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의 유산
한국에서는 "가업을 잇는다"는 것이 강요당하는 느낌이 들거나, 새로운 도전을 막는 것으로 여겨지곤 한다. 전통을 지키는 것보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의 새로운 기회를 중요하게 여기는 문화와
농촌 보다 도시의 직업을 찾아가는 것이 우선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산업이 농업에서 시작했고, 세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것은 농업이 인간의 생존과 직결된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농업은 단순한 생업이 아니며 단순한 산업도 아니다. 또한 한 사회의 문화와 전통을 반영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나 현대 농업은 고령화, 후계농 부족, 기업형 농장의 확산 , 기후문제 등 다양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위의 사진은 통계청에서 2023년 기준 농림어업조사 결과를 나타낸 자료이다.
농가 수와 농가인구는 감소하는 추세이나 65세 이상 농가 인구는 급격히 증가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국내 전체 고령화 비율을 보면, 같은 기간 동안 16.4% → 18.2% 로 농촌 고령화 속도가 더 빠르다. 그에 반해 40세 미만의 젊은 농가 경영주 수는 2020년 1만 2426가구 → 2023년 5439가구 로 절반 이상 감소한 것을 알수 있다.
아래 자료는 1990년과 2020년 사이 한국의 농업인력 변화 추이를 보여준다.
30년간 농가 수는 약 41.5% 감소했으며, 농업이 가구 내 주요 생계 수단에서 점차 소멸되고 있음을 알수있다. 농업 인력의 세대 교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40세 미만 경영주 비율은 급감하였다.1990년 25만 8000가구로 전체의
14.6% → 2020년 1만 2000가구로 전체의 1.2%를 나타내고 있다. 이는 젊은 세대의 농업 참여가 거의 사라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난 30년간 농촌은 급격히 축소되었으며, 젊은 인력은 감소하고 고령화는 심화되었다.
2025년 이러한 변화는 한국 농업의 지속 가능성에 심각한 위협을 제기하며, 젊은 세대 유입과 농촌 활성화를 위한 정책적 노력이 필요함을 계속적으로 시사하고 있다.
정부는 이러한 이유로 농촌 활성화와 청년 유입이라는 긍정적 목표를 가지고 창업형청년농업인육성 정책을 펼쳤지만, 눈에 보이는 농업의 매력과 성공모델도 손에 꼽기도 민망할 수준이다.
정부의 농업농촌고령화와 지역소멸위기라는 사회적 문제에 청년농업인구를 늘리면 된다는 단순한 논리와 단기적 유인책을 내건 청년농업인 3만명 육성이라는 정책으로 수많은 청년창업형 농업인의 수가 늘긴 늘었다.
'후계농'과 '청년창업농'은 농업 분야에서 청년들의 진입을 촉진하기 위한 두 가지 주요 지원 제도로 생겨난 단어이며, 이 둘은 지원 대상, 목적, 지원 내용 등에서 차이가 있어 짚고 넘어 가겠다.
후계농: 농업 경영을 승계하거나 신규로 진입하려는 청년 농업인으로, 농업의 지속성과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지원한다.
청년창업농: 영농 초기 소득이 불안정한 청년 창업농에게 영농정착 지원금을 지급하여, 젊고 유능한 인재의 농업 분야 진출을 촉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승계농은 기존 농업 기반(토지, 시설, 기술, 거래망 등)을 물려받아 운영을 이어가는 구조로 상대적으로 대규모 식량작물 재배가 가능하고, 생산 중심의 농업이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기존 방식에서 혁신을 시도하 기도 하며, 변화를 주도하지만 기본적으로 부모 세대의 경영 방식을 이어받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창업농은 처음부터 농업을 시작하는 경우라서 초기 자본과 기반이 부족하여 대규모 식량작물보다는 부가가치를 높이는 방향으로 가는 경향을 보인다. 가공, 체험농장, 스마트팜, 로컬푸드 브랜드화 같은 차별화 전략이 필수적으로 수반된다.
결국, 승계농은 규모화와 안정성을 기반으로 하는 반면, 창업농은 차별화와 고부가가치 창출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자료를 하나 더 살펴보면. 입법조사처에서 조사한 2019년부터 2022년까지 후계농과 청년농의 육성 현황을 확인할 수 있다.
후계농과 청년농 모두 초기(2020년)에는 증가했으나 이후 후계농은 급격히, 청년창업농은 서서히 감소 추세를 알수 있다. 2020년에 급증한 이유는 정부의 농업 육성 정책 강화 및 지원 확대 때문으로 보인다. 이후 감소 추세는 정책 지원 축소 또는 신청자 감소와 관련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된다.
정책 효과의 단기성의 부작용을 다시 알수 있다. 정부의 지원 정책이 단기적으로는 효과를 발휘했으나, 장기적으로는 지속 가능성이 부족하다. 농업은 초기 창업 지원 이후 안정적 정착을 위한 추가 지원이 계속 필요한 산업이다. 그래서 기반이 있는 후계농과 창업농의 농지 확보라는 시작점 부터 차이가 생기게 된다.
여러 조사와 통계로 살펴본 대한민국의 농업농촌 현실과 문제는 단순한 고령화와 인구감소에 따른 농업 문제를 넘어 국가 경제와 식량 안보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일이다.
먹을 것이 풍부하여 음식물을 먹다 버리는 시대를 살고 있으며, '수입해서 사다 먹자' 는 주장은 농업과 농촌을 제대로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농업을 제조업과 혼돈해서는 안될 것이다. 제조업은 발전하지만 농업은 진화한다. 한국은 150만 헥타르의 협소한 농지와 연교차가 큰 기후 조건, 그리고 5000만 명의 인구를 두고도 고품질의 쌀과 과일을 생산하며 다양한 작물 종을 보유하고 있다. 유럽의 나라들이 300년에 걸쳐 이룬 농업적 진화의 시간을 60년만에 추격한게 대한민국 농업 발전사라고 하지 않는가. 이는 한국의 농업 기술이 매우 발전 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보다 발전된 대한민국의 농업선진화를 위해서는 농업에 대한 전 국민적 올바른 이해와 접근이 필요하다.
또한 정부의 청년농에 대한 관심은 반갑고 다행이나, 직접적인 도움을 받아 발돋움하기에 모호한 정책의 말 장난으로 청년의 시간과 노력을 담보로 사용하지 않았으면 한다. 단기간의 유인책은 결국 실패한 정책으로 마무리되지 않는가... 무엇보다 눈앞의 수익과 편리함으로 치장한 채, 농업의 본질과 윤리를 잃어버린 유인책으로 만들어낸 농업으로 청년을 끌어들이지 않길 바란다.
농업을 상업화하고 블루오션을 정복하기 위해 도전하는 청년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생산농업이 과부하 되었다고 하여 후계농이 더이상 필요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가업을 계승하는 것은 단순한 직업 선택이 아니라, 지역사회와 가족의 유산을 지키는 의미를 갖는다. 한국 농업만의 가치를 유지하며 혁신적 접근을 도입하여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지 않을까? 농업의 가업 승계의 개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다음편에서 가족농과 기업농업의 차이를 정리하며, 세계의 흐름에서 가업으로서의 농업의 가치와 의미를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