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이야? 아크릴이야? “
동료들이 물었다. 무슨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냐는 뜻이었다.
처음에는 그 단어조차 낯설었다. Acrylic…
한국식 발음대로 “아-크-릴”이라고 말하면 딱 부러지게 들리지만, 영어 발음은 어딘가 흐릿하고 맘에 안 들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소통을 하려면 내 정직한 발음을 살짝 불량하게 흘려야 한다.
꼴에 아는 것도 없으면서, 아크릴 물감이 딱 마음에 든 건 아니었다. 유명한 화가들의 작품은 대부분 오일페인팅이라, 아크릴은 학생들이나 쓰는 물감이라고 생각했다. 참 무지했다. 오일페인팅을 호기롭게 시도해 보고 싶었지만, 선생님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나를 붙잡았다.
“아크릴은 초보자에게 정말 좋은 소재예요.”
그 말과 함께 두 물감의 차이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아크릴 물감은 빠르게 마르고, 실수를 덮기 쉬우며, 물로 희석할 수 있어 초보자에게 적합해요.”
딱 내게 맞는 조건이었다.
“반면, 오일 물감은 건조 시간이 길어 색을 자연스럽게 섞거나 부드러운 질감을 표현하기 좋지만, 유화제와 긴 작업 시간이 필요하죠.”
아크릴이 즉흥적이고 빠른 작업에 어울린다면, 오일은 섬세한 색감과 깊이를 표현하는 데 강점이 있었다.
설명을 들을수록 아크릴이 성격 급한 나와 잘 맞았다. 무엇보다 ‘실수를 덮을 수 있다’는 말이 매력적이었다. 실수투성이인 초보자인 나에게 이것만큼 좋은 조건이 있을까?
아직 걷지도 못하는 아이가 뛰려고 하다니 참 나답다.
처음엔 오일이 더 근사해 보였지만, 결국 중요한 건 나에게 맞는 길이었다.
선을 하나 그을 때마다, 색을 하나 더할 때마다, 나는 넘어지고 실수하며 조금씩 나만의 그림을 찾아가는 중이다.
그리고 이제, 나는 아크릴의 매력에 푹 빠졌다.
이제는 이 물감이 아니면 그림을 그리는 게 상상도 안 된다.
붓 끝에 묻은 물감처럼, 나도 천천히 번져간다.
나에게는 올해로 3번째인, 12월 초에 계획된 전시회에 출품할 그림에 몰두하며, 나만의 색을 찾아가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