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댁 고방에는 동화책들을 비롯해 ‘어깨동무’ ‘과학소년’ 등과 같은 시간 지난 잡지들도 많았다. 그 속의 만화와 기사들은 시골 아이인 나에게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했다. 읽던 책을 읽고 또 읽고 하는 중에 내 눈에 들어온 페이지가 있었다. 아마 ‘어깨동무’의 독자 작품란이었던 것 같다. 그 속에 짧게 써진 글들이 있었는데 독자가 투고한 동시들이었다. 그것은 나를 신기한 글 속으로 빠져들게 했다. 아마 단어도 예쁘고, 어린 마음에 ‘이렇게 쓰는 글도 있구나’하고 신기했던 모양이다. 그 잡지의 동시들이 말하는 투가 너무 좋았다. 나의 詩 사랑은 그때 시작되었다.
학년이 올라가 5학년 때쯤이었다. 교회 주일학교 선생님이 특이한 숙제를 내줬다. 원고지에 글짓기 2장을 해 오면 과자를 주시겠다는 것이다. 당연히 과자를 좋아하는 내가 빠질 수 없었다. 그러나 글짓기를 좋아하지 않는 시골 아이의 머리에서 글이 나올 리가 없었다. 나는 당장 할머니 댁에 가서 잡지 뒤에 있는 동시를 베껴 쓰기 시작했다. 동시는 글도 길지 않으면서 원고지 2장 채우기에는 딱 좋은 양이였다. 매 주일 원고지를 내고 과자를 먹었다. 양심의 가책은 없었냐고? 그게 잘못된 줄 자체를 몰랐었다. 그냥 원고지 2장을 채우는 게 목적이었으니까.
그런데 큰 사달이 났다. 주일학교 선생님이 평일 오후에 우리 집에 찾아오신 거였다. 네가 글을 너무 잘 쓴다고. 멈추지 않고 매일 쓰면 좋겠다고. 그러고선 원고지 한 묶음을 선물로 주고 가셨다. 선생님을 배웅해 드리는 길에는 눈이 내렸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뭔가 굉장히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제야 양심의 가책을 심하게 느낀 것이다. 눈길을 밟아 따라가서 잘못했다고 빌고 싶었다. 눈이 오는 골목길의 그 시간과 어둑한 공간은 내 마음에서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았고 지금도 남아 있다.
남겨진 원고지 묶음. 나는 교회에 오랫동안 나가지 않았다. 책상 위에 놓인 원고지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다 나도 동시를 쓰기 시작했다. 베끼기가 아니라 내 동시를 썼다. 워낙 좋아하며 베낀 탓인지 비슷하게 써보려고 노력했고 내 딴에는 내 것도 꽤 괜찮다는 생각마저 했다, 놀랍게도 나는 몇 장인 지는 기억나지는 않지만 꽤 두꺼웠던 원고지 뭉치를 내가 쓴 동시로 다 채웠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빨간 선과 칸으로 이루어진 원고지를 채워갔던 기억이 있다. 詩는 그런 방법으로 나에게 왔다. 그렇게 나는 詩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커갔다.
詩는 나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나는 거창한 시문학을 배운 적도 없고 국어과나 문예창작과 출신도 아니다. 詩는 지극히 내향적인 아이가 들킬 걱정 없이 마음을 드러내어도 되는 공간, 중첩된 의미 뒤에 내가 숨을 수 있는 공간을 주는 맘 편한 존재, 단어 하나의 느낌 때문에 잠 못 들어할 정도로 설레하고, 가끔은 칼을 품은 언어에 스스로 다치는 것을 감내하며 마주하는 애정의 존재였다. 나의 대학 시절은 질풍노도의 시간이었다. 생각과 너무 다른 현실에서 시가 위로해 주었고 그 시기의 친구들과 교류하는 대화의 매개체였다. 현실을 보는 방법은 詩를 통해 배웠고 내 감정을 대변하는 친구가 되어 주었다.
“야, 일기는 일기장에 쓰는 거야!”
출판사에 취직한 동아리 선배는 내가 쓴 글들을 읽고 몇 시간 동안 칼날 비평을 했다. 나는 모든 감정이 동시에 추락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날 이후 詩라는 존재를 종이 접듯 꼬깃꼬깃 접어 저 멀리 던져버렸다. 첫사랑과의 이별이었다. 그냥 詩를 읽는 사람으로 살아가기로 했다. 그래서 지금도 서점의 시집 코너를 그냥 지나지 못한다. 무심코 꺼내든 작은 시집을 통해 살아 움직이는 감정들이 내게 쏟아져 들어오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내 젊은 날이 발견되면 나는 반가움에 조용히 혼자 손을 내밀고 웃는다.
내가 버렸던 그 첫사랑은 달콤 쌉쌀한 향으로 나를 떠나지 않고 있다. 잠시 꺼내어 닦아 볼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첫사랑은 첫사랑일뿐 아무한테나 꺼내 보이는 건 아니었다. 다만 문득 내가 어둡고 추워서 뒤돌아보는 순간, 나를 마주 보며 웃어 주면 된다고 전하고 싶다. 빨간 원고지에 연필로 꾹꾹 눌러 동시를 베껴 쓰던 그 아이는 지금도 가슴을 두드리는 詩 한 줄이 발견되면 노트에 필사를 한다. 이제는 주책맞은 감수성만 있지만 오늘은 나를 품어주는 첫사랑이 그립다. 그에게 어릴 적 논둑에 핀 하얀 개망초꽃 한 다발을 묶어서 건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