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디 코베
영화를 본 지 꽤 지났지만 이제야 남겨보는 감상
건축을 전공하지는 않지만 부모님의 영향으로 예전부터 건축이나, 많은 건축디자인 책들을 접해왔다. 지난해에는 예술분야의 교양수업을 통해 건축의 변화양상에 대해서도 배워볼 수 있었는데, 브루탈리즘은 처음 들어본 키워드였다.
노출 콘크리트 건물은 이제는 익숙한 건물 양식 중 하나이다. 군위의 사유원이나, 제주도의 몇몇 뮤지엄 등의 건물을 떠올릴 수 있다. 영화 브루탈리즘은 그러한 건물의 속에 숨은 이민자의 이야기를 볼 수 있는 영화였다.
미국의 아메리칸드림을 나타내는 듯한 웅장한 음악과 배편에서 나와 밖을 바라보는 라즐로의 후련한 미소는 이 이야기의 시작을 알린다. 뒤집어진 자유의 여신상은 마냥 순탄치 못한 그들의 일생을 내포하는 것 같기도 하다. 라즐로는 1부에서는 그의 아내 에르제벳과 편지를 주고받는다. 만나지 못하더라도 그들은 계속해서 버텨오고 있음을 을 볼 수 있다.
(술과 약에 절여있기도 하지만)
건축주인 해리슨의 모습은 2부에서 더욱 크게 느껴진다. 해리슨의 비뚤어진 욕망은 라즐로 가족들에게 큰 폭력으로 다가왔다. 이후 에르제벳이 헤리슨일가의 식사자리에 찾아가는 장면은 처절하고, 더욱 슬픈 그들의 현실을 엿볼 수 있었다. 몇십 년의 시간이 지나 베네치아의 비엔날레에서 라즐로의 작품을 조피아가 이야기하며 미완된으로 완성된 밴 뷰런 커뮤니티 센터를 볼 수 있었다. 전쟁 당시 지냈던 수용소를 본떠 만들었다는 얘기는 그들의 역사를 기억하겠다는 이야기로 느껴져 놀라웠다.
하지만 마지막 조피아가 “과정이 아니라 목적지가 중요했다”라고 언급하며 막을 내리는데, 이 말 전에 라즐로의 작품에 대한 설명은 물론 이 영화가 끌고 나간 이야기들은 과정의 중요성도 보여주고 있다 생각했는데, 마지막 그녀의 한마디는 약간의 의구심을 남기게 했다. 아마 그들에게 희망이라는 종착지가 그만큼 중요했던 것을 이야기하고 싶았던 것일까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긴 시간임에도 관객을 사로잡는 음악과 건축물의 미학은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만들었고, 마지막 엔딩크레딧의 비틀린 모습까지 눈을 뗄 수 없는 재미있는 영화였음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