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포스트 디자인 씽킹 시대

언어의 한계를 넘는 예술적 사유와 시각적 맵핑

by 후일담



1. 기능적 문제 해결의 한계와 회의실의 공허함


"분명 우리 조직의 문제인데, 어디서부터 엉킨 건지 말로 정확히 설명하기가 어렵네요."

교육과 코칭 현장에서 수많은 리더와 구성원들이 공통으로 토로하는 난감함이다. 현대의 조직들은 빠르고 혁신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디자인 씽킹(Design Thinking)'을 비롯한 훌륭한 방법론들을 적극적으로 차용해 왔다. 벽면을 가득 채운 형형색색의 포스트잇과 브레인스토밍은 아이디어를 시각화하고 단기적인 쟁점을 타개하는 데 강력한 동력을 제공한다.


다만, 다가오는 시대의 조직이 마주한 과제는 단순히 기능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만 머물지 않는다. 세대 간의 이해, 내적 동기의 발견, 그리고 팀으로 함께 일하기 위한 보이지 않는 문화적 토대를 다지는 일은 아이디어의 발산만으로는 온전히 가닿기 어려운 영역이다. 눈앞의 현상 이면에 존재하는 사람과 관계의 '맥락'을 읽어내기 위해서는, 기존의 훌륭한 도구들에 더해 인간의 내면을 다층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새로운 차원의 지적 렌즈가 요구된다.




2. 관점의 전환 : 현상을 해석하는 예술적 사유


문제 해결의 역동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구성원의 서사를 놓치지 않기 위해 주목해야 할 것은, 대상을 고유한 맥락 속에서 바라보는 '예술사적 안목(Artistic Perspective)'이다. 동양 산수화의 공간 구성 원리인 '삼원법(三遠法)'은 이러한 입체적인 시선이 조직 문화에 어떻게 덧입혀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훌륭한 은유다. 하나의 화폭 안에 세 가지의 다른 시점을 공존시키는 이 화론처럼, 조직과 개인을 바라볼 때도 다각적인 통찰이 작용한다.


거시적인 비전과 궁극적인 지향점을 우러러보는 시선(고원), 드러난 현상 너머 구성원들의 숨겨진 서사와 침묵의 층위를 굽어보는 시선(심원), 그리고 조직을 둘러싼 수평적인 관계망을 넓게 관조하는 시선(평원). 파편화된 현상들을 수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 세 가지 시선을 오가며 상황의 이면을 큐레이팅할 때 조직은 비로소 근본적인 변화의 실마리에 다가서게 된다.




아비 바르부르크, 므네모시네 아틀라스, 출처_프리즈.png 파편화된 현상을 하나의 지형도 위에 엮어내는 시각적 맵핑. (아비 바르부르크, <므네모시네 아틀라스(Mnemosyne Atlas)>, 1929 (last version)

Reconstruction by Roberto Ohrt and Axel Heil, 2020

출처 : FRIEZE (Courtesy: © The Warburg Institute, London/fluid; photograph: Tobias Wootton)




3. 사유의 구조화 : 추상을 궤도로 올려놓는 라이프 맵핑


예술적 사유로 길어 올린 통찰은, 현실에 안착할 물리적인 뼈대를 만날 때 비로소 구체적인 동력을 얻는다. 머릿속을 부유하는 감각과 생각들을 하나의 거대한 화면 위에 시각적인 궤도로 펼쳐내는 작업, 그것이 '맵핑(Mapping)'이다.


말로는 차마 다듬어지지 않던 주관적인 감정, 고정관념, 가치 판단의 기준들은 맵 위에서 고유한 색과 선으로 치환된다. 현재 자신이 가장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는 지점은 어디인지, 혹은 철저히 방치되어 있던 이면의 요소가 조직의 새로운 동력으로 전환될 수는 없는지 가만히 응시하고 탐색하는 과정이다. 흩어져 있던 개인의 경험과 조직의 이슈들은 이 구조화 과정을 거치며 촘촘하게 연결된 하나의 내러티브로 드러난다. 그동안 한 줄의 언어로 납작하게 압축시켜 왔던 시간들을 지형도 위에 입체적으로 세우는 순간, 구성원들은 조직 안에 이미 존재하고 있던 새로운 대안의 시나리오를 스스로 목격하게 된다.




4. 지도를 읽어내는 사람, 새로운 시대의 프랙티셔너


다가오는 시대의 조직 환경은 더욱 복잡하게 얽힌 지형도를 띠게 될 것이다. 이 거대한 지도 앞에서 참여자들과 나란히 서서, 그들이 직접 자신의 고유한 에너지를 발견하도록 '성찰적 대화'를 이끄는 존재의 역할이 점차 중요해진다. 편견 없는 중립적인 관점으로 현상을 조망하고, 예술적 영감과 인문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본질을 향한 진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문화예술 매개자'의 존재 말이다.


이것은 기존의 일하는 방식을 전면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튼튼한 토대 위에 잃어버렸던 서사와 맥락을 더하는 작업에 가깝다. 눈앞의 벽에 아이디어를 채워 넣는 역동성과 더불어, 그 벽 너머의 맥락을 읽어내고 팀의 고유한 궤도를 단단하게 그려내는 관점. 사유의 시각적 구조화를 통해 개인과 조직을 입체적으로 조망하는 이 시선은, 앞으로 우리가 팀으로 연대하며 나아갈 방식에 새로운 화두를 던져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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