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다는 말은 내 귀에도 들린다

칭찬을 건네는 연습

by 소소

10년 넘게 머리를 맡기는 선생님이 있다. 숏컷을 결심했을 때 검색 끝에 찾은 선생님이다. 그전까지는 계속 긴 머리를 묶고 다녀서, 길이를 잘라야겠다 싶을 때쯤 아무 미용실에나 들어가는 식이었다. 내 모질을 잘 알면서 솜씨가 좋은 선생님을 한 번 만나고 나니 이제는 모험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이 분께 머리를 맡긴 기간 내내 선생님은 혼자 영업을 하셨는데, 최근 프랜차이즈 살롱에 들어가셨다. 매번 선생님에게 모든 걸 다 받는 데 익숙해져 있었는데, 얼마 전 거기서 펌 시술을 받으면서 오랜만에 선생님이 아닌 수습생 스탭에게 샴푸를 받게 되었다.



내 머리를 감겨준 분은 손가락 힘이 아주 좋았다. 긴장했는지 물 온도 체크를 안 하길래 의아했는데, 그런 실수 따위 금세 잊게 하는 힘이었다. 두피를 팍팍 만져주는 손길이 너무 시원했다. 이 말을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어떻게 말을 할지 고민이 시작됐다. 샴푸가 다 끝나면 바로 말할까? 중간에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건넬까? 몸을 일으켜 수건을 감아줄 때 고맙다고 할까? 자연스럽게 말하려면 어떻게 하지? 뭐라고 말을 건넬지 머릿속으로 여러 버전의 대사로 계속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나는 원래 이런 말을 잘 못한다. 말솜씨가 좋지 않다고 생각해서 내 말이 어떻게 들릴지 지나치게 걱정하는 편이다. 특히 컴플레인을 어려워하는데, 큰 손해가 아닌 이상은 그냥 참고 넘어가되 다시는 안 가는 편이다. 그런데 칭찬도 마찬가지로 어렵다. 좋은 말을 건네려다가도 혹시 가식적으로 들리지 않을까, 괜히 민망한 상황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그게 꼭 배려가 아닐 수도 있다는 건 나와 정반대인 남편을 만나고서야 알게 되었다. 남편은 뭐든 그때그때 표현하는 사람이다. 그게 부러웠다. 그 후로 연습이 더 되어서인지, 나도 나이를 먹고 부끄러움이 줄어서인지, 이제는 그래도 조금 피드백을 줄 수 있게 되긴 했다.

수습 스탭에게 시원하다는 말을 할 생각을 하다니, 나 달라지긴 했구나, 이런 생각을 하며 샴푸를 받다가, 그만 너무 시원한 나머지 나도 모르게 아- 하고 감탄을 뱉어버렸다. 본론을 꺼내기 전 추임새 같은 느낌이었다. 손님이 무의식적으로 낸 소리에 수습생은 크게 반응했다.

"네?"

나는 살짝 당황했다. 소리를 내려던 건 아니었는데. 그러나 이내 침착함을 되찾고 일부러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진짜 시원한데요. 너무 좋아요." 내 말에 그는 안도하듯 아 정말요? 다행이네요,라고 대답했다. 이어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가 약간 상기된 것도 같았다.

의외로, 고민하던 말을 뱉고 나서 확실히 달라진 건 내 기분이었다. 그가 내 칭찬을 좋게 들어줘서 좋긴 했다. 그렇지만 내 기분이 좋아진 건 그의 반응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는 왜 기분이 좋아졌을까 생각하다가, 갑자기 즐겨 듣는 한 팟캐스트의 슬로건이 떠올랐다. "좋은 걸 좋다고 말하기". 나는 이 말을 늘 좋아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즐거움으로 해석했다. 그런데 좋다는 말을 입 밖으로 내면 그 말은 내 귀에도 들린다. 좋다는 말을 듣는 건 나이기도 했던 것이다.

드라이를 마치고 완성된 내 머리를 거울 속에 비춰 보았다. 아직 어색하지만 생각보다 잘 어울린다. 선생님께 인사를 하고 미용실을 나서는 길, 입가에 미소가 남아 있었다. 너무 좋았다는 내 말이 아직 귓전에 울리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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