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의 저작권 경계선
2023년, 영국 저작권청(UKIPO)은 하나의 질문을 세상에 던졌다.
“AI가 만든 예술작품에 저작권을 부여해야 하는가?”
이는 단지 법률의 문제가 아니었다. 창작의 주체가 바뀌는 순간, 인간은 더 이상 중심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현행 대부분 국가의 저작권법은 "인간 저작자 원칙"을 따른다.
한국 저작권법 제2조 제1호는 "저작물은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이라고 정의하고 있으며, 미국 저작권청(USCO) 또한 “인공지능이 단독으로 생성한 콘텐츠는 저작권 보호 대상이 아니다”는 명확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2023년 3월, Zarya of the Dawn 판결 참조).
이 원칙은 AI가 아무리 뛰어난 작품을 만들더라도, 그것이 "인간의 창작 행위가 개입되지 않았다면 보호받지 못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현실은 이미 경계를 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Statista에 따르면, 2024년 기준 AI 기반 콘텐츠 생성 시장은 약 500억 달러(약 68조 원)에 달하며, 2026년까지 1,09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그중 이미지·음악·영상 생성 부문이 가장 빠른 성장을 보이고 있으며, AI 툴을 활용해 상업용 창작물을 생산하는 기업도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예술과 산업의 접점에서, 창작은 더 이상 순수하지 않다. 그것은 효율이며, 비용절감이며, 자동화의 대상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저작권 분쟁 사례도 늘고 있다.
Getty Images vs. Stability AI: AI 학습 데이터로 사용된 수백만 개의 사진이 사전 동의 없이 활용된 사실이 알려지며, 2023년 미국과 영국 법원에 소송이 제기되었다.
코믹북 Zarya 사건(미국): AI 이미지 생성툴 Midjourney로 만든 만화가 저작권 등록 대상이 될 수 있는지를 두고 벌어진 분쟁에서,
미국 저작권청은 "인간이 개입한 텍스트는 보호하되, 이미지 자체는 보호 대상이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이런 사례는 우리에게 묻는다.
저작권은 ‘누구의 것’인가?
결과를 낸 자의 것인가, 씨앗을 뿌린 자의 것인가?
AI는 과거 데이터를 기반으로 ‘창작처럼 보이는 결과’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그것은 경험, 감정, 의도, 실존의 시간을 담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진짜 창작의 본질은, 불확실성과 시간의 누적, 감정의 침잠에서 비롯된 ‘결정 불가능성’에 있다.
그리고 그 시간을 지켜주는 것이 바로 저작권이다.
앞으로 AI가 창작 과정에 참여하는 빈도는 점점 더 높아질 것이다. 이에 대한 법적·제도적 대응도 구체화되고 있다.
EU 인공지능법(AI Act)에서는 AI가 만든 결과물에 대한 책임과 소유를 명확히 분리하고, 생성된 콘텐츠가 AI에 의해 만들어졌음을 표시할 의무를 논의 중이다.
WIPO(세계지식재산기구)는 2024년부터 “AI와 저작권”을 정기 의제로 설정하고, 국제 공동 기준 마련에 착수했다.
그러나 기술적 규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본질적으로 우리는 ‘창작의 가치를 인정할 줄 아는 사회인가’에 대한 질문 앞에 서 있다.
AI는 모방할 수 있지만, 고통은 모방하지 못한다. 인간이 창작에 쏟은 시간, 실패, 감정은 데이터화되지 않는다. 저작권은 그 시간을 지켜주는 최후의 약속이다.
이제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AI를 도구로 활용하되, 창작자의 이름과 시간을 존중하는 윤리적 체계를 만들 것인가. 아니면 창작의 본질을 효율과 속도로 대체해 버릴 것인가.
기술은 진보하고, 법은 따라잡을 것이다.
하지만 그 경계에서 우리는,
여전히 ‘누가 창작자인가’라는 물음에 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