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이 한창이던 가을 초입.
잠깐의 휴식 시간, 반 아이들이
유로밀리언 얘기로 들썩이기 시작했다.
이번 주 유로밀리언 봤어? 상금이 장난 아니야!
유로밀리언은 유럽 전역에서 판매되는 복권이다.
브렉시트를 했지만 영국도
여전히 이 복권에는 참여하고 있었다.
일주일에 두 번씩 추첨을 하는데,
최근 몇 주 동안 1등 당첨자가 나오지 않아
무려 100밀리언 유로,
우리 돈으로 1,500억 원이 넘게
상금이 쌓였다는 거다.
흥미로운 건 영국에서는 로또 당첨금에
세금을 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행운에는 세금을 매기지 않는다는 철학 덕분에,
당첨금 전액이 그대로 당첨자의 통장으로 들어간다.
천억 원이 넘는 돈이, 세금 없이.
그러니 사람들의 상상은 더욱 화려해졌다.
너 그거 알지?
유로밀리언 당첨되면 비자도 나온대.
미국에서 온 친구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다.
비자 문제로 고민 중인
여러 외국인 아이들의 눈이 반짝인다.
로또 당첨보다 더 어려운 게
바로 이 나라의 취업 비자다.
실제로 당첨자에게
영주권이 발급되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렇게 큰 돈이면,
투자를 하든, 회사를 세우든, 어떤 방식으로든
비자 문제는 해결될거다.
그만한 자산이 생기면 영국도 달라질 거다.
그날 이후, 나도 매주 한 장씩 유로밀리언을 샀다.
혹시 아나, 인생이 바뀔지.
한 장에 2파운드 남짓이지만,
그 안에 담긴 기분 좋은 상상은
값으로 환산할 수 없었다.
당첨되면 회사를 차릴까,
로펌을 만들까,
가족들에게 런던에 집을 한채씩 선물할까.
하루하루 벅찬 수업과 예습/복습에 치이다가도
잠깐씩 이런 달콤한 상상을 하는 시간들 덕문에
웃음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그리고 어느 금요일.
당첨자가 오스트리아에서 나오고 말았고
그날 밤, 그렇게 나는 현실로 돌아왔다.
나의 진짜 로또는,
어쩌면 이 지루하고 치열한
하루하루 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