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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도 꿈이 있었습니다

한 잔은 여러분을 위하여

by 김묵돌 Mar 17. 2025

반복적인 일상에 대해 무료함을 느낄 때쯤, 성인이 되고 나서 취미로 시작하는 글쓰기에 다시 한번 호감을 가지게 되었다.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을 글로 정렬하여 쓰다 보면 복잡하던 머릿속은 어느새 차분해진다.


고등학교 1학년에 올라왔을 때 작가가 꿈이었을 때가 잠깐 있긴 했지만, 현실과의 타협이 우선이었다.


목표는 장문소설이었다. 그러나 500쪽이 넘는 페이지를 서사부터 결말까지 완벽하게 끝맺을 자신이 나지 않았다. 이러한 이유로 같은 해 꿈은 그대로였지만 목표는 수필 작가로 바뀌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성공의 길은 아득해 보였고, 불확실성이 높은 직업을 목표로 안주하고 싶은 생각은 점차 사라졌다. 마찬가지로 같은 해 나의 꿈은 영어선생님으로 바뀌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재학을 하며 영어 과목 전교 1등을 받았으며, 고등학교 1학년 담임선생님이 영어선생님이셨기 때문이다. 담임선생님은 나의 꿈을 응원해 주셨다.


솔직히 고등학교 1학년이 아무리 현실을 깨닫는다고 말하더라도 결국은 우물 안 개구리라고 생각한다. 세상 밖은 그보다 더 냉정하고 차가웠다. “너의 꿈을 응원해”라는 말은 퇴색되고 없어졌다. 성공의 길이 더 넓은 수학에 대한 나의 재능을 확인하신 선생님들은 이과로 전향하라는 조언을 계속하셨으며, 외부 사람들 중 선생님이 세상의 진정한 성인이라 생각했던 나는 영어선생님의 꿈을 포기하고 이과로 방향을 틀었다. 물론 결과론적으로 생각하면 이것은 선순환이다. 고3 때 영어성적은 모의고사를 보기 시작하며 바닥을 쳤고, 성향도 이과에 더 잘 맞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깥세상에 대한 얕은 지식은 고등학교를 다니는 내내 발전하지 않았다. 단순히 생명과학 성적이 잘 나왔던 나는 생명공학과로 전공을 신청했고, 물론 복수전공을 하고 있지만 engineering 뜻인 ‘공’은 내가 원하는 ‘공’이 아니었다는 것을 시간이 너무 흐른 후에 깨달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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