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지만 어딘가 익숙한 곳- 중국, 쓰촨 성
산 아래로 흐르던 강과 돌담 사이에서 오래된 시간이 느껴졌다. 중국 쓰촨 성 이현, 이곳에 강족이라 불리는 오래된 소수민족이었다. 중국 안에서도 수천 년 전부터 살아온 사람들이었다.
마을 입구에는 하얀 돌들이 층층이 쌓여 있었다. 사람들은 믿었다. 이 돌들이 마을을 품고, 바람과 시간을 막아주리라고. 마을 안으로 들어서자 가장 먼저 공기를 스치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사람들의 목소리는 어떤 중국어와도 달랐다. 억양과 웃음, 숨결까지 다른 리듬이 마을 전체를 감쌌다.
이들은 쓰촨 성의 험준한 산악 지대, 협곡 중턱에 망루처럼 솟은 석조 주택을 짓고 살아왔다. 높은 고도, 구름과 맞닿은 자리에서 이어온 삶. 그래서 강족은 '구름 위의 민족'이라 불린다. 전통 꽃신에 수놓은 구름무늬 '운운혜' 또한 그 이름을 닮았다.
마을 입구에 쌓인 흰 돌 역시 그냥 돌은 아니었다. 강족은 백석을 하늘의 신으로 여긴다. 집 지붕 위에 돌을 얹어 평화를 기원하고, 전쟁에서의 승리를 빌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피난길에 돌을 쌓자 평화가 찾아왔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이야기다. 지금도 제사와 축제 때면 이 돌은 신성한 존재로, 마을의 안녕을 상징한다.
그래서였을까. 돌담 사이를 지나는 바람에도, 나는 누군가 오래도록 이곳을 지켜왔다는 기척을 느꼈다. 돌은 말이 없었지만, 시간은 그 위에 분명히 쌓여 있었다.
마이크를 들고 소리의 방향을 좇았다. 소리가 오래 머무는 곳을 귀로 들었다. 골목마다 웃음과 말소리가 흩날렸고, 사람들은 새해 축제를 준비하며 분주히 움직였다. 시장처럼 활기차면서도, 익숙한 평온이 함께 섞여 있었다. 공기 자체가 노래를 부르는 듯했다.
이곳에서는 여자들이 산에서 돌을 날라오고, 남자들이 그것을 받아 집을 쌓았다. 집 안에서는 남자들이 음식을 만들고 살림을 맡았다. 밖에서는 여자가 무거운 돌을 들고, 안에서는 남자가 섬세한 손길을 보였다. 힘과 섬세함이 뒤섞인 풍경 속에서, 누가 어떤 역할을 맡아야 하는지 잠시 잊고 있었다.
익숙하게 나눈 역할들이 사실은 지역적 취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의 방향은 달랐지만, 무게는 같아 보였다.
주방은 남자들의 영역이었다. 웤 위에서 지글거리는 고기에서 연기가 춤추듯 피어올랐고, 양념 냄새가 방 안을 가득 메웠다. 손놀림은 오래 연습한 연극처럼 자연스러웠다. 큰 솥을 휘젓고, 접시에 음식을 담고, 재료를 살피는 순간마다 리듬이 살아 있었다.
나는 숨과 기다림 사이를 바라보았다. 흥미롭게도, 이 주방은 마을에서 가장 활기차고 화려한 무대 같았다. 양념 통과 접시가 소품이 되고, 지글거리는 소리가 음악이 되며, 사람들의 손이 배우가 되어 이야기를 만들었다.
큰 상이 차려지자, 가족들이 하나둘 돌아왔다. 의자 끄는 소리와 가벼운 웃음, 아이들 발걸음이 식탁 주위를 가득 메웠다. 지글거리는 고기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와 양념 향이 기대감을 더했다.
한 상 가득 음식이 놓였지만, 나는 젓가락을 움직이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아이들의 눈빛, 작은 손짓, 음식에 반응하는 웃음까지, 모든 순간이 살아 있는 드라마 같았다.
마을 곳곳에서 흩어져 살던 가족들이 새해를 맞아 돌아왔다. 산 아래 도시에서 살던 자식들, 다른 마을로 시집간 딸들, 오랜만에 집 문턱을 넘는 발걸음들. 그중 한 여자가 눈에 오래 남았다
평소 도시에서 중국어로 살아가던 딸이 집에 돌아오자, 자연스럽게 강족 언어로 말을 건넸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을 바라보았다. 언어가 바뀐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자기 자리를 찾은 듯한 순간이었다.
문득 딸이 떠올랐다. 타주에서 살다가 연휴 때 집으로 돌아오는 아이. 도착하기 전부터 괜히 마음이 분주해지고, 뭘 해줄까 고민하게 되는 그 시간들. 집에 들어서는 순간의 반가움과, 함께 밥을 먹으며 나누는 짧은 시간들.
딸이 집에 오면, 남편은 혼자 있을 때는 잘 먹지 못할 음식을 정성껏 준비한다.
그래서였을까.
멀리 떨어진 이 마을의 풍경이, 이상하게도 낯설지 않았다. 사는 모습은 달라도, 각자의 자리를 찾아가는 방식은 닮아 있었다.
축제 당일, 마을의 공기는 달라졌다. 평소의 옷 대신 전통복이 등장했고, 햇빛이 닿을 때마다 작은 빛이 반짝였다. 도시에서 살던 딸도 전통복을 입고 원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순간, 모든 것이 하나의 리듬으로 이어졌다.
음악이 시작되자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손을 맞잡고 원을 만들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었다. 발걸음과 박자가 흙길 위에서 점점 큰 울림이 되었다.
카메라가 사람들의 움직임을 좇았다. 손이 맞닿고 발걸음이 이어지는 원, 흙길 위에서 울려 퍼지는 박자, 사람들의 균형 잡힌 동작까지, 하나도 놓치지 않고 화면 안에 담았다. 그의 눈에는 구조와 움직임만이 또렷하게 보였다.
나는 조금 다르게 바라보고 있었다. 돌아오는 사람들의 얼굴, 손을 맞잡는 순간, 늦게 들어오는 이가 원 속에서 자리를 찾는 모습을 주의 깊게 보았다. 카메라가 담지 못하는 시간과 숨결, 사람들의 작은 흔적이 만드는 흐름이 있었다.
그가 풍경을 찍고 있다면, 나는 그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시간을 보고 있었다. 그 안에는 웃음과 기다림, 발걸음과 호흡이 겹쳐 만들어내는 고유한 리듬이 있었다. 사람들은 단순히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시간과 이야기를 함께 이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 흐름 속에서, 마치 시간을 따라 걷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들에게 전통은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살아내는 일이었다.
2022년에 이곳에서 지진이 있었다는 뉴스를 보고, 남편은 그때 만났던 마을 사람들을 떠올렸다. 카메라를 들고 웃음과 손길을 담던 그들의 얼굴이 머릿속에 겹치며, 큰 피해가 없기를, 모두가 무사하기를 마음 깊이 바랐다. 그 순간, 나는 그의 옆에서 그 마음을 함께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