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발자 모드 속 일흔 번째 이야기
크리스마스 휴일과 토요일 사이에 휴가를 냈다. 집에만 있으면 억울한 휴가 날, 전국에는 강력한 한파가 몰아쳤다. 집에 있을 법도 한데, 내게는 연말까지 써야 하는 관람권이 남아있어 강추위를 무릅쓰고 엄마와 미술관으로 향했다. 이런 근성은 우리 집안 내력이다. 어렸을 때 방학 때마다 서울로 올라와서 미술관, 박물관, 연극 등 각종 문화 행사를 섭렵했다. 여름은 물론이고 영하 10도의 날씨에도 초등학교 저학년인 나와 아직 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동생은 엄마 손을 붙잡고 밖으로 나갔다. 그날도 오늘처럼 추웠다. 효자동 골목을 간신히 기어올라 청와대 정문에 도착하니 하필 쉬는 날이었다. 인터넷이 없어 미리 확인할 수 없었던 우리 가족은 문 앞을 지키던 경찰 아저씨의 안내로 휴무일을 알 수 있었다. 동생은 못 걷겠다며 엄마 등에 업혔고 이후 엄마는 허리를 삐끗해서 한동안 한의원을 다녀야 했다. 그럼에도 아빠가 있는 집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우리는 매일 나갔다. 이러한 조기 교육 덕에 동생과 나는 커서도 문화생활을 좋아한다. 날씨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세월이 흘러 요즘은 내가 엄마보다 앞장선다. 엄마 졸업여행으로 갔던 프랑스의 퐁피두센터에서 만났던 샤갈을 오늘은 고양시에서 본다. 바다를 건너온 그는 내게 무슨 말을 건넬까.
미술관은 휑했다. 서울이 아니라서, 평일이어서, 아님 날씨 때문인지 알 수 없었으나 썰렁했다. 입장권 교환처에서 옷을 맡겨준다기에 패딩을 벗어 맡겼다. 웃옷이 가벼워지자, 홀을 메운 온기 사이로 듬성듬성 한기가 느껴졌다. 도슨트 시간에 맞춰서 5분 정도 입장 후 대기하였다. 숱하게 미술관을 다니면서 배운 바는 아는 만큼 보인다는 점이다. 독자의 판단이 중요한 미술의 세계에서는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작품이 달리 보인다. 그래서 항상 미술관을 갈 때 도슨트 프로그램을 확인하고 개별 도슨트가 없는 해외 미술관에서는 가이드 투어를 신청했다. 그림에 문외한이고 감정이 메마른 내가 배경 설명 없이 그림만 볼 때는 기억에 남는 게 없었다. 그저, 예쁘다. 아름답다 정도. 그런데 강연자의 설명을 듣고 나면 평면적인 그림이 입체적으로 변화한다. 조용했던 미술관은 강연 시작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나오자, 사람들이 모였다. 엄마 손에 붙들려온 남자아이도 있었고 중년 부부도 보였다. 이럴 때 에티켓은 아이들이나 키가 작은 성인을 앞줄에 서게 배려하는 것이다. 이번처럼 눈치 없이 키 큰 아저씨가 앞에 떡 버티고 있으면 뒤에 있는 사람의 시야가 방해된다. 얼마나 관심이 많은지 그는 강연 내내 맨 앞자리를 고수했다. 그리고선 강연이 끝나자마자 홀에서 사라졌다. 퇴장했으려나.
사슴과 당나귀, 피에로 등 몽환적인 그림으로 유명한 샤갈의 전시회 주제는 ‘그래픽아트’였다. 도슨트의 설명을 듣지 못했다면 전혀 이해 못 했을 지점이었다. 샤갈은 그림만 그린 게 아니라 삽화나 판화 작품도 많이 남겼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그런 그림을 가지고 왔다. 석판화는 내가 알던 판화 기법과 아주 달랐다. 물과 기름의 반발 원리를 이용해 인쇄하는 기법으로 여러 색상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색상의 개수보다 더 많은 횟수로 찍어내야 했다. 그동안 내가 생각했던 판화는 한번 제작하면 동일한 작품을 여러 번 만들어내는 경제적인 장르였으나, 이번 전시회를 기점으로 붓칠보다 더 고생스러운 형태가 되었다. 그는 왜 판화를 고집했을까. 도슨트의 설명에서는 대답을 찾을 수 없어 책을 읽어보기로 했다. 그는 판화뿐만 아니라, 삽화도 많이 그렸고 60대에 시작하여 80대까지 지속해서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을 남겼다. 그는 97세, 죽기 전까지 계속 그림을 그려서 다작의 작가가 되었다. 전시회를 다녀온 지금까지도 줄곧 엄마에게 전하는 말을 이 한마디다. “엄마, 샤갈은 60대에 새 기술을 배워서 97세 죽을 때까지 그렸데요. 그러니 샤갈보다 30년이나 젊은 엄마는 더 열심히 일하셔야 합니다.” 엄마를 볼 때마다 반복해서 말했다. 엄마는 샤갈을 괜히 보고 왔다며 푸념했다.
샤갈의 그림에서는 이상하리만큼 동물과 사람이 결합하였거나 원색이 자주 등장한다. 어제까지는 그저 동물을 의인화해서 하늘 위로 둥둥 떠다니는 사차원적 세계를 몽환적으로 드러낸 작가 정도로 여겼으나, 완전히 달라졌다. 각각의 피사체가 전하려는 의미를 찾기 시작했다. 당나귀와 수탉은 종교적인 의미가 있다. 유대교에 한정하지 않고 성서에 기반하여 동물을 차용하고 같은 연유로 성당의 스테인리스글라스도 제작했다. 음악을 좋아해서 바이올린을 자주 그렸고 피에로에는 본인이 유대인으로서 느꼈던 연민을 투영했다. 다만, 반인반수로서 가장 많이 선택된 동물이 염소인 까닭은 찾지 못했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도서관에 들러 의문점을 해결해 줄 책을 구해야겠다. 그의 화풍은 특이하다. 초기에는 파블로 피카소로의 입체파, 이후에는 앙리 마티스의 야수파 영향을 받았으나, 결과적으로 소속된 사조는 없었다. 어느 쪽에도 타협하지 않고 자신만의 고유한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그러한 원동력은 나이 들어서도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그의 진취성에 기인했다고 본다. 곧 새해가 온다. 샤갈보다 반세기는 젊은 내가 주저할 이유가 없다. 당장 새해를 맞아 주짓수도 신청하고 소설 쓰기도 재개해야지. 그 사이에 틈틈이 엄마에게도 97세까지 일하라고 말해야겠다. 엄마도 샤갈보다 한참 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