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어른, 관계의 축소판

괴발자 모드 속 마흔네 번째 이야기

by 돌뭉치

분명 영화를 봤다. 끝났는데도 무슨 내용인지 이해가 안 된다. 보통 때였으면 바로 영화평을 검색했을 것이다. 오늘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기억을 되새겨 본다. 소마이 신지 감독의 《태풍 클럽》이다. 주인공은 중학생이고 어른 중에는 수학 교사의 비중이 가장 높다. 이들의 행동은 도무지 공감이 안 간다. 사건의 개연성이 존재해야 하는데, 인과관계를 찾을 수 없다. 장면이 듬성듬성 떠 있다. 감독은 무엇을 말하려고 했을까.


촌스러운 댄스 음악과 함께 대여섯 명의 여중생들이 수영복을 입고 춤추고 있다. 막춤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것 같은 몸짓이다. 홀로 수영장에 있던 남학생은 가만히 지켜보다 들키고 나서는 고문 수준의 장난을 당한다. 그 학생이 기절했기 때문이다. 그는 깨어나고 달려온 교사는 아이들을 꾸짖는다. 머리를 치고 뺨을 때리는 장면이 불쾌했다. 다음 날 아침, 학생 두 명이 등교한다. 약속 시간에 늦은 리에는 애교로서 미안함을 표현하고 미카미는 말없이 그녀의 손을 잡고 학교로 향한다. 시끌벅적한 교실은 어젯밤에도 나타났던 우메미야 선생의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때 선생의 애인 어머니가 등장해서 경제적 지원만 챙기고 여자는 언제까지 기다려야 되냐며 고성을 냈다. 교사의 체벌에 부도덕한 개인사까지 계속 보고 있기가 거북했다. 선생의 집안으로 신이 전환되었을 때, 둘의 문제가 여자 쪽에 있음이 밝혀진다. 우메미야는 정의의 인물인가.


태풍을 앞두고 학생들에게 이른 하교를 종용한다. 빈 교실인지 확인한 우메미야는 건물 출입구를 잠그고 퇴근했다. 그렇지만 이곳에는 아직 여섯 명의 학생이 남아있다. 세 명의 연극부 여학생 중 유미와 야스코는 연인 사이고 미도리는 그냥 친구다. 어제 소동에 대한 선생의 경위를 듣고 싶은 미치코는 우메미야를 기다리다 자신을 괴롭히는 켄과 함께 건물에 갇힌다. 이때 켄은 미치코를 힘으로 위협하지만, 본인이 저지른 그녀 등의 상처를 보고 포효하며 멈춘다. 학교에 남은 한 명은 리에의 가출이 걱정되어 귀가하지 못한 미카미다. 이들은 교실과 체육관, 교정을 넘나들며 정신없이 춤춘다. 한편, 도쿄로 간 리에는 신분이 확실치 않은 대학생의 집까지 따라갔다가 이내 나온다. 고향으로 돌아가려 하지만 열차가 끊기면서 폭우 속 길가를 배회한다. 태풍이 멎고 교실 안 유일하게 자지 않은 미카미는 모두를 살리기 위해서는 죽음을 택한다. 창틀에서 몸을 던져 흙바닥에 다리를 V자로 벌린 상태로 처박혔다.


장면을 다 전개하면 메시지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의도 파악이 안 된다. 교사가 의로워 보이지도, 학생들의 흡연이나 동성연애 이야기가 왜 필요한지도 미지하다. 태풍이 상륙하고 미카미가 선생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하지만, 술에 취해 횡설수설하는 우메미야에게 당신을 인정할 수 없다고 말한다. 우메미야도 나이 들면 다 마찬가지라고 악담을 퍼부으며 학교로 돌아가지 않는다. 결국 미카미는 자살을 시도하는데, 내가 이 영화에 유일하게 거는 기대가 이 신이다. 그가 죽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리에와 아키라가 엉덩이까지 차오르는 물웅덩이를 밟으며 학교로 뛰어가는 모습이 영화의 마지막이다. 그만큼 땅이 무르고 깊다는 뜻이므로 저층 건물에서 뛰어내려도 골절 같은 부상에서 그쳤을 것 같다. 미카미는 초반부터 죽음에 대해 고민했었다. 사춘기는 급속한 신체 성장만큼 사고도 빨리 자란다. 감독은 그들의 내외적 변화를 통해 현실, 어른, 관계에 대한 복잡한 셈을 축소해서 보여주려고 하지 않았을까. 시골에서 그저 그런 여자로 남길 바라지 않았던 소녀와 출세를 원하는 소년, 동성과 사랑하기를 원하는 소녀들, 이성에게 무차별 폭력을 가하는 소년, 이들의 현실은 태풍 속이다. 태풍의 눈에 들어가면 잠시 평화롭다가도 다시 폭우가 쏟아진다. 태풍이 완전히 지나간 후에는 쨍한 해가 뜬다. 우리 인생도 이와 같다. 10대, 20대, 나이가 들수록 죽음을 향해 전진하면서 태풍을 비껴가거나 정통으로 맞을 때도 있지만, 여전히 삶을 살아간다. 그 여정에는 춤 같은 소소한 재미도 함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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