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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샤멜 소스, 하얀 부드러움 속의 은유

요리의 도

by 나일주

베샤멜 소스, 하얀 부드러움 속의 은유


벨루테가 맑은 스톡(닭·생선·송아지 등)을 바탕으로 한 ‘부드러운 육수 소스’라면,

베샤멜 소스(Béchamel sauce) 는 우유를 기본으로 한 ‘하얀 루 소스(White Sauce)’ 이다.


하얀 빛깔의 소스 한 숟갈이 고기와 채소, 파스타를 전혀 다른 요리로 바꾼다. 밀가루와 버터, 우유가 만나 탄생한 이 부드러운 소스는 서양 요리의 기본 중의 기본이다. 겉으로는 단순하지만, 베샤멜은 서양 소스 문화의 출발점이자 “하얀 무대”와 같은 존재다.




탄생의 배경 ― 귀족의 부엌에서

베샤멜 소스의 이름은 17세기 프랑스의 재상 루이 드 베샤멜(Louis de Béchamel)에서 비롯되었다. 원래는 단순한 밀가루죽에 우유를 더한 것이었으나, 베샤멜 후작의 이름이 붙으며 고급 소스로 격상되었다. 왕실의 연회와 귀족의 식탁을 장식하던 이 소스는 곧 프랑스 요리의 기초로 자리 잡았다.


소스의 모체 ― 어머니 같은 역할

19세기 요리사 오귀스트 에스코피에는 다섯 가지 모체 소스를 정리했는데, 그중 하나가 베샤멜이다. 이 하얀 소스에서 모르네(Mornay), 소스 쉬프롱(Soufflé) 등 수많은 파생 소스가 태어난다. 베샤멜은 “어머니 같은 소스”라 불리며, 무수한 요리의 출발점이 되었다.


하얀 색의 의미

서양 요리에서 베샤멜의 흰색은 단순히 시각적인 아름다움이 아니다.


순수와 기본의 은유

어떤 재료와도 어울릴 수 있는 빈 캔버스

음식 위에서 재료의 색을 살려주는 배경


즉, 베샤멜은 자기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다른 재료를 돋보이게 하는 ‘겸손한 힘’을 지닌 소스이다.


조리와 영양

재료: 버터 30g, 밀가루 30g, 우유 500ml, 소금·후추 약간, 넛맥 조금(선택)

조리:

냄비에 버터를 녹이고, 밀가루를 넣어 루(roux)를 만든다.

우유를 나누어 붓고 계속 저어가며 걸쭉하게 만든다.

소금·후추, 원한다면 넛맥으로 풍미를 더한다.


영양: 주재료가 우유와 버터라서 칼슘과 지방이 풍부하다. 단백질은 적지만, 고기·채소·파스타와 함께 먹으며 균형을 이룬다.
칼로리: 100ml 기준 약 120 kcal이다.


조리 핵심 비법
밀가루와 버터를 볶는 단계에서 갈색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순수한 흰색이 유지된다. 우유는 반드시 조금씩 부어가며 저어야 덩어리가 생기지 않는다. 넛맥 한 꼬집은 단조로운 맛을 품격 있게 바꿔준다.




베샤멜 소스가 사용되는 주요 음식들


1. 그라탱류(Gratins)

Gratin Dauphinois (감자 그라탱) : 얇게 썬 감자에 베샤멜과 치즈를 얹어 구운 요리.

Macaroni Gratin / Mac & Cheese : 마카로니에 베샤멜과 체다·그뤼에르 치즈를 섞은 대표적 오븐 요리.

Cauliflower Gratin (콜리플라워 그라탱) : 데친 콜리플라워에 베샤멜을 덮고 오븐에 구운 요리.


2. 파스타 요리(Pasta Dishes)

Lasagne (라자냐) : 고기 소스(라구)와 베샤멜을 층층이 쌓아 만든 이탈리아 대표 요리.

Cannelloni / Manicotti : 속을 채운 파스타 튜브 위에 베샤멜을 부어 구운 요리.


3. 닭고기·육류 요리(Meat & Poultry Dishes)

Croquettes (크로켓) : 닭고기나 햄을 다져 베샤멜에 섞어 튀긴 요리.

Chicken à la King : 닭고기와 버섯, 피망을 베샤멜 기반의 크림소스에 익힌 미국식 요리.

Moussaka (무사카) : 가지, 고기, 베샤멜을 층층이 쌓아 구운 그리스 전통 요리.


4. 해산물 요리(Fish & Seafood Dishes)

Seafood Gratin / Shrimp Gratin : 새우나 해산물에 베샤멜을 얹어 구운 요리.

Fish Pie (영국식 피시파이) : 흰살생선과 감자를 베샤멜과 함께 오븐에 구운 요리.


5. 야채·달걀 요리(Vegetables & Eggs)

Spinach au Gratin (시금치 그라탱) : 시금치에 베샤멜과 치즈를 더해 구운 요리.

Oeufs à la Florentine (플로랑틴 스타일 달걀) : 시금치 위에 수란과 베샤멜을 얹은 프랑스식 달걀요리.


6. 파생 소스(Derivative Sauces)

Sauce Mornay (모르네 소스) : 베샤멜 + 치즈(주로 그뤼에르, 파르미지아노) → 그라탱류·파스타용.

Sauce Soubise (수비즈 소스) : 베샤멜 + 양파 퓌레 → 닭고기, 송아지, 달걀 요리에 사용.

Sauce Cheddar / Mustard Sauce : 베샤멜에 치즈나 머스터드를 더한 변형형.


벨루테가 “육수 기반의 부드러운 소스”라면, 베샤멜은 “우유 기반의 크림 소스”로서 중성적이면서 따뜻한 질감을 제공한다. 베샤멜은 요리의 질감을 부드럽게 하고, 맛의 균형을 잡는 역할을 하며, 단백질(고기·생선·계란)과 탄수화물(파스타·감자·빵)을 매끄럽게 연결한다.


서양 요리의 거의 모든 “화이트 소스 계열”은 베샤멜을 뿌리로 하고 있다.




하얀 무대의 겸손한 힘


베샤멜은 요란하지 않다. 그러나 그 하얀 무대가 있기에, 라자냐의 층은 부드럽게 이어지고, 크로켓은 속까지 촉촉하며, 채소 그라탱은 황금빛 치즈와 조화를 이룬다.


베샤멜은 말한다.
“내가 주인공일 필요는 없다. 너희를 빛나게 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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