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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지구별 여행자이다

『여행의 이유』를 읽고

by 문장수술실 Mar 12. 2025
브런치 글 이미지 1

 우리는 모두 지구라는 거대한 여행선을 타고 항해하는 승객일 뿐이다. 하지만 막상 살아가면서 그 사실을 실감하는 순간은 많지 않다. 오히려 우리는 무언가를 소유하고, 쌓아두고, 영원히 머무를 수 있을 거라는 착각 속에 산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건 따로 있지 않을까? 오래된 기념품보다 떠올릴 때마다 미소 짓게 되는 여행의 한 장면, 값비싼 호텔 침대보다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친절한 사람들의 따뜻한 말 한마디. 결국 우리가 남길 수 있는 건 그런 기억들 아닐까.


 김영하 작가는 『여행의 이유』에서 우리가 지구별 여행자임을 잊지 말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이렇게 시작된다.



"시인 아치볼드 매클리시는 아폴로 8호가 달 궤도에 진입한 다음날인 크리스마스에 발행된 뉴욕타임스에 ‘저 끝없는 고요 속에 떠 있는 작고, 푸르고, 아름다운 지구를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은 바로 우리 모두를 지구의 승객(riders)으로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썼다.
인류가 지구의 승객이라는 비유는 지금으로서는 진부하게 들릴지 몰라도 당시에는 읽자마자 무릎을 칠 만한 것이었다. 승객은 영원히 머물지 않는다. 왔다가 떠나는 존재일 뿐이다. 매클리시는 이어서 우주의 이 끝 모를 차가움 속에서 우리 자신들은 형제(brothers), 서로가 형제임을 진실로 아는 형제라고 부연했다. 지구가 고작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 구슬처럼 보인다는 것을 알았을 때, 시인은 자존심을 다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렇기에 지구라는 작은 행성, 푸르게 빛나는 우주의 오아시스와 우리 서로를, 모든 동식물을, 같은 행성에 탑승한 승객이자 동료로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암시한 것이다. (중략)"
"내 차례가 되었고 택시가 내 앞에 와서 멈추었다. 나는 그들에게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스마트폰 화면을 보여주었다. 명동에 있는 호텔이 그들의 행선지였다. 유명한 호텔이어서 기사들이 모를 수는 없었다. 너무 가까운 거리여서 피한 것이었다. 그들을 택시에 태운 후, 조수석 문을 열고 기사에게 그들의 행선지를 말하자 그제야 택시는 군말 없이 떠났다. 오를레앙과 그 밖의 많은 곳에서 받은 환대를 조금 갚았다는 느낌이었다.
인류가 한 배에 탄 승객이라는 것을 알기 위해 우주선을 타고 달의 뒤편까지 갈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인생의 축소판인 여행을 통해, 환대와 신뢰의 순환을 거듭하여 경험함으로써, 우리 인류가 적대와 경쟁을 통해서만 번성해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달의 표면으로 떠오르는 지구의 모습이 그토록 아름답게 보였던 것과 그 푸른 구슬에서 시인이 바로 인류애를 떠올린 것은 지구라는 행성의 승객인 우리 모두가 오랜 세월 서로에게 보여준 신뢰와 환대 덕분이었을 것이다."  
<아폴로 8호가 보내온 사진> 중에서


 삶을 여행에 비유한 이 문장은 깊이 와닿았다. 우리는 모두 이 지구라는 작은 행성 위에서 태어나고, 살아가고, 결국 떠난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곳에서 살아가는 동안 무언가를 가지려고, 남기려고, 영원히 붙들어 두려고 한다. 나는 예전부터 내 소유물에 대한 애착이 컸다. 책상 위의 작은 소품부터, 내가 거주하는 공간까지 모든 것에 정을 붙였다. 심지어 기숙사 방이 바뀌는 것조차 극도로 싫어했다. 익숙한 공간이 바뀌면 마치 내 삶이 흔들리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문장을 읽으며 그런 집착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 깨달았다. 우리는 이곳에서 영원히 머무는 존재가 아니다. 승객처럼 머물다 떠나는 존재일 뿐이라면, 소유보다 중요한 것은 결국 함께했던 기억, 나눈 경험, 그리고 관계가 아닐까.


 얼마 전 다카마쓰에서의 여행이 떠올랐다. 일본어가 서툰 나에게 자전거 대여 방법과 반납 절차를 하나하나 친절하게 설명해 준 대여소 직원, 우동을 잘못된 방식으로 먹고 있자 간장을 뿌려 먹는 방법을 알려준 어느 노신사, 온천에서 결제하는 법을 몰라 헤매고 있을 때 직접 도와주던 직원까지. 그들은 내게 큰 도움을 준 것도 아니고, 장황한 대화를 나눈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 순간 느꼈던 친절함과 따뜻함은 지금까지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여행을 다녀온 후 기억에 남는 것은 화려한 호텔의 푹신한 침대가 아니다. 길에서 우연히 만난 따뜻한 사람들의 미소다. 멋진 식당에서 찍은 사진이 아니라, 그 순간 누군가와 나누었던 대화다. 그들이 없었다면 나의 여행도 조금은 덜 특별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단순히 물건을 소유하는 삶이 아니라, 주변의 사람들과 더 많은 경험을 나누는 삶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낯선 곳에서 도움을 받았던 것처럼, 나도 내 주변의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을 베풀며 살아야겠다. 그래서 오늘도 다짐한다. 내 곁의 사람들에게 신뢰와 친절을 베풀겠다고. 가족, 친구, 동료뿐만 아니라 낯선 이들까지도. 우리는 모두 같은 배를 타고 있는 여행자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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