되어 다시 재 보니 66.9. 그 66자(字)가 너무 버리기 아까워 아침의 68.0을 “일중 최저치” 66.9로 살짝 고친 것이었다. 통계의 신빙성만 떨어질 뿐,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나? 굳이 변명하자면 “사기진작”을 위한 일종의 애교 있는 비겁행위? 아무튼 이것은 하루이틀도 아니고 벌써 10년 넘게 치르고 있는 “자신과의 전쟁”의 한 단면이다. 이렇게 질질 끌다간, 하하, 이 땅에 남기게 될 내 마지막 한 마디, “아...... 67!”


아내는 키 162cm, 체중은 50kg 안 된다. 간혹 둘이 체중 얘기를 했을 때, 앞에 5자(字)를 들은 기억이 한 번도 없다. 놀라운 것은, 결혼하고 40년이나 그대로라는 점이다. 아내는 운동도 안 하고, 등산/걷기는 어쩌다 가끔 한 번 나를 따라나서는 정도? 그리고 체중 또한 1년에 한두 번밖에 안 잰다. 하루에도 열댓 번, 체중계 배터리가 감당이 안 될 정도로 촐싹대는 나랑은 완전 반대다. 게다가 아내는 간식/군것질의 대가, 디저트의 여왕이다. 빵, 케이크, 젤라또, 샤베트(sherbet), 곶감, 쵸콜릿, 군밤, 군고구마, 말린 고구마, 말린 망고, 땅콩, 연양갱, 어릴 적 추억의 과자들...... 그 종류가 끝이 없다. 어떻게 그런 걸 먹고도 살이 안 찌는지? 당연히 내게도 권하지만, 나는 사양할 때가 많다. 특히 식후엔, 밥이 목까지 꽉 차 더 이상 들어갈 자리가 없다. 그럴 때 흔히 하는 대화.

“여보, 산에 좀 갔다오께. 체중이 좀 오바(over)돼서.”

“그렇게 운동한다고 체중이 내려가는 게 아니예요.”


마음 속으로 “아니긴 뭐가 아니야?” 대꾸하며 집을 나선다. 낑낑 산을 오르고 뻘뻘 땀을 흘리지만, 솔직히 매일 거기서 거기다. 아내 말대로, 도저히 체중이 안 잡힌다. 그런데 얼마 전, 나는 궁금했던 아내의 비밀(秘密)을 드디어 밝혀 냈다. 무슨 대화 끝에 무심코 아내가 한 말.

“나는 많이 먹었을 때의 그 ‘배부른 느낌’이 싫어요.”

엥? 바로 그 포만감이 즐거움인데, 그게 싫다고? 잠시 그 말뜻을 곰곰이 생각해 본 나는 깜짝 놀랐다. 순간, “40년 묵은 숙제”가 풀렸기 때문이다. 아내는 무지 “깔끔을 떠는” 사람. 그런데 "밥 먹은 뒤끝"은 정반대라 내가 늘 이해가 안 됐던 터. 안 씻어도 될 정도로 깨끗이 그릇을 비우는 나에 반해, 다 먹었다는 그릇이 항상 지저분했던 아내. 대놓고 말은 못하고,

“가정교육을 잘못 받았네.”

하고 평생 생각했다. 그것이 오해였던 것이다. 멀찌감치 “배부른 느낌”이 감지되면 가차없이 지금 딱, 숟가락을 놓는 습관. “40년 불변의 체중” 뒤엔 그런 독한 의지(意志)가 숨어 있었던 것이다.


우리 부모님께서도 생전에 “배가 8부(80%)면 의사가 필요 없다”는 일본 속담을 자주 인용하셨다. 그렇게 보면 가령 나 같은 바보는 100이 포만감을 주는 양일 때 120을 먹는다. 배고파서 먹고, 식탐으로 더 먹고, 아까워서 마저 먹고, 찝찝해서 끝까지 딸딸 긁어 먹는다. 그러나 아내는 아무리 맛있어도 딱 70만 먹고 손을 놓는다. 100은 아예 싫고, 80 정도가 좋은데, 디저트 10을 고려하여 70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디저트 먹을 배는 항상 남겨 둬요.” 하는 말을 아내가 자주 했다. 늘 하찮게 듣고 말았는데, 사실 대단한 얘기다. 70 같으면 식사 중에 즐거움이 클라이맥스인 시점. 그런데 인간이 어떻게 거기서 멈추나? 나는 못해도, 멈추는 것이 정답이다. 내 경우, 마지노선이 67이 된 것은 그 이상은 몸이 무겁기 때문. 67 이하면 몸이 훨훨 날아갈 것만 같은데도, 저도 모르게 자꾸 먹어 오늘에 왔다. 하찮은 탐욕의 노예가 되어 10년 내내 찌뿌둥한 하수(下手). 잠시 잠시의 부족함을 견디며 40년 팔팔한 고수(高手). 우리는 같이 살아도 이처럼 수(手)가 다르다.


밤이 되어 다시 재 보니 68.7이다. 낮에 잠시 66자(字)를 봤다고 자만(自慢), 종일 먹고 마셨더니 또 다 올라갔다. 잡다하게 온갖 것을 시도하며 분주하게 뛰는 나. 딱 하나의 원칙만 고수하며 유유히 걷는 아내. 우리는 마치 역사상 최고 아름다운 무술영화 “와호장룡(臥虎藏龍)”의 장쯔이와 주윤발 같다. 기를 쓰고 좌우로 청명검(靑冥劍)을 휘두르지만 결국 헛손질만 하는 장쯔이가 나. 맨손에 뒷짐 지고 깃털처럼 사뿐 대나무 끝에 서서 장쯔이를 제압하는 주윤발이 아내. 성별은 반대로 됐어도, 어쨌든 우리는 꼭 그런 형국이다. 나도 이제 나이가 많다. 계속 “잔챙이”로 살기에는 남은 시간이 너무 없다. 이 땅에 숨쉬는 동안, 나도 한 번쯤은 주윤발이 되고 싶다. 아무리 날카로운 장쯔이의 칼끝도 살짝살짝 어깨만 좌우로 돌리면 그만인 “깊은 내공의" 주윤발. 만면에 미소 가득, 30미터 높이 대나무 끝을 미끄러지듯 옮겨다니는 "여유 만점의" 주윤발 같은 고수(高手)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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