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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의 사명, 그 마지막 순간까지(8 번째 이야기)

by 진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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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3월 24일, 평범한 아침 출근길 아침 8시, 차희수 소방관은 평소처럼 지하철 2호선 신도림역으로 향하고 있었다. 빽빽한 출근길,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그는 여느 직장인들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을 것이다. 피곤한 얼굴로 창밖을 바라보는 사람들, 스마트폰 화면을 스치듯 넘기는 손길들, 그리고 차희수 소방관. 그의 마음속엔 가족에 대한 사랑, 동료들과의 약속, 그리고 소방관으로서 지켜야 할 사명감이 자리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때였다. 정적을 가르듯 거친 소리가 들렸다. 한 노숙자가 젊은 여대생에게 다가가 폭언을 퍼붓고 있었다. 여대생은 연신 "죄, 죄송합니다..."하며 어깨를 잔뜩 움츠린 채 바닥만 쳐다봤다. 노숙자는 득달같이 달려들 듯 험악한 표정으로 여대생을 몰아붙였다. "야, 이 X 같은 년이! 제대로 안 보고 쳐 다녀?!" 주변 승객들은 하나같이 시선을 회피하거나, 못 본 척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렸다. 괜히 엮였다가 봉변이라도 당할까 봐 다들 눈치만 보는 것이었다.


차희수 소방관은 자신도 모르게 위험에 노출된 시민을 보호해야 한다는 본능적인 직업정신으로 주저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기요!" 우렁찬 목소리가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한 곳으로 쏠렸다. 그는 망설임 없이 노숙자와 여대생 사이로 성큼 다가섰다. 그의 눈은 흔들림 없이 노숙자를 꿰뚫고 있었고, 낮은 목소리에는 단단한 힘이 실려 있었다. "적당히 하시죠." 짧고 굵은 한마디였지만, 그 무게감에 주변 공기가 순간 굳어 버리는 듯했다. 노숙자는 험악한 얼굴로 차희수를 쳐다봤다. 그의 눈빛은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 흉흉하게 빛나고 있었다. "뭐야, 이 새끼는? 네가 뭔데 지랄이야!" 거친 침이 차희수의 얼굴 가까이 튀었다.

노숙자는 갑자기 격분하여 차희수 소방관에게 달려들었다. 그의 얼굴에는 분노와 절망이 얽혀 있었고, 마치 제정신이 아닌 듯한 모습이었다. 차희수는 날아오는 공격을 피하지 않고 두 팔로 노숙자를 꽉 붙잡아 힘으로 제압했다. 그의 체구는 튼튼하고, 소방관으로서의 훈련이 몸에 베어 있었으므로, 금세 노숙자의 저항을 뿌리쳤다. 그리고 여대생을 다른 곳으로 가라고 손질하고 신도림역에 도착하는 동안 노숙자를 제압하고 있었다. 노숙자는 계속 욕을 하며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같은 공간에 있던 승객들은 그저 그 상황을 구경만 하고 있었다.

드디어 전철이 신도림역에 멈추고, 문이 열리자 사람들은 혼잡한 플랫폼으로 쏟아져 나왔다. 희수는 재빨리 노숙자를 일으켜 역무원실로 향했다. 그러나 노숙자는 끊임없이 욕설을 퍼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야 X X 새끼야~ 안놔 너 죽고 싶어 ~ 너 X X 발놈 죽었어 !“ 그의 몸부림은 더 격렬해졌고, 주변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함께 노숙자를 제압하는데 도움을 주지 않고 그냥 스쳐지나가는 구경꾼으로 쳐다 보고 사라졌다.

역무원실에 거의 다다를 즈음, 노숙자는 재빠르게 손을 뻗어 자신의 품속에서 과도를 꺼내 들었다. 그 칼날은 날카롭게 빛났고, 조용한 공기를 깨고 불길한 예감이 번졌다. 노숙자는 주저함 없이 과도를 차희수 배를 찔렀다.

“윽!” 차희수의 심장은 멈추는 듯했다. 날카로운 흉기가 그의 복부를 꿰뚫었다. 고통이 엄습했고, 순간 아찔함이 그의 시야를 흐리게 만들었다. 노숙자는 희수가 쓰러지는 틈을 타고 도망치려고 했다. 희수는 배를 움켜지면서, 마지막 힘을 짜내어 도망가려는 노숙자의 옷을 잡으려 했다. 그러나 희수의 손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희수는 땅에 무너져 내리며 붉은 피가 바닥에 흩어지기 시작했다. 고통 속에서도 그는 계속해서 정신을 잃지 않으려 애썼고, 그가 힘겹게 살아온 세상의 소음 속에서 들리는 무수한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모습 누군가 비명소리 등은 서서히 희미해 져 갔다. 119구급대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 의식이 거의 없는 환자의 얼굴이 희수라는 사실을 알게 된 직원들은 너무 놀라면서도 응급처치를 실시하면서 계속 희수를 불렀다. "희수야~, 정신차려..곧 병원에 갈거니까..의식잃으면 안되..희수야~ 희수야~"


119구급대는 응급처치를 하고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희수는 우리의 곁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아침 출근길에 날벼락 처럼 다가온 끔찍한 사건으로 차희수 소방관은 삶을 마감했다. 그가 만약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 다른 사람들처럼 외면했다면, 그는 살아남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소방관이라는 직업적인 정신으로 자신의 안위보다 타인의 안전을 먼저 생각했다.


차희수 소방관이 남긴 자리는 텅 비어 있었다. 그의 동료들은 묵직한 슬픔을 삼키며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그 슬픔은 무거운 그림자처럼 그들을 따라다녔다. 출동 벨이 울릴 때마다, 과거 희수가 서 있던 그곳은 형언할 수 없는 공허함으로 가득 찼다. 무전기 너머 들려오던 그의 활기찬 목소리는 더 이상 들을 수 없었다.


누구도 감히 먼저 입을 열지 못했다. 그들은 베테랑 소방관이었지만, 감정을 드러내는 데는 서툴렀다. 그저 서로의 눈빛을 통해 같은 감정을 공유할 뿐이었다. 차희수의 이름 석 자가 나오는 순간, 굳게 다물린 입술은 더욱 굳어졌다. 늘 가장 먼저 화염 속으로 뛰어들던 그의 모습, 농담처럼 “형이 먼저 다녀올게”라며 모두를 안심시키던 그의 용감한 뒷모습은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했다.


사고 후 몇 주가 지난 어느 밤, 야간 근무 중이던 막내 소방관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형님… 살아계셨으면, 분명 여기 계셨겠죠?" 침묵이 감돌았다. 그 누구도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잠시 후, 고참 소방관 중 한 명이 굳게 다문 입술을 열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을 거야. 망설임 없이 뛰어들었겠지." 그의 목소리는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희수를 잃은 후, 출동은 더 이상 일상이 아니었다. 사람을 구해야 한다는 숭고한 책임감과, 희수를 잃었던 그날의 깊은 슬픔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희수의 비극적인 죽음은 동료들에게 깊은 자성의 시간을 선물했다. 모두가 영웅을 쉽게 칭송하지만, 막상 눈앞에 위험이 닥쳤을 때 희수처럼 망설임 없이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출근길 만원 지하철 안,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용기 내어 타인을 위해 나섰을 그의 모습을 떠올리면, 그들은 한없이 작아지는 기분을 느꼈다.


어느 날, 대기실 한켠에서 묵묵히 고인의 유품을 정리하던 베테랑 선배 소방관이 갑자기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그리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짧게 내뱉었다. "이 녀석, 정말…." 그의 짧은 한마디에 담긴 묵직한 슬픔과 존경심을 모두가 이해했다. 슬픔은 여전히 그들의 가슴을 짓눌렀지만, 그 고통을 감당하는 방식은 제각각이었다. 어떤 이는 더욱 맹렬하게 화염 속으로 뛰어들었고, 어떤 이는 출동 후 조용히 앉아 깊은 생각에 잠겼다.


시간이 흘러도 희수의 빈자리는 여전히 컸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차희수 소방관이 남긴 숭고한 신념과 용기는 그를 기억하는 모든 이들의 가슴 깊은 곳에 영원히 새겨졌다는 것이다. 그의 숭고한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도 언젠가 누군가를 위해 망설임 없이 나설 수 있을까. 그 무거운 질문을 가슴에 품고, 그들은 다시 출동 벨이 울릴 때마다 굳게 결의에 찬 얼굴로 장비를 챙겨 화마 속으로 뛰어 나갔다. 그의 정신을 이어받아, 더 많은 생명을 구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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