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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아, 참! 당신 말이 맞아!

by 김지민

2025년 9월 20일 >>>


우리 교회에 나보다 12년 높으신 띠동갑이 계셨다. 그분 이름 이니셜이 “ㅌㄷ”. 그래서 아내와 나는 그를 “테드(Ted)”라 불렀다. 살짝 우리끼리 쓰는 별명이다. 지금은 다른 곳으로 가셨지만, 이 테드 부부는 3, 4년을 우리랑 아래위층으로 함께 살았다. 교회 단지 내의 “실로암”이라는 건물에서다. 얼마나 그때가 좋았으면 아내는 지금도 그 부인 되시는 집사님과 가끔 전화한다. 백옥 같은 피부, 고운 얼굴, 자상한 인품, 돈독한 신앙심...... 어느 한 구석 버릴 데가 없는 여성이다. 테드 자신도 지극히 헌신적이고 책임감 강한 분. 하지만 솔직히 약간 고집스럽고 엉뚱한 면은 있다. 그의 아내보다 네 살 많은 테드. 첫눈에 반한 신입 여사원을 행여 어디 뺏길까, 일단 살림부터 차리고 약속대로 평생을 책임진 남자. 하하, 그는 진정 “시대를 앞서간” 멋쟁이였다.


테드에 의하면, 그의 우리 교회 출석 사연은 이러했다. 딸은 일찍이 출가하여 손자손녀 낳고 잘 사는데, 그 위의 아들 녀석이 문제. 든든한 9급 공무원에 아파트도 한 채 물려받은 놈이, 장가갈 생각을 안 하는 것이었다. 인력으론 도저히 안 되겠다 판단한 테드는 종교 단체 중에 성당을 제일 먼저 찾았다. 하지만 “최선을 다하겠다”는 신부님의 다짐에도 불구, 몇 달간의 성당 출석은 완전 허사. 그래서 지극정성 공(功)을 드리면 된다 하는 절을 찾아 한동안 다녔으나 그것도 허탕. 그러던 어느 날, 라디오 극동방송에서 우리 장로님의 명성을 듣고 찾아온 곳이 진새골 교회. 매사에 자신감 만점인 우리 장로님이 제 발로 걸어 들어온 손님을 놔 주실 리 만무했다.

“우리 교회에 출석만 하시면 아드님 결혼은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그러나 내가 이 교회를 출석하고 서로 친해졌을 땐, 테드는 이미 많이 지쳐 있었다. 그전 3, 4년간 여러 교인들이 열 건 넘는 선(善)을 주선했으나 성과가 없었던 것. 사실 교인 100명인 교회에서 그 정도면 다들 할 만큼 한 것이었다. 오직 한 직장을 30년 다니다 퇴직한 “성실”의 표상, 테드. 선대(先代)로부터 물려받은 전답이 많아 재정적으로 아무 걱정이 없는 테드. 그는 내게 “아들 장가만 보내 주면 예수도 믿고 뭐든지 시키는 대로 다 하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그런데 내가 보니 지쳐 있긴 우리 교인들도 매한가지. 아무도 더 이상은 그 일에 관심이 없었다.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 했으니, 그 혼인은 “천하”가 걸린 중차대한 딜(deal). 그 혼사만 해결되면 천지가 요동하고 만인이 춤을 추게 될 것이었다. 내가 팔을 걷고 나섰다.


모두 입을 다물고 있어 그렇지, 테드와 비슷한 상황의 가정이 여럿 있었다. 그 중 한 부부가 테드 부부랑 연령대도 비슷한데, 딸이 아직 시집을 안 가고 있었다. 두 집 모두 부모만 보면 100점 만점에 120점을 드려도 모자랄 진짜 좋은 분들. 나는 단번에 소개를 성사시켰고, 가슴 설렐 겨를도 없이 보기 좋게 1회전에 KO패 했다. 서로 10분도 채 안 보고 일어섰다는 것이었다. 부모와는 전혀 딴판인 자식들, 나는 그 젊은이들이 너무 미웠다. 그 일 이후, 테드는 아들의 절친을 은밀히 만났다. 목욕탕 같이 가 봤느냐, 신체적 이상은 없느냐, 등등을 물어봤다고 했다. 테드의 부인도 참다 못해, TV 아침마당에 나왔다는 어느 결혼정보회사에 거금을 주고 아들을 등록시켰다. (결국 거긴 돈만 날렸다.) 나는 나대로 생각이 있어 그 아들과 1대1 면담을 했다.


조용히 얘길 들어 본즉, 이 아들은 평생 어머니를 못살게 군 아버지를 극도로 미워했다. 거의 복수심에 불타 있다고 할 정도였다. 사실 테드는 철저한 남성우월주의자에, 아내 성경책을 뺏어서 불태운 전력도 몇 번 있는 남편. 그래도 테드의 딸은 오빠와 달리 아빠를 이 세상 최고로 여긴다고 테드의 부인이 말해 주었다. 부인 자신도, 많은 핍박에도 불구 꿋꿋이 신앙을 지키며, “이 이는 원래 이런 사람”이려니 하고 그만그만하게 사는 형국이었다. 남편이 아무리 짜증내고 소리쳐도 한결같이 조용조용, 느릿느릿, 끝까지 대꾸를 또박또박...... 우리는 그런 장면들을 옆에서 보고 얼마나 킥킥거렸는지 모른다. 가족들 견해를 종합해 보건대,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그런 감정은 다소 도를 지나친 느낌? 그런데 내가 진정 궁금했던 건, 과연 이 녀석이 결혼할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는가, 혹 여성 혐오증 같은 질병이 있진 않은가,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내 직감에 근거,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교회 청년부의 그 동갑내기 말이야, 가령 그 처자(處子)라면 결혼할 생각이 있나?”

그러자 전혀 뜻밖의 우렁차고 즉각적인 대답,

“네, 있습니다!”

그를 알고 처음으로 그가 “정상적인 사람”이란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그는 선을 백 번 본 “또라이”, 머리가 이상한 사이코가 결코 아니었다. 단지 눈이 “매우 높은” 건강한 청년일 뿐이었다. 실제로 그녀는 누가 봐도 한눈에 퀸카(Queen card). 미모, 학식, 교양, 재능 등 모든 면에서 일등 신부감이었다. 평소 야, 자, 하며 지내도, 그녀에 대한 연정(戀情)이 그의 마음 깊이 자리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하하, 어쩌면 선을 보다 문득 그녀 얼굴이 떠올라 파투가 난 경우도 많지 않았을까?


그렇게 그 밤에 그 아들을 만나고 실로암에 돌아간 나는 바로 테드에게로 갔다. 이놈이 여자를 다 싫어하는 게 아니다. 좋아하는 여자가 있다. 청년부의 그 처자다. 집이 넉넉지 않은 것 같으니 돈을 주고 사서라도 데려오자. 결국은 다 물려줄 재산이 아닌가? 뒤늦게 무슨 “공부”를 한다는 것 같은데, 학비도 우리가 대 주자. 결혼 승낙하면 통장에 당장 얼마 넣어 줄 수 있느냐? 등등...... 나는 거두절미하고 정곡을 찔렀고, 테드는 춤을 추며 기뻐했다. 다음 날, 그 처자의 대학 선배 되는 나의 아내가 나섰다. 평소 대화는 없었어도 같은 교회를 다니니 서로 아는 사이. 아내가 그녀 사는 아파트 근처로 가 찻집에 마주앉았고, 한 시간 남짓 “회담”이 진행됐다. 아내는 상대의 감정 안 상하게 조근조근 이쪽 사정 및 조건들을 다 얘기했다. 그녀도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다고 했다. 그리고 며칠이나 지났을까, 답이 왔다. “No!”였다. 나는 연속 2패를 안았다.


포기란 있을 수 없는 일, 나는 두 가지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하기로 마음먹었다.


1. 아들이 아빠를 용서하고 마음을 풀게끔 테드의 인격을 변화시킨다.

2. 1대1의 “맞춤식” 선(善) 대신, 1대100의 “대량” 구혼을 시도한다.


1번을 위해선 내가 고안한 “우리 남편 고운말 스티커”를 이용했다. 남편이 고운 말을 할 때마다 벽에 붙은 표의 해당 칸에 아내가 스티커를 하나씩 붙여 주는 것. 결국 “말”이, 부부 사이도 자식 마음도 다 좋게 만들 거라고 나는 테드를 설득했다. 그리곤 매월말, 스티커가 많이 붙은 표를 보며 테드를 극구 칭찬했고, 테드는 점점 눈에 띄게 좋아졌다. 심지어 아들을 끌어안으며 “아빠가 다 잘못했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물론 약간의 코칭이 있었다. 간혹 “아내가 스티커를 안 붙여 준다”고 테드가 불평하면, 내가 몰래 부인께 “잔뜩 좀 붙여 드리세요!” 하고 부탁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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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드에겐 “본능”이 돼 버린 습관이 하나 있었는데, 아내 말에 “아니야!” 하며 즉각 반론을 펴는 것. 거의 예외가 없었다. 그런데 “고운말” 쓰기를 두세 달 하고 있던 중, 바로 꼭 그 상황이 벌어졌다. 여럿이 모여 얘기를 하던 중, 테드의 부인이 모처럼 입을 여는데 아니나다를까 테드의 “아니야!”가 즉시 튀어나왔다. 순간, 나는 테드의 옆구리를 살짝 찔렀고, 테드가 쑥 기어들며 다시 하는 말,

“아, 참! 당신 말이 맞아!”

순간 좌중은 깔깔거리다 못해 전부 뒤로 넘어갔고, 나는 평생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지금도 폭발하는 이 웃음이 잘 멈추질 않는다. 그처럼 그는 아들 마음을 얻기 위해, 그 아들놈 장가 가는 모습 보려고, “본능을 거스르며까지” 최선을 다했다.


프로젝트 2번은, 매주 일요일 오후에 (아래에 첨부한) “구혼 편지” 30통을 여러 교회로 부치는 것이었다. 교인수가 많은 서울/경기의 대형교회들을 중심, 지리적으로 만남이 용이한 지역교회들도 포함했다. 내용은 이미 내가 본인의 동의하에 작성해 놨으므로, 편지는 첫머리의 수신자 이름만 쓰면 됐다. 그러면 두 집 부부가 둘러앉아 편지를 접어 넣고, 봉투를 봉하고, 앞뒤로 주소를 적고, 우표를 붙이면, 테드가 월요일 아침 일찍 일괄 우체통에 갖다 넣었다. 두 프로젝트가 반년 정도 계속됐으니, 수백 교회가 우리 편지를 받았을 것. 이 세상에 그보다 더 “정중하고 간곡한” 부탁 편지는 없다. 한꺼번에 응답이 너무 많이 오면 어쩌나 걱정까지 했는데, 단 한 군데도 연락이 안 왔다. 미안하다, 수고한다, 짧은 문자조차 없었다. 사랑이 많기는커녕, 세상에서 가장 인심 야박한 곳이 “교회” 아닌가?


희망과 기대 속에 하루하루가 즐거웠던 테드. 의외로 반응이 “전무(全無)”하자, 너무 실망이 큰 나머지 어느 날 훌쩍 교회를 떠났다. 성당-절-교회를 거쳐 또다시 평촌 집.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천하보다 귀하다는 한 영혼을, 수백 개 교회가 “합심”하여 냉대/배척한 셈이었다. 그 아들도 청년부가 왕성한 큰 교회로 옮겼고, 당연지사 그 부인도 결국 남편을 따라갔다. 그때만 생각하면 정말 죄송하고 안타깝다. 더 잘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좀 달리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나마 위로가 되는 건, 최소한 그때는 우리 모두 행복했었다는 것. 결혼식은 어디서 어떻게 할 것이며, 장차 손주들은 몇이나 볼 것이며, 하하, 나는 중개수수료를 얼마나 받을 것이며...... 우리는 반년(半年)을 매일 그렇게 “꿈을 꾸며” 살았다.


우리 교회에서 8년 만에 “고운말 스티커”를 다시 해 보자고 내게 부탁하니, 테드가 새삼 그립다. 뭔가 다른 방법으로 테드를 구원의 반열로 들여 오실, 그 멋진 “신(神)의 한 수”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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