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이를 위해 핸들을 고쳐 쥐는 찰나의 사유
빨간 불이 켜진다. 도심의 흐름이 일시정지 부호처럼 멎는 정지선 앞, 나는 가속페달에서 발을 뗀다. 습관적으로 룸미러를 위아래로 매만지다 거울의 하단 프레임에 걸린 하얀 덩어리에 시선이 머문다. 뒷좌석 카시트 위에 웅크린 채 곤히 잠든 나의 노견이다.
오후의 햇살이 차창을 비스듬히 통과해 녀석의 등 위에 내려앉는다. 예전보다 부쩍 줄어든 살집, 그 위로 드문드문 비치는 살결과 희끗해진 털이 빛을 받아 반투명하게 빛난다. 언젠가부터 나는 저 빛이 아름답다는 생각과 두렵다는 생각을 동시에 품는다. 사랑하는 것들은 자주 그런 식으로 우리를 이중으로 감금한다.
녀석은 미동도 없다. 차가 서 있는지, 가는지, 여기가 어디인지 중요하지 않다는 듯 오로지 자신의 숨소리에만 집중하고 있다. 그 무구하고도 건조한 평화를 보고 있자니, 아주 오래전 내가 머물렀던 뒷좌석이 불현듯 소환된다.
어린 시절의 나는 아빠의 차 뒷자리에서 참 자주도 잤다. 그때 내게 자동차는 목적지로 향하는 이동 수단이라기보다, 세상의 소음으로부터 격리된 가장 안락한 요람이었다. 안전벨트를 베개 삼아 고개를 떨구면 엔진 소리는 자장가가 되었고 노면의 진동은 느슨한 흔들림이 되었다.
그때의 나는 참으로 가벼웠다. 기름이 얼마나 남았는지, 앞차와의 거리가 얼마나 위태로운지, 지금 우리가 지나는 길이 험한지 매끄러운지 알 필요가 없었다. 심지어 아빠가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지조차 묻지 않고 깊은 잠에 빠질 수 있었다. 그것은 삶의 전권을 타인에게 양도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무게 없음'의 특권이었다. 생애 가장 순도 높은 신뢰의 시간이 그 뒷좌석 안에 있었다.
초록 불이 켜진다. 이제 운전대를 쥔 것은 나다. 나는 가속 페달을 지그시 밟으며 생각한다. 신뢰란 얼마나 이상한 무게인가. 받는 쪽에서는 느껴지지 않고, 지는 쪽에서만 온몸으로 느껴지는. 달이는 지금 내가 병원으로 가는지, 아니면 좋아하는 산책로로 가는지 알지 못한다. 그저 내가 결정하는 방향에 제 생의 전부를 맡긴 채 몸을 누이고 있다.
살면서 이토록 순수한 신뢰를 받아본 적이 있었던가. 경건하다는 말이 있다. 나는 그 말이 신이나 자연 앞에서만 쓰이는 줄 알았는데, 운전석이 이렇게까지 경건한 자리일 줄은 몰랐다. 그 거대한 신뢰에 응답하기 위해 핸들을 잡은 손목에 묵직한 힘이 들어간다.
멀리 방지턱이 보이면 나는 미리부터 가속 페달에서 발을 뗀다. 속도계의 숫자가 느릿하게 줄어들고, 차체가 방지턱을 넘는 순간 발끝에 온 신경을 집중한다. 과속 카메라가 두려워서가 아니다. 뒷좌석에서 잠든 이 아이의 약해진 관절에 단 1밀리미터의 충격도 전달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코너를 돌 때도 핸들을 아주 천천히, 마치 잠든 아이의 어깨 위에 이불을 덮듯 부드럽게 감아쥔다. 내가 밟는 브레이크의 온도가, 내가 이 작은 생명에게 건넬 수 있는 가장 조용하고도 사적인 언어가 된다.
우리는 누구나 누군가의 뒷좌석에서 삶을 시작한다. 누군가가 조심스레 조절한 속도 위에서, 누군가가 미리 밟아준 브레이크의 안도감 속에서 그 위태롭고도 무구한 시절을 건너온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룸미러 속 타인의 평화를 책임져야 하는 쪽으로 자리가 바뀌어 있다.
내 개의 등 위로 햇살이 한 뼘 더 길게 드리워진다. 나는 다시 페달을 밟는다. 너무 빠르지도, 그렇다고 너무 느리지도 않게. 이 아이가 꿈속에서조차 흔들리지 않을 만큼만의 속도로. 저 하얗고 가벼운 등이 반짝이는 한, 나는 이 길의 무게를 계속 지고 갈 것이다. 그것이 한때 나를 태우고 달렸던 누군가에 대한 가장 느린 방식의 답례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