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된 빗소리와 나의 조용한 합의
방 안의 공기는 건조하고, 정지해 있다. 창밖은 며칠째 비 소식 없는 무채색의 도시였다. 침대에 누운 채 스마트폰의 차가운 유리를 문지른다. 몇 번의 손가락 움직임 끝에 스피커에서 우르릉, 낮은 진동과 함께 후드득 빗방울 소리가 터져 나온다. 화면 속 숫자는 0에서 시작해 허공을 가로지르고, 방의 습도는 여전히 완강하게 마른 자리를 지킨다.
물리적으로는 완벽히 결핍된 비. 그러나 내 청각은 그 순간부터 습기 가득한 수중 세계로 편입된다. 맑은 밤의 한복판에서 오직 이 방에만 비가 내리는, 이 명백하고도 고요한 모순이 나의 수면 의식이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매일 밤 그 모순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어느 순간 이상하다는 감각이 밀려온다. 나는 지금 무엇을 듣고 있는 걸까. 이건 비가 아니다. 구름이 무거워져 중력을 이기지 못한 물방울의 낙하음도, 대기를 가르는 서늘한 마찰음도 아니다. 얇은 진동판의 떨림이고, 누군가 차갑게 박제해둔 소리의 조각들이다.
진짜 비라면 바람의 방향에 따라 소리의 결이 흔들리고, 지붕을 치는 탁함과 흙바닥을 두드리는 둔탁함이 뒤섞이며 매 순간 다른 무늬를 그려야 한다. 그러나 스피커 속의 비는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어김없이 제자리로 돌아와 둥글게 말린다. 나는 자연을 듣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흉내 낸 영원한 회귀를 듣고 있다. 그런데도 내 몸은 이 닫힌 원 안에서 비로소 긴장을 내려놓는다. 정교한 가짜 앞에서 순순히, 눈을 감는다.
가짜가 진짜와 다름없는 위로를 준다면, 내가 진정으로 그리워한 것은 비라는 물질 자체가 아니었을지 모른다. 내가 원한 것은 빗소리가 만들어내는 특수한 고립의 상태였을 것이다. 비가 오면 세상의 잡음은 빗소리라는 거대한 장막 아래로 잦아든다. 타인의 소음도, 나를 쫓아다니던 강박적인 사유들도 비의 무게 뒤로 숨어버린다.
무엇보다 비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안에 머물러도 된다는 무언의 허락을 건넨다. 그 아늑하고 조금은 이기적인 단절을 손에 넣기 위해 나는 박제된 비를 방 안으로 기꺼이 들인다. 진짜 비가 오지 않아도, 그 상태만 재현할 수 있다면 출처는 상관없다고, 나는 이미 스스로와 조용한 합의를 마쳤다.
질문은 조금 더 깊은 곳으로 흘러든다. 나는 왜 이 인공적인 소리를 이토록 자연스럽다고 느끼는 걸까. 돌이켜보면 나는 숲속 오두막에서 밤새 빗소리를 들어본 기억이 없다. 내가 몸으로 아는 비는 축축한 신발의 불편함과 눅눅한 도시의 불쾌함에 훨씬 가까웠다.
그렇다면 지금 귀에 들어오는 이 소리는 실제 기억의 재현이 아니다. '비 오는 밤은 이래야 한다'는, 어디선가 습득해버린 관념을 나는 듣고 있는 것이다. 도시에 살며 잃어버린 자연에 대한 갈증을, 누군가 완벽하게 다듬어놓은 자연의 이데아로 채우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원본을 잃어버려서 복제본을 찾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가져본 적 없는 완벽한 원본을 상상하며 이 가짜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지도 모른다. 그리움의 대상이 실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묘하게 서글프지만, 동시에 그만큼 우리가 결핍의 자리를 채우는 법에 익숙해졌음을 보여준다.
오늘 밤도 나는 어김없이, 가짜 숲의 비를 방 안으로 불러들이며 생각한다. 위로의 출처를 따지는 것보다 그냥 눈을 감는 쪽이 쉽다는 걸 알면서도, 이 기묘함이 자꾸 손에 잡힌다. 그리움의 대상이 처음부터 없었다면, 나는 대체 무엇을 그리워하고 있는 걸까. 방 안에는 다시, 마른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