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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이 많다면 친구를 잘 만나라

by 글도장

A가 나에게 얘기했다.

B가 나의 행동에 주의를 주는 것 같으니 조심하라는 거다.


물론 선의였으리라 믿는다.


하지만 전혀 신경 쓰지 않던 상황에서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에게는 신경 쓸 것, 걱정할 것이

하나 더 생겨버렸다.


사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안이었고

그게 사실인지도 알 수 없었다.


게다가 설령 불만이 있어

정말로 나에게 무슨 말을 하면

그때 내가 충분히 대처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조심해"

"잘 봐바"

"그 얘기, 너한테 하는 말 같아"


비슷한 경고들이 반복되면서

나는 조금씩 그 관계에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 선의가

어느 순간

선의가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것이 정말 선의일까 아닐까,

그 선의를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예민한 내가 문제일까 하는 고민까지 가게 되었다.


리고 결론은 그게 선의인지 아닌지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나에게 도움이 되는 상황인가 아닌가를 생각하니 답은 명확했다.


걱정이 많은 사람은 걱정을 내려놓는 것이 필요하다. 때로는 의식적으로 무디게 살아가는 것이 오히려 더 나을지도 모른다.

눈치나 예의를 무시하라는 말이 아니라,

불필요한 걱정은 덜어내고 큰일 아닌 것은 지나쳐야 한다.


그런데 옆에서 그런 얘기들을 반복하게 되면

자기 자신을 탓하거나,

남을 의심하는 등

안 좋은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이다.




‘친구 잘 사귀어라’

어릴 때 한 번쯤은 들었을 말이다.

그리고 이 말은 인생을 살면서 쭉 유효하다.

특히 나처럼 걱정이 많은 사람이라면 말이다.


그렇다면 걱정이 많은 나에게는 어떤 친구가 필요할까.

최근 나는 인간관계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보았다. 그간 나에게 가장 의미 있는 기준은 이 사람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인지, 의리가 있는 사람인 지였다.

물론 여전히 그것은 나에게 중요한 기준이다. 다만, 신뢰나 의리는 길게 보아야 알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그리고 모든 인간관계가 의리를 논할 만큼 깊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그 관계가 잠시 머무는 관계이든, 평생 갈 관계이든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내가 찾은 답은 "긍정성"이었다.

신기하게도 최근에 대화한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한 말이 있었다. 바로 부정적인 사람을 곁에 두지 말라는 거다.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부정적인 사람을 뽑지 않는다고 했다.


“사람을 잘 본다는 것이 남의 단점을 잘 보는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였던 기억이 있다.


최근에 만난 한 친구는 타인에게 늘 배울 점을 찾는다고 얘기했었다. 누구에게서나 배울 점을 찾는다는 말답게 그 사람은 겸손하고 밝다.


그래서 나는 긍정적인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을 곁에 두고자 마음먹었다. 왜냐하면 부정적인 말들은 자꾸 나를 걱정하게 하고 의심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주변의 영향에 취약한 나를 극복하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다. 명상 등을 통해 내면의 힘을 기르는 등 말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 취약성을 스스로 인정하고

그 상황 속에서 방법을 찾을 수도 있는 것 같다. 나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긍정적인 사람들을 옆에 두는 것처럼 말이다.


생각의 끝에는 항상 자기반성이 기다리고 있다. "나는 얼마만큼 긍정적인 사람일까?"


주변 좋은 사람들 틈에 내가 숨은 빌런은 아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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