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본능이 이끄는 운명

나 자신을 믿기

by 글도장

예전에 지인이 손금을 봐주면서

나는 내 타고난 것을 넘어서는 사람이라는 말을 했었다.

한쪽 손금은 타고난 것이고 다른 한 손금은 후천적으로 바뀔 수 있는 것인데,

전자보다 후자가 더 좋다는 말이었던 것 같다.

실제로 나는 운명은 개척할 수 있는 것이라고 믿어왔기에 그 말이 듣기 좋았던 것 같다.

사주나 점 이런 것들에 그다지 관심은 없었다.

결혼 전 가끔 연애운이나 결혼운이 궁금해서 커피를 마시면 덤으로 사주를 봐주는 사주 카페 같은 곳에서 장난스레 몇 번 사주를 보기는 했지만 말이다.


인생은 불확실성을 견디는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가끔 그 불확실성이 못 견딜 만큼 불안할 때가 있는데 작년의 내가 그랬었다.

나는 지쳐있었고 고갈된 나의 에너지가 언제쯤 채워질 수 있을지 간절히 알고 싶었다.

의욕이 나질 않으니 그저 앞으로의 내 운명이 나쁘지 않다는 확인을 통해 안심을 하고 싶었다. 그러던 중 마침 주변에서 역술가를 소개해 준 것이다.


사주풀이는 친절하고 전문적이었다.

전반적인 풀이가

내가 경험한 것들과 맞는 부분과 많았다.

일단 내가 작년에 힘든 것은 사주상 그럴 수 있었으며 나의 소위 대운이라는 긴 운들이 지금까지 썩 좋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줄곧 내 커리어에 대한 아쉬움과 갈망이 있었는데 그러한 것이 사주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간 스스로의 부족을 자주 탓해온 나의 마음을 조금쯤은 어루만져주는 그런 기분이 들어 위로가 되었다. 나의 예정된(?) 미래가 꽤 괜찮다는 지점도 또 하나의 위안이었다.


그런데, 사실 내가 사주를 통해 가장 크게 얻은 것은 따로 있었다.

그것은 내가 이미 옳은 선택을 해왔다는 믿음이었다. 예컨대, 재작년에 많이 아프지 않았냐고 질문을 받았다. 이래저래 몸이 아팠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큰 병이 난 것은 아니었다. 나는 그 이유가 휴직을 하면서 운동을 꾸준히 해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즉, 원래는 더 아팠을 운명인데 시기적절하게 휴직을 한 나의 선택 덕분에 조금쯤 덜 아프고 지나간 것은 아닐까 했다는 거다. 이 외에도 아이와의 관계, 인간관계에서의 선택과 결정 등 최근 내린 선택들이 나의 사주에 있어 알고 보니 득이 되는 선택들이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내가 ‘나의 사주를 알지 못한 상황’에서 내린 선택이라는 거다.

사주와 무관하게 온전히 나의 고민과 생각 끝에 내린 결정들인데,

이미 충분히 좋은 결정들을 해왔다는 것을 확인받은 기분이 들었다.

대운이 좋지 않은 시기에도 나름대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려고 애써 온 노력들과

결국 나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구나 하는 마음에 나 스스로가 대견했다.

애초에 타고난 운명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정해져 있는 게 무엇이든 간에, 내가 진심으로 고민하고 원하면 좋은 결정을 내릴 수 있고, 그것이 나의 운명을 개척할 수 있다는 생각이 나를 벅차게 만들었다.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의 기운이 돕는다’라는 문구가 떠올랐달까.

깊게 고민하고 선택하면 본능적으로 자신에게 득이 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사주를 본 후에 바로 설문조사를 해달라는 링크가 왔다. 첫 번째인가 두 번째 질문이 ‘정해진 운명이 있다고 믿나요?’였다. 사주에 만족한 것과 관계없이 나는 ‘아니요’로 대답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하는데, 앞으로 해야 할 많은 선택을 두고 이제 조금쯤은 마음이 편해지는 느낌이다. 적절한 선택을 통해 나에게 더 좋은 운명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