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6 화 일기
백수가 된 지 3개월 차
솔직히 금방 취업할 줄 알았다
무슨 자신감이었을까
근데 또 걱정이 되면서 안 되는 이 근거 없는 자신감은 뭘까
불효녀가 되는 거 같은 기분이 들 땐 내 감정에 매몰되면서 가라앉을 것 같을 때는
스님의 즉문즉설을 본다. 불교를 믿지 않아도 이야기를 듣다 보면 참 겸손해진다.
댓글에는 이 세상은 모두가 그물망처럼 관계망이라는 족쇄에 묶여있고
그것을 우리가 선이라고 일컫기 때문에 이 중에 한 명이라도
그 그물망을 빠져나가려고 하면 반대나 저항을 받게 된다고 적혀있었다.
한국사회에 찰떡같은 비유라고 생각했다.
다른 이가 그물망을 벗어난다면 내 옆의 망이 촘촘하지 않다는 생각에
안전하지 않다는 생각에 비난하고, 원래의 위치로 돌아오게 만들고.
제 자리라는 건 나의 자리라는 건데. 원래부터 내 자리가 거기인 양 제자리로 돌아오라고 말한다.
부모도 친구도 대게 그렇다. 그래서 무언가 시작할 때는 주변에 물어보지 말고 통보하라고 한다.
하지 말라는 의견이 대부분임으로.
타인에 대한 과한 관심과 충고가 무례하다고 생각했는데
또 그런 입장으로 바라보니 그들은 그냥 세상이 무섭고
그물망을 통해 자신의 안전을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구나 싶었다.
우리가 각자 개인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우리는 사회 속에 산다. 그걸 부정하면서 개인으로서만 존재할 수가 없다.
남들이 이해 안 된다고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내가 애 같아 보였다.
취업을 하는 대신 창업을 먼저 선택했을 때 사람들이 나를 왜 멋있다고 하는지 이해가 안 갔다.
사실 지금도 그렇다.
그냥 사장님이 되어서? 당신도 돈만 있음 할 수 있는 건데 왜?
시골에 살고 혼자 살고 창업을 하고 외국에 살고 부모의 기대에서 벗어나고
스님이 되고 결혼식을 하지 않고 돈에 얽매이지 않고 나이에 굴하지 않고 직업을 여러 번 바꾸고 …
모두 물리적으로 따라 하기 힘들어서가 아니라
사회의 정형화된 그물망을 벗어나고 사회적으로 ‘안전’하다고 믿는 그 망에서 벗어나서도
본인이 안전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혹 때로는 위험하더라도
내 삶에 가치 있는 위태로움으로 여기고, 책임지는 모습을 멋지다고 생각한 것 같다.
어찌 보면 취업은 포트폴리오와 이력서라는 정형화된 포맷을 가지고
남들이 만들어둔 리소스들을 활용하면서 가격과 고용형태 기대심리 3가지만 낮추면 어디든 들어갈 수 있다.
창업은 1부터 100까지 내가 정하고 만들면서 물어볼 이 하나 없이 나 혼자 실험하고 실패하는 과정을 겪어야 한다.
사수도 없고 고정 급여도 없다. 도리어 고생하고도 남에게 돈을 줘야 한다. (남의 자원을 빌리는 것이니 당연하다)
뭣보다 제일 힘들었던 건 ‘그게 돈이 되는지’ 묻는 사람들이었다.
회사원 급여보다 사람들이 더 내밀하게 궁금해했다.
순수한 호기심이나 걱정도 있지만, 자신이 안전하다는 걸 증명하려고 비난할 태세를 갖추려는 듯 보였다.
주체성에 대해서 사람들이 끊임없이 궁금해하고 또 원하면서
창업, 프리랜서, 퇴사가 주체성인 것처럼 해석하는 경향이
우리 사회의 한계라고 생각한다.
창업한다고 주체적이고 시골 가서 산다고 주체적일까?
난 이제 내 브랜드를 폐업하고 회사에 들어가니 주체성을 버린 인간일까?
회사밖 이야기들은 내가 보지 못하던 삶을 구경하는 것뿐이다.
마치 유학을 가서 견문을 넓히듯 말이다.
사장하던 사람이 직원 할 수 있겠어요? 회사 적응할 수 있겠어요?라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다.
지금도 면접에 가면 무조건 나올 질문일 테지.
나는 내가 대표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서 그 질문들이 썩 이해가 가지 않았다.
회사에 적응하려고 태어난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을까
100년 전만 해도 우린 전쟁과 농사일에 적응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시대에 역행하는 것만이 튀는 선택을 하는 것만이 제 멋대로 사는 걸까?
나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선택할 수 있음이 주체적이라고 생각한다.
브랜드를 만드는 과정과 폐업은 나라는 사람의 관점에서는 그저 실험이었을 뿐이다.
나는 이 일을 좋아할까? 잘할 수 있을까? 이 일은 나에게 어떤 경험을 보여줄까.
서류를 넣었다는 것은 회사에 적응하겠다는 뜻이다.
면접을 보러 오라는 뜻은 그들도 나를 구직자로 인정하고 이야기해 보자는 뜻이다.
질문의 이유와 의도를 이해 못 하고 모르는 바는 아니나 참 여러 생각이 들었다.
확신할 수 없는 일에 겪어보지 않고도 확신을 가진 것처럼 말해주는 것.
그들과 나 어느 쪽이라도 과연 도움이 될까?
물론 알 수 없다 내가 너무 뻣뻣한 걸지도.
20대 초반쯤 사회 분위기는 여행 다니고 욜로족으로 사는 게 ‘자유로움’인 것처럼 멋지게 셀링 하던 시대였다.
이제 사회는 다음 셀링 포인트를 찾은 것 같다.
브랜드를 만들고 프리랜서가 되고 퇴사를 하는 것이 주체적인 인간인 것처럼.
나만의 일의 관점, 프리랜서가 되는 법, 퇴사하는 방법 등 여러 가지의 강의와 책들이 팔리고 있다.
자기 계발로 성공한 사람들, 월천 버는 그들이 성공팔이를 하는 것처럼
어느 극단에서는 주체성 팔기가 시작된 것처럼 보였다.
삶의 모양 가지고도 트렌드를 만드는 세상.
그런 세상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더욱 혼란스러워 보였다.
다양한 일의 형태와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건강한 일임은 맞다.
도움이 된다면 그런 도구들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것도 좋다.
하지만 그런 콘텐츠에 내가 피로감을 느끼고 어쩐지 초조하고 죄책감이 든다면
과감하게 알고리즘에서 삭제시키는 게 맞다고 본다.
내게는 필요 없을 수도 있고 아직 필요한 고민이 아닐 수도 있다.
혹여 내 글과 말이 불편하지 않다면 나의 바람은,
주체성 또한 사회가 팔아먹으려고 말장난을 하는 건 아닌지 잘 생각해 보고
“아니 난 내가 정말 원해서 하는 거야”라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