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시즌이 되면 생각해볼 만한 것

표와 카드

by 까마귀

Deal, Deal-Breaker

Deal-Breaker라는 말이 있다. 말 그대로 거래(Deal)를 결렬시키게(break) 만드는 요인을 의미한다. 내가 누군가와 거래할 때, 다른 조건들은 협상 가능하더라도 계약서에 이 deal-breaker가 하나라도 있으면 거래를 파기한다.

Deal-Breaker가 아닌 요인들은 손익계산이 가능한 것들이다. “이건 나한테 100만큼 이득, 저건 나한테 30만큼 손해, 그러니까 이 거래는 나한테 70만큼 이익이네” 하면서 계산기를 두들길 수 있는 것들이다. Deal-Breaker는 계산기를 부수게 하는 요인이다. 더 이상 계산은 의미가 없고, 거래에 응하면 나한테 음(-)의 무한대의 결과를 가져다 주는 것이다.


다음 후보 들어와주세요~

“거래”라고 하면 많은 행위가 떠오르지만, 민주제 사회에서 유독 부각되는 독특한 거래가 있다. 바로 투표행위이다. 대리인인 정치인은 주인인 유권자에게 표를 달라고 한다. 표를 주면 이러이러한 약속을 지킬 것이고, 자신은 그럴 능력이 있으니 한 번 거래해보자는 거다. 정치인의 제안을 듣고 나서 유권자는 테이블 위에 그가 제시한 조건들을 늘어놓고 생각에 잠긴다. 각 조건은 크게 “공약”과 “역량”이라는 2가지 틀을 통해 평가할 수 있다. 즉 유권자는 스스로에게 2가지 key question을 던지는 것이다.


1. 공약: 이 정치인이 하겠다고 한 것들이 나와 내가 중시하는 공동체(그 범위는 유권자마다 다르다)에게 도움이 되는가? 어떤 도움이 얼마나 되는가?

2. 역량: 이 정치인과 그 주변인들이 위 공약을 이행할 능력과 의지가 있는가? 지금까지 본인이 원하는 것을 위해 어떠한 행동을 해왔는가?


유권자는 조건별로 이 질문을 던져가며 각 조건이 쓰인 카드들을 꼼꼼하게 검토해 나간다. 동시에 옆에 둔 계산기에 (+)와 (-) 버튼을 분주히 누른다. 그런데 쭉 보다가 이상한 게 눈에 들어온다. Deal-breaker가 있는 것이다. Deal-Breaker는 카드게임으로 치면 조커 같은 존재이다. 정상적인 게임 진행을 불가능하게 한다. 유권자는 그 즉시 검토를 중단하고 해당 정치인과의 거래를 무산시킨다. “다음!”을 외치고 문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다음 정치인을 부른다. 이번 정치인이 건넨 카드들에는 Deal-Breaker는 없지만, 온통 다 (-)인 것들 뿐이다. 유권자는 불만족스럽게 계산 결과를 평가표에 적고, 그 정치인과 마지못해 악수를 한다. 이게 우리가 자조적으로 말하는 “최선이 아닌 차악을 뽑는다”는 상황이다. 선과 악의 기준을 0이라고 하면, “선”은 계산 결과 양수가 나오는 정치인을 선택하는 것이고, “차악”은 계산결과가 음수인 정치인들 중 그나마 그 절댓값이 작은 사람을 뽑는다는 뜻일 것이다. 위 사례에서 유권자는 비유적으로 말해서 “-∞”(음의 무한대)과 “-100”인 일꾼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고 느꼈을 것이다.



"차악을 뽑는다"는 말

내가 궁금한 것은 이 지점이다. 정말 그럴까? 정말 두 정치인 모두 “악”이 맞을까? 차악을 뽑는다는 자조 섞인 말이 맞을까? 위 사례를 조금 더 뜯어보자.

위 사례에서 두 번째 정치인에 대한 의사결정의 경우, 유권자 나름의 상황에 비추어 봤을 때 합리적으로 “계산 가능”한 요소들이 있었기 때문에 꽤 이성적인 결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첫 번째 정치인은 계산을 불가능하게 하는 Deal-breaker가 있었기 때문에 아예 후보군에서 제외되었다. Deal-Breaker는 특정 정치인을 고려 대상에서 아예 탈락시키는 요소라는 점에서 가장 강력한 요인이다. 특정 정치인이 내세운 거래조건 중, Deal-Breaker를 제외한 요소들의 합이 (+)였을 경우 더더욱 그러하다. “선”일 수도 있었던 정치인에 대해 계산결과를 자동적으로 -∞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다. 때문에 민주제 사회의 주인이자 이해관계자이자 유권자인 우리는 각자가 Deal-Breaker로 설정한 요소가 정말로 그러한 중대성이 있는지, 그러한 판단이 합당한지를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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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들의 일차적인 목적은 정권 재창출이다. 정권 재창출이 곧 생존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유권자가 그들에 대한 정제된 정보를 얻는 창구인 언론은 흔히 삼권분립의 비공식적인 네 번째 축이라고 불리지만, 현실적으로 민간 주식회사화(化)된 언론사들이 더욱 많아지는 상황에서 대주주(건설사가 다수이다)의 이해에 맞는 보도를 할수밖에 없다. 입법 혹은 행정권력을 가지며 향후 재선(=상대후보의 낙선)이 목적인 특정 정치인과, 정보권력을 가진 언론사 대주주의 이해가 맞아떨어질 때, 이들은 (그들 입장에서는) 큰 시너지를 낼 수 있다.

언론사는 지속적으로 특정인에 대해 사실과 의견의 경계에 있는 정보를 생산하고 유통함으로써 이전에는 deal-breaker가 아니었던 요소들을 deal-breaker화(化)하거나, 점점 deal-breaker를 늘려갈 수 있다. 정치인은 마치 축구선수가 골문에서 패스를 받아서 골을 쉽게 넣듯 이를 받아서 새롭게 생성된 deal-breaker들을 건드려 주기만 하면 된다. 유권자들은 멍청해서가 아니라, 직접 1차자료(통계수치, 재판현황 등)를 찾고 해석할 시간적 여유가 없기 때문에 주요 언론사를 통해 정보를 받아들이고, 스스로 deal-breaker를 내면화하기 쉽다.

그래서 선거시즌이 되면 유권자는 계산기를 두드려보기도 전에 계산기를 부수고, “최선이 아니라 차악을 뽑을 수밖에 없다”고 결론을 내린다. 언론사 대주주와 이해가 일치하는 정치인은 너무도 수월하게 당선된다. 자신이 내세우는 공약과 자신의 역량이 (+)이다라고 주장할 필요도 없이, 유권자가 내면화한 deal-breaker를 지속적으로 공략하면 유권자는 상대방을 고려대상에 넣지도 않고 탈락시키기 때문이다.

Deal-Breaker가 아니었던 것이 Deal-Breaker가 되고, 점점 그 가짓수가 많아지는 현상은 유권자로 하여금 개인의 현실적 삶에 영향을 주는 요소들, 계산이 가능한 요소들을 외면하게 한다. 52장의 카드 중 2개만 있어야 할 조커 카드가 더 많아지면 게임을 할 수 없다. 플레이어는 카드 덱이 조작되었다고 의심하는 게 정상이지만, 서둘러 다음 패를 선택해야 하는데 옆에서 계속 조커 카드는 원래 많은 거라고 속삭이면 정상적인 판단이 불가능해진다. 개인의 이익을 극대화해야 할 유권자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 손으로 자기 이익을 떼서 정치인과 언론사 대주주한테 바치게 된다. 주인이 대리인이 되고, 대리인이 주인이 된다.



돌아볼 결심

하지만 모든 걸 남의 탓으로 돌릴 순 없다. 어쨌든 투표소에는 그 누구도 없고, 도장을 찍는 것도 유권자 혼자다. “Fool me once, shame on you; Fool me twice, shame on me”라는 말이 있다. 한 번 속으면 속인 놈 잘못이지만, 두 번 속으면 속은 놈 잘못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유권자는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무의식의 영역에 있던 자신의 deal-breaker가 무엇인지 인식하기 위해, 의식의 영역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 다음에는 자신이 무엇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인지 파고들어야 한다. 진짜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인지, 남이 그렇게 생각하라고 말한 것인지 구분해야 한다. 그게 반공주의이든, 페미니즘이든, 민주제의 파괴이든, 특정 정치인의 도덕성이든 간에 그 실체를 명확히 알아야 한다. Deal-breaker로 지목한 요소를 정의할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이 어떠한 해악을 끼치길래 거래 자체를 취소할 정도로 중대한지 반문해야 한다.

가령 도덕성이라면 그것이 욕설인지, 공금횡령인지, 직권남용인지, 특정 집단과의 유착인지 혹은 그 모든 것인지 정의 또는 분류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받아들인 정보가 정확한 것인지, 왜곡이나 재해석은 없는지, 그 정보는 누가 제공한 것인지도 확인해야 한다. 이런 작업이 끝났을 때, 즉 정확한 정보를 갖고 스스로의 가치관과 현실적 상황에 비춰봤을 때 자신에게 왜 이것이 Deal-Breaker인지 설명할 수 있으며 다른 정치인에게도 같은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고 자신할 때, 유권자의 선택은 합리성을 갖는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이유는 Deal-Breaker가 거래를 파기할 수 있는 강력한 요소이고, 이를 잘못 판단할 경우 유권자 개인에게 해악을 입히기 때문이다. 만일 이것이 Deal-Breaker가 아니라면 계산 가능한 요소로 재분류해서 위에 있는 2가지 key question에 따라 손익을 따져야 할 것이다.

자신이 Deal-Breaker가 아니라고 여겨 왔던 요인들도 재평가해야 한다. 이것이 정말 중대하지 않은 것인가? 유권자 자신이 특정 요인에 대해서는 민주적인 절차, 기초적인 도덕성, 기초적인 역량 등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기준을 과하게 낮게 설정하고 있지 않은가? 사실 Deal-Breaker에 전입해야 하는 사항이 아닐까? 자신을 돌아봐서 먼저 명확한 Deal-Breaker와 Non-Deal Breaker, 또 공약과 역량에 대한 기준을 도출한 다음에 이것을 각 후보자에 적용해야 하는데 선후가 뒤바뀐 것은 아닐까? 즉 반대로 특정 후보에 대해 먼저 호감을 가진 다음에,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평가기준을 사후적으로 정한 것은 아닐까?(사실 인간인 이상 이것이 오히려 일반적이다 - 요지는 스스로 이를 인식하고 재평가하자는 것이다) Deal Breaker가 아닌 요인들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자문해야 할 것이다.

물론 실제로 이런 지난한 작업을 거쳐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여기서 유권자의 계산은 숫자로 딱 떨어지는 산수가 아니라, 일종의 “사고하는 방법”(Mental Framework)을 갖춰야 한다는 의미이다. 즉 유권자가 정치인과 거래를 할 때 무의식적으로 “Deal-Breaker와 그렇지 않은 요소를 구분하고, 2가지 key question에 입각해 각 대안을 평가해왔다"는 점을 의식적으로 인식하고, Deal-Breaker가 실제로 자신의 고민에 따른 결론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을 인식하자는 것이다. 의심하자는 것이다.


투표를 위한 의사결정 방식

위 내용을 정리해서 선거시즌을 위한 하나의 프레임워크 예시를 제시해 본다.

유권자를 위한 사고방식(Way of Thinking) 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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