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발자 모드 속 일흔한 번째 이야기
출판 제안을 받았다. 자세히 읽어보니 ‘고품격 자비출판’이었다. 몇 분 전까지 지인과 내 작품과 등단 가능성에 대해 한참을 얘기하다 헤어진 터라 이 상황이 웃겼다. 문학성은 없고 상업성은 높다는 합평을 전하자, 그녀는 웹 소설을 추천했었다. 예술가 병에 걸린 나는 그럴 수 없다면 단호히 거절했다. 신문사나 출판사를 통해 등단해야 한다고. 일 분 만에 기대는 사라지고 묘한 만족감만 남았다. 내 글에서 가능성을 본 제삼자가 나타났다니, 조회와 ‘좋아요’ 수도 많지 않은데 말이다. 오카 마리의 《기억 ‧ 서사》에는 ‘사건’이 기억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이 사람을 소유한다고 했다. 이 사건은 지금부터 출간과 기고의 제안으로만 존재할 것이다. 나는 무척 설렜고 사건의 동기에 관한 기억은 사라졌다.
오카 마리는 《기억 ‧ 서사》에서 다양한 작품을 들면서 기억에 관해 주장을 펼친다. 기억은 ‘나’의 의사와 관계없이 내게 찾아와서 내 신체를 습격한다. 사건은 그 기억 속에서 존재한다. 대부분의 사건에는 바로 그때는 말할 수 없으면서도 동시에 말로 잘라낼 수 없는 나머지가 존재한다. 출간이라는 동일한 사건을 두고도 제안자와 ‘나’가 다른 기억을 유지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비단 개인사뿐만 아니라, 역사적인 문제에서도 동일하다. 현재형, 폭력적인 형태로 회귀한 사건은 과거형으로는 언어화될 수 없는 사건의 잉여가 있기 마련이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사건을 온전히 전하기 힘든 이유도 여기 있다. 그래서 일본군 위안부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을 들을 때, 언어가 매개하는 의미 자체보다는 ‘사건’과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언어 사이 끝없는 괴리 또는 단절에 주목해야 한다.
스웨덴 드라마를 원작으로 한 요세핀 보르네부쉬 극본의 《러브 미》에는 주인공 서준경을 중심으로 가족의 삶을 다룬다. 엄마는 죽었지만, 나머지 가족은 그녀는 물론, 아빠 진호와 동생 준서까지 각자의 사랑을 시작한다. 나는 아빠 돌아가시고 나서 근 이 년 동안 새로운 사람을 만날 틈이 없었는데, 이 드라마를 보고 있자니 너무 벽을 세운 건 아닌지 돌이켜보기도 했다. 이런 생각만으로도 틈이 갈라지는 것 같아 잠깐 흡족했다. 다양한 에피소드 중 내가 《기억 ‧ 서사》와 연결하고 싶은 장면은 준경이 남자 친구 아들인 다니엘에게서 미움받으면서 동시에 딸의 자격으로서 아빠 여자 친구인 자영을 몰아붙이는 신이다. 그 순간 그녀는 ‘내가 그 사람이고 내가 그 아이’였다는 걸 깨달으면서 마음의 문을 연다. 그녀와 비슷한 상황에 직면하지는 않았지만, 뭔가 오카 마리가 했을 법한 말을 극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 서평에서 이 작품을 꼭 다루고 싶었다.
오카 마리는 위안부 할머니의 증언이나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원더풀 파이프》 같은 대작을 통해 기억과 사건이 어떻게 타인에게 전이되는지 설명했다. 나는 준경에서 오카 작가의 ‘기억’을 읽었다. 당사자가 되지 않고서는 본인의 경험을 온전히 대변할 수 없다. 타자가 당한 폭력을 부인하고 망각해서 사건을 완결된 서사로만 재현하려는 시도는 내셔널한 욕망에 그치고 만다. 그런 서사를 요구하는 것은 ‘사건’ 외부에 있는 우리다. ‘나’의 의지와 관계없이 무차별적으로 침입해 온 ‘사건’의 기억에서 자신의 서사를 지키는 것은 사회가 이들에게 휘두르는 망각의 폭력이다. 《러브 미》의 엄마의 사고에 죄책감을 겪는 준경에게 아버지와 동생은 이제 집에 자주 오라고 말하지만, 그녀는 극복하지 못하고 끝내는 엄마와 다투고 만다. 다리가 절단된 사건을 겪은 엄마 본인과 그 사건의 동기를 제공한 준경, 그리고 엄마는 지극정성으로 간호하는 아빠의 태도가 다시금 사건과 기억에 관한 정의를 돌아보게 한다.
진호의 연인, 자영의 말이다. “힘들고 괴로운 건 망각하려고 노력하고 즐겁고 좋은 건 잊지 않으려 노력하고.” 기억을 지우고 유지하는 데도 노력이 필요하다. 오카 마리의 글은 아무렇지 않게 보던 작품도 여러 번 생각하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각자가 만드는 기억이 이 삶에 다양성과 갈등을 만들어낼 테다. 그럼에도 자영의 말을 자양분 삼아 내 기억을 변화시켜 보겠다. “아직 가엽고 애틋한 내 인생의 축제가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