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갓집 맏며느리의 딸로 자란 나에게 결혼이라는 건 한마디로 미친 짓이었다.
어릴 적부터 결혼이 내 인생과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결론을 자연스럽게 내렸고 ‘결혼을 하지 말아야지 ’ 다짐하며 자란 것은 아니었지만 나에게 결혼은 애초에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모든 결혼이 한 가지 형태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보고 자란 세상에서의 결혼은 엄마의 일방적인 희생 위에서 유지되는 것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그런 모습을 지켜보며 결혼에 대한 의문과 불신이 자리 잡았고 그것은 쉽게 해소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엄마와 다른 나의 성향과 능력치를 고려해 비혼이라는 현명한 판단을 내린 것이라고 늘 생각했다.
그렇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엄마는 자라면서 내가 결혼에 대해 부정적 반응을 보일 때면 늘 똑같이 말했다.
“너희들이 좋은 사람 만나서 행복한 가정을 꾸렸으면 좋겠어.”
그 말이 나에겐 도무지 말이 되지 않았다.
결혼이 그렇게 고되고 늘 아프고 힘들다면서....
엄마가 그런 말을 할 때면 알레르기 반응처럼 거부감이 들었다.
결혼이 더 싫어졌고 숨이 막혔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고, 가끔은
‘이렇게 좋은 사람과 결혼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으로 가는 길까지는 나에게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고 결혼의 낌새만 보여도 본능처럼 도망쳐버렸다.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고 가부장 적인 우리 집에서 딸들의 결혼 마지노선이라 여겨지는 서른을 향해 가던 어느 날
드디어 집안의 최고 어른이신 할아버지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둘째 시집 안보내니? 대학 졸업한 지가 언젠데 아직도 결혼 소식이 없어?”
그 순간부터 아빠는 매주 선자리를 들고 왔고 나는 딱 한번 예의를 지키기 위해 나간 선을 끝으로 비밀 작전을 짜듯 첩모영화 뺨치는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결국,
비행기 티켓을 끊어 외국으로 도망쳐버렸다.
적진에 홀로 남겨져 나의 변호인이 되어야 할 엄마에게는 너무 미안했지만 그대로 있었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의 아내, 며느리고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이성적 판단을 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인생은 언제나 뜻대로 흘러가지만은 않는 법이다.
그렇게 목숨 걸고 도망쳐 간 곳에서 나는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하루가 멀다 하고 돌아오라는 부모님의 닦달도 모른 척하며 그곳에 뿌리내리려 했던 야무진 계획은 1년 반 만에 허무하게 끝이 났고 결국 나는 웃으며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마지노선이라 불리던 서른을 한 달 앞두고 결혼에 골인하게 되었다.
나의 결혼식은 말 그대로 집안의 축제였다.
모두가 큰 숙제를 끝낸 듯 기뻐하며 나를 축하해 줬고 그중에서도 결혼식 내내 환하게 웃던 할아버지의 모습은 지금도 잊히지 않고 내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지금 나는 결혼 20 주년을 코앞에 두고 있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큰 탈 없이 결혼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에게 물었던 적이 있다.
“엄마 그렇게 힘든 결혼 생활이었는데 왜 내가 결혼 안 할 까봐 걱정했어?”
엄마는 웃으며 말했다.
“힘들었지. 그렇다고 매일이 다 힘들었겠니?
너희들이 보기엔 엄마가 항상 고단해 보였을지 몰라도 엄마는 행복한 순간도 참 많았어.
결혼을 했으니까 엄마라면 껌뻑 죽는 너희들을 만 날 수 있었잖아. “
‘엄마는 정말 행복한 순간이 있었던 걸까...’
지금은 고등학생이 된 큰딸이 가끔 나에게 말한다.
“엄마 나는 결혼은 못할 것 같아. 집안일도 싫고 아이 낳아서 기르는 건 더더욱 못할 일인 것 같아.
난 그냥 엄마랑 살래. “
그런 말을 들을 때면 나는 잠깐 고민에 빠진다.
혹시 나의 결혼 생활이 이 아이에게 너무 고단하게 보였던 건 아닐까?
그래서 내가 그랬던 것처럼 이 아이에게도 결혼이 부정적 의미로 다가가 버린 건 아닐까?
나는 우리 엄마처럼 가족을 위해 온전히 헌신하지도 않았다.
나를 다 바쳐서 결혼생활을 유지하지도 않았다.
사실 애초에 그럴만한 능력자가 되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나름 잘 버텨왔고 어쩌면 생각보다 잘 살아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딸에게 , 그리고 혹시 결혼을 두려워하고 있을 누군가에게 비혼주의자였던 내가 말해 주고 싶은 것이 있다.
세상에 완벽한 결혼은 없다.
모두가 꿈꾸는 결혼이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 꿈이 정답은 아니고 누구에게나 맞는 모양새일 수도 없다.
내가 보고 자란 결혼이 불합리하고 고단했을지도 모르지만
그 역시 결혼의 일부였을 뿐이다.
그 안에는 분명히 행복도 있었고
웃음도 있었다.
그러니 내 딸, 혹은 누군가 결혼이라는 단어가 무겁게 느껴질 때면 , 한 발짝 물러서서
‘결혼’ 그 자체보다 자신에게 더 집중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게 정말 내 삶과 어울리는 일인지, 그리고 그 안에서 내가 웃을 수 있는 순간이 있는지를 천천히 스스로 에게 물어보면 좋겠다.
결혼은 삶의 일부일 뿐 , 내 삶의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지금의 나는 조심스럽게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