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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강철로 쌓아 올린 예술의 도시를 걷다

by 김지향

칼 샌드버그는 시 「시카고」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시카고


나는 빌더들이라 부르는 도시,

도살장 세계의 돼지 도살자,

도구 제작자, 곡물 적재자, 철도의 플레이어,

국가의 화물 처리인,

나의 거대한 어깨 위에 앉은 도시, 이렇게 부른다.


방탕하고, 무자비하고, 힘차고,

나쁜 소문 속에서도 나는 웃는다.


나는 시카고,

주먹을 내지르며 싸우고,

웃음으로 죽음을 무시하는 자,

대지 위에 서서 거친 웃음을 터뜨리는 자다.


(칼 샌드버그, 「시카고」, 1914)


이 시는 거칠고도 강렬한 도시의 힘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시카고를 여행하며 나는 이 시의 생생한 숨결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공항에 내려 시내로 이동하는 순간,

나는 시카고가 미국에서 대중교통이 가장 잘 갖춰진 도시 중 하나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지하철(CTA), 버스, 그리고 트램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낯선 여행자조차 길을 잃을 틈이 없었다. 첫인상부터

이 도시는 ‘움직임과 활력의 도시’라는 별칭에 어울렸다.


하늘을 찌르는 마천루들 – 윌리스 타워와 시카고 리버워크


도시의 심장을 가로지르는 시카고 강을 따라 걷다 보면,

‘하늘을 향한 인간의 도전’이란 무엇인지 실감하게 된다.

그 중심에는 한때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던 *윌리스 타워(구 시어스 타워)*가 당당히 서 있다.

높이 442미터의 마천루는 도시를 지배하는 수직적 미학의 결정체이다.

건축가 브루스 그레이엄과 파즐르 칸의 혁신적인 구조 설계 덕분에, 이 건물은 단순한 빌딩을 넘어 근대 건축의 상징이 되었다.

이어 강을 따라 보트를 타고 만난 건축물들은 시카고를

‘건축의 교과서‘라 불리게 만든 장본인들이다.

리글리 빌딩의 우아한 스페인 르네상스풍 외관,

트럼프 타워의 은빛 유리벽이 반사하는 하늘,

미국 저널리즘의 산실을 상징하는 시카고 트리뷴 타워의

고딕 양식은 각각의 시대와 정신을 증언하고 있었다.

강변을 따라 늘어선 건물들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시간과 인간 의지가 빚어낸 서사시였다.

강 위에 반사된 유리와 철골의 윤곽은 시카고가 모더니티의 스카이라인을 물 위에 펼쳐 보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도시의 리듬을 걷다 – 미시건 애비뉴와 매그니피선트 마일


시카고를 대표하는 대로, 미시건 애비뉴를 따라 걷다 보면

상업과 예술, 고전과 현대가 절묘하게 공존하는 장면을

만난다. ‘매그니피선트 마일(Magnificent Mile)’이라 불리는 이 구간은 고급 부티크와 현대적 빌딩, 그리고 역사의

숨결이 남아 있는 건축물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다크 나이트(Dark Knight:어두운 기사)》에서 고담(Gotham)은 범죄와 혼돈, 그리고 정의의

그림자가 교차하는 도시로 그려졌다.

그러나 그 고담의 실제 무대가 시카고였다는 사실은 어쩐지 우연 같지 않다.

원래 ‘고담(Gotham)’이라는 말은 영국의 전설에서 비롯된

‘바보들의 마을’을 뜻했으나, 미국에서는 뉴욕의 별칭으로

불리다가 어둠과 빛이 교차하는 현대 도시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시카고야말로 이중적 의미를 가장 잘 품은 도시이다.

고층 건물의 유리창에 반사되는 빛이 강처럼 흘러내리는

동시에, 깊은 강변과 뒷골목에는 묵직한 어둠이 깃든다.

그래서 시카고를 걸을 때마다 나는, 이 도시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한 편의 거대한 서사를 품은 갤러리처럼 느껴진다.


박물관 캠퍼스 – 지성의 바다


이 도시의 매력을 더욱 빛내는 곳은 바로 *박물관 캠퍼스

(Museum Campus)*이다.

이곳에는 애들러 플래네타리움, 셰드 아쿠아리움,

그리고 필드 자연사 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천문학, 해양학, 자연사가 서로의 경계를 허물고 교차하는

공간에서, 시카고는 ‘우리가 알고자 했던 모든 열망‘을

하나의 거대한 틀에 담아 ‘지식의 우주’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층 버스를 타고 도심을 따라 달리며 창밖에 펼쳐진

박물관들의 위용을 바라보는 순간,

나는 학문과 예술이 시민의 삶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도시의 저력을 느낄 수 있었다.


예술의 심장 – 시카고 미술관


그리고 마침내 나의 여행의 백미,

*시카고 미술관(Art Institute of Chicago)*에 도착했다.

1986년 영화 Ferris Bueller’s Day Off에서 주인공들이

거닐던 곳에 30여 년이 흐른 지금 내가 오다니!

페리스가 미술관을 거닐 때처럼 나의 발걸음이 옮겨질

때마다 시카고는 도시의 소음과 전시실의 정적을 한순간에 움켜쥐고 있었다.

이곳은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미술관 중 하나로,

세계적인 인상주의와 현대 미술 컬렉션을 자랑한다.

르누아르의 빛과 색채는 따스한 오후의 햇살을 닮아 있었고, 모네의 수련은 시간의 흐름을 포착한 영원의 순간처럼 다가왔다. 무엇보다도 칸딘스키의 추상화 앞에 서자, 나는 색채와 선율이 뒤섞여 울려 퍼지는 음악을 듣는 듯한 경험을 했다.

예술이란 단순한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 존재를 더욱

확장시키는 또 하나의 언어이며 우리의 감각은 끊임없이

세상을 해석하는 방식임을 깨닫게 된다.

그림은 수많은 이야기, 건축, 사람과 빛, 바람과 물을

응축하고 있었으며 나는 그 앞에서 오래도록 머물고 싶었다.


시카고, 강철과 예술이 어우러진 풍경


시카고는 강철의 도시이자 예술의 도시이다.

대화재로 폐허가 되었던 땅에서 세계 건축의 교본을 세워

올리고, 산업의 힘과 예술의 혼을 동시에 품어낸 도시.

그곳에서 나는 칼 샌드버그의 시가 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지를 알게 되었다.


그는 말한다.

“방탕하고, 무자비하고, 힘차고… 나는 시카고다.”

(“Hog Butcher for the World, Tool Maker, Stacker of Wheat, Player with Railroads…” — Carl Sandburg)


시카고는 여전히 웃으며 거칠게 살아 있는 도시, 그리고

동시에 세계인이 꼭 한 번은 만나야 할 문화적 심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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