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깎는 남자

by 박지영JYP

지구를 깎는 남자 / 박지영


우리 동네 살고 있는 잘 생긴 남자

날 선 빗자루 플라스틱 블랙홀

쓸고 묶고 부러뜨리고

손만 닿으면 빨려 들어가는 마법


아침마다 돌려 깎이는 그의 행성에서

가끔 주워 담는

누군가의 잃어버린 허세

한때는 소중했을 첫사랑을 닮은 은가락지


대기권 밖에서 쳐들어오는 건 운석만이 아니다

오늘 아침

거대한 우주 채반을 통과한 비둘기를 보았다

절뚝거리는 발가락

땅바닥을 헤젓는 날갯짓

마지막 호흡을 구구구구

(쓸어 담을까?)

망설이는 남자는 표정이 없다.


구구는 팔십일인데...

뻔한 거잖아


아픈 동생은 소금을 삼킨다

칫솔을 쑤셔 넣고 휘저어주면

치약에 절여져 말라버린 웃음이 육포처럼 딱딱하다

(빛을 못 받아도 좋으니 이대로만 있어줘)

(깜깜해도 좋으니 그냥 돌기만 해)


양치도 세수도 포기한 동생이 가쁜 숨을 몰아쉰다


블랙홀은 아직 반도 안 찼는데

돌다가 멈춰버린 심장

뻔한 것을 빤하게 버릴 수 없는

쓸어 담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망설이는 남자는 표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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