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에 내민 손

by 김혜진

커다란 창가에 앉아 있는 고양이의 뒷모습이 보인다. 어둑한 방안에는 눈 부신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고양이가 내다보고 있는 바깥세상은 초록의 생기가 돋기 시작하는 봄날이다. 늘어진 여린 나뭇가지들은 연둣빛 향기를 내뿜는 듯하다. 미동 없이 혼자 앉아 있던 고양이는 많이 외롭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창밖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길 원한다. 갑자기 방문을 열며 주인이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고양이는 자신의 고요한 감성을 깨우는 주인의 소리에 화를 내며 뒤돌아본다.

몇 년 전 보았던 6컷 정도의 만화이다. 내용을 보고는 ‘이건 나잖아.’라고 자조 섞인 감탄을 낸 적이 있다. 창가에 앉아 바깥세상을 궁금해하면서도 깨어지는 자신의 울타리를 그리워하는 모습이 꼭 나를 닮았다. 살면서 원하던, 원하지 않던 부딪히며 잘 순응하는 척, 무던한 척하면서 살아내 왔다. 하지만 세상의 눈 부신 햇살은 마냥 따뜻한 것이 아니라 따가울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시간이기도 하다. 그럴수록 나는 더 웅크리고 소심해져 갔다. 그게 내가 세상을 대하는 방식이었다.


의미 없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지쳐갈 때 나를 구해준 것이 있다. 바로 글쓰기다. 차마 창문을 열고 나가지는 못하고, 어둑한 방의 책상 위에 있는 전등을 켰다. 그 불빛에 의지하여 ‘나’를 써 나가기 시작했다. 모두가 돌아가고 없는 운동장 바닥에 혼자 앉아 그림을 그리던 유년 시절, 웃고 울고 갖가지 색깔과 패턴으로 콜라주를 이루는 나의 청춘 시절, 살아내느라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어른의 시대 그리고 나를 감싸는 이들. 언뜻 헝클어지고 망가진 실타래 같지만, 그들은 글이 되어 나오길 기다리는 동굴 속 요정들 같다.


창밖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조심스레 창문을 빼꼼히 열어 보았다. ‘브런치 스토리’였다. 혼자만의 대화 같던 나의 글들이 생기를 얻기 시작한다. 나의 일기장 또는 노트북의 한글 파일에 갇혀 있던 실타래들이 조심스레 풀려나오는 느낌이다. 나는 창문을 열고 크게 숨을 들여 마신다. 여전히 따뜻한지 따가운지 알 수 없는 햇살이 사방에 가득하다. 하지만 나는 창밖으로 손을 내밀어 본다. ‘브런치 작가가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라는 이메일이 나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글을 쓰는 많은 분이 그렇겠지만, 글은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한다. 막연하고 불안한 것들이 글을 통해 제어할 수 있는 형체가 되어주기도 한다. ‘나’라는 존재를 구체화시키는 작업이다. 내 손을 잡아 준 ‘브런치 스토리’는 내가 나로 숨 쉬는 공간이 되어준다. 비록 조회수가 얼마 되지 않더라도 나를 받아주는 든든한 지원군을 확보한 느낌이다. 읽어준 분들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하고 고마운 일인가. 무엇보다도 쓸 수 있음이 주는 용기와 행복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거부할 수 없는 약속이라 여기며 오늘도 나는 창을 열고 글을 쓴다. 그리고 창밖으로 뚜벅뚜벅 걸어 나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