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vel movies are not Cinema
“한국 검찰”이라는 주제로 두 명의 지인들과 개별적으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검찰이라는 행정부 산하 기관이 제공하는 공공서비스를 받는 일반시민 입장에서, 나는 검찰조직에 대해 그리 호의적인 입장이 아니었다. 직접 검찰과 엮인 적은 없고, 검찰에서 일하는 지인도 없기 때문에 검찰에 대해서는 오로지 언론을 통해 정보를 얻을 수밖에 없었다. 언론에서 검찰은 주로 정치인과 관련된 사건사고에 대한 정보제공자로서 등장했고, 때문에 내 일상생활에서 검찰이 갖는 실효적인 의미는 “최악을 피하기 위한 투표행위와 관련한 의사결정에 요구되는 정보를 제공하는 출처”였다.
내가 기존에 검찰에 대해 갖고 있던 불만사항은 바로 여기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검찰이 제공하는 정보가 그리 믿음직스럽지 못하다는 점이다. 유권자로서 내가 알고 싶은 사실은 “그래서 이 사람이 확실히 그 행위를 했는가”이다. 이것이 확실해야 내가 투표를 할 때 확신을 갖고 특정 후보를 ‘거를’ 것 아닌가. 그런데 검찰이 제공하는 정보는, 특히 가장 최근 치러졌던 대선의 후보들과 관련한 정보에 한할 경우 더더욱, 그 근거가 모호하고 실체도 두루뭉술했다. 더구나 검찰발 정보를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매체나 유수 탐사보도매체의 보도내용을 보면 검찰이 아예 증거를 조작하거나, 증인을 회유하거나, 증인을 과도하게 많이 신청해서 재판을 지연시켰다는 내용이 수두룩했다. 여기에다 뇌물, 예산남용, 전관예우 등 개별 검사들의 일탈 사례까지 더해지니 검찰조직을 신뢰하고 싶어도 신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모든 조직에게는 기능이 있고, 그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무능한 조직이라고 불린다. 즉 나는 한국 검찰이 “유권자 의사결정에 필요한 신뢰할 수 있는 정보 제공”이라는 중요한 공적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무능한 조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해당 조직을 좋아하지 않는다.
한국 검찰을 싫어하는 이유를 밝히려고 이 글을 쓴 것은 아니다. 이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내 생각에 대한 지인들의 대답에 흥미를 느껴서 이다. 이들은 검찰의 부패와 무능을 비판하는 내 말을 듣고 모두 이런 뉘앙스로 대답했다. (한 명은 일반 학부생, 한 명은 현재 로스쿨 재학생이다) “에이, 요즘은 옛날같은 그런 비리 없어. 그리고 검찰이 되고 싶어하는 로스쿨 학생들 다 하나하나 선하고 정의감이 투철해. 너가 말하는 건 너무 과장됐어.” 첫 번째와 세 번째 문장은 지인 본인의 현실인식에 해당하는 내용이고 주관적인 판단이기 때문에 굳이 더 논의할 필요는 없다고 느낀다.
핵심은 두 번째 문장이다. 마찬가지로 이 문장의 진위를 가릴 필요는 없을 것이다. 우리가 검사가 되고 싶어하는 학생들의 마음 속에 들어가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 주로 다루고 싶은 부분은 이 문장에 깔려 있는 전제이다. “개인의 선함이 곧 그러한 개인들로 구성된 조직의 선함으로 연결된다”는 믿음 말이다.
논리학에 대해 아는 것은 없지만, 중학교 수학 시간 때 배운 “명제의 역, 이, 대우”라는 개념은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어떤 명제가 참이면 그 대우도 참이고, 반대로 어떤 명제의 대우가 참이면 그 명제도 참이다. 위의 전제에 대해 대우를 취하면 “악한 행태를 보이는 조직은 악한 개인들로 구성되어 있다”라는 명제를 만들어낼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이 대우명제가 참인 세상이었다면 얼마나 편했을까. 8백만 명이 넘었던 나치당원이 전부 비아리아인이라면 이를 갈며 당장 수용소에 잡아넣지 못해 안달 난 미치광이들이었다면, 군사정권 시절 무고한 강원도 어부들을 간첩으로 둔갑시킨 경찰들이 전부 잔인하고 악랄한 압제자였다면 말이다. 이런 세상이었다면 한나 아렌트가 굳이 뉘른베르크까지 가서 아이히만이 지껄이는 말을 받아 적으면서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라는 개념을 구상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악인들로 구성된 악한 조직이 존재하고, 이들을 선한 히어로들로 구성된 선한 어벤져스가 힘을 합쳐 격퇴하는 내용의 마블 영화들은 인간사회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연작으로 각종 영화제에서 극찬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전설적인 영화감독 마틴 스코세이지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Marvel movies are not Cinema".
스탠리 밀그램의 전기충격 실험은 개인의 주체성, 공감능력, 이에 영향을 주는 사회적 요인에 대해 수많은 질문을 불러일으켰다. 밀그램 이후 그의 실험을 보완한 여러 시도가 있었고, 그 중 연구의 범위를 “집단학살”의 영역으로 넓힌 연구자가 책 <명령을 따랐을 뿐!?>의 저자인 뇌과학자 에밀리 캐스파이다. 캐스파가 진행한 여러 실험들은 계층적 사슬 속에 위치해 있을 때 개인이 느끼는 주체의식이 그렇지 않을 때보다 유의미하게 감소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는 해당 개인이 명령을 하는 지위에 있든, 명령을 받는 위치에 있든 동일하게 관찰되는 현상이다. 그리고 이 현상은 복종상황을 재현한 다양한 실험실 환경, 국가, 시대, 그리고 다양한 범주의 참여자들에서 유사하게 확인된다. 심지어 일부 참여자들은 밀그램의 실험결과를 알고 있었으며, 캐스파의 실험 이전에는 명령을 받더라도 상대방에게 어떠한 전기충격도 가하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을 하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실험에서는 명령에 거절하지 않고 상대방에게 고통을 가했다. 즉 복종상황에서 개인이 경험하는 주체의식의 감소는, 복잡한 위계질서를 갖고 있으며 수직적인 형태의 조직들이 공유하는 일반적인 특성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밀턴 마이어는 2차대전 후 독일의 한 마을을 찾아 열 명의 나치 가담자를 심층 면담했고, 그 내용을 엮어서 1955년 <그들은 그들이 자유롭다고 생각했다; They thought they were free>라는 책을 발표했다. 인터뷰이들의 직업은 제빵사, 재단사, 교사, 경찰, 학생 등등 다양했다. 모두 그 마을에서 나름의 역할을 갖고 사회생활을 했으며, 나쁘지 않은 평판을 가진 이들이었다. 마이어 본인이 유대인이었음에도 이들의 성격에 매력을 느꼈다고 기술할 정도였다. 이들 중 나치의 우생학적인 인종이론 그 자체에 대해서 관심을 보인 이는 한 명도 없었으며, 나치당에서 주장한 ‘인종의 순수성’ 같은 개념을 신봉하는 광신도 같은 이들 역시 없었다. 대신 이들이 공유했던 믿음은 ‘유대인’이라는, 그 정의조차 모호한 집단에 속한 사람들에 대한 원인 모를 반감이었다. 어떤 이는 유대인이 더러워서 싫다고 했고, 어떤 이는 유대인이 광적으로 청결에 집착해서 싫다고 했다. 어떤 이는 마을의 유대인 상인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유대인들은 돈과 관련해서는 신뢰할 수 없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2차대전에서 패전하고 10년이 지나고서도 말이다.
이유가 무엇이든 이들은 “유대인에 대한 반감”이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었고, “왜”라는 질문에 익숙지 않았으며, 이들이 속해 있었던 독일사회와 나치당은 매우 수직적인 위계질서를 갖고 있었다. 이들 개개인은 대체로 꽤 정직하고 선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이들은 직간접적으로 유대인 학살에 가담한 자들이었으며, 수백년 동안 같은 마을에서 산 유대인들이 수용소로 끌려가는 것을 커튼 뒤에서 지켜본 자들이었다.
나는 강원도 철원의 한 최전방 GP에서 군생활을 했다. 몸은 힘들었지만, 군대에서 만난 동기, 선후임들은 대체로 선하고 농담을 던질 줄 알며 책임감 있는 사람들이었다. 내 군생활도 그리 큰 어려움 없이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그런데 나보다 불과 1년 일찍 입대한 선임들은 나와 전혀 다른 군생활을 했다. 선임들은 조금 통통한 후임의 배를 마음대로 만지며 괴롭혔고, 청소와 설거지는 당연히 최후임들의 몫이었다. 원하는 노래를 틀지 않았다고 후임의 머리를 TV 리모콘으로 구타한 선임도 있었다. 이러한 가혹행위가 빈번하게 벌어졌다. 이런 괴롭힘을 자행한 선임들도, 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한 선임들도 대체로 선하고 농담을 던질 줄 알며 책임감 있는 사람들이었다. 괴롭힘에 치를 떨며 자신은 “후임들을 절대 괴롭히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하던 사람들은 몇 달 지나지 않아 어김없이 가장 악랄하게 후임을 괴롭히는 선임들이 되었다. 굳은 다짐으로 캐스파의 실험에 참가했지만 다른 이들과 다를 것 없이 타인에게 전기충격을 가한 심리학 전공자들처럼 말이다.
선임들이 전역한 후 우리가 겪은 군생활은 완전히 달랐다. 후임을 구타하는 일은 상상할 수 없었으며, 매일마다 선후임 할 것 없이 모두 청소, 설거지 담당을 정하기 위한 가위바위보에 참가했다. 구타는 커녕 욕설만으로도 잦은 내부고발이 이루어졌고, 몇 마디 욕 때문에 타 부대로 쫓겨난 동기들이 속출했다. 훨씬 더 건전한 조직이 된 것이다.
“나는 후임들 잘 대해줘야지”라고 다짐했던 일부 구성원들 덕분이 아니었다. 우리가 선임들보다 더 선하고 투철한 정의감을 가져서도 아니었다. 윗사람이 바뀌어서였다. 병 처우에 관심이 높다고 알려진 중대장이 부임했고,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유능하다고 알려진 중위가 우리 소대를 새롭게 담당하게 됐다. 중대장은 꽤 자주 병 인권을 강조했고, 소대장은 우리 임무를 명확히 했다. 북한군이 군사분계선 이남으로 남하하면 어떻게 조치를 해야 하는지, 귀순자를 포착하면 어떻게 GP 안으로 유도해야 하는지 등 수색중대 조직 본연의 임무를 명확히 교육하고 훈련하면서 우리가 왜 여기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그 의미를 조직의 구성원들에게 계속 인지시켰다. 우리의 존재 의의가 확립되고, 합리적인 이유로 훈련을 하고, 훈련을 준비해야 할 당위성이 생기자 우리는 더 “열심히” 우리의 임무에 몰입했다. 동시에 후임에게 욕설을 하거나 부당한 명령을 한 선임에 대해 고발 및 처벌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지자 가혹행위는 급격하게 감소했다. 무능했던 우리 소대가 유능한 조직으로 변모한 것이다.
선한 개인들이 선한 조직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검찰, 군대, 경찰처럼 명령과 복종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수직적인 조직에서는 개인이 인식하는 주체의식과 책임감이 낮을 개연성이 높다. 그 사람이 아무리 선하더라도 그 선함이 충분히 발휘되기 어려운 환경이라는 의미이다. 어떤 조직에 있는 사람들이 대체로 학창시절에 착실하게 공부했고, 가정환경에 모자람이 없으며, 주변 사람들에게 예의가 바르고, 길거리에서 쓰러진 사람을 보고 망설임 없이 인파를 헤치고 인공호흡을 해본 적이 있다는 사실은 내게 아무런 위안도 주지 못한다. 내가 바라는 것은 성인군자가 아니라, 주어진 기능을 다하는 조직이다. 조직 자체가 수준 이하의 악행은 하지 못하도록 방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복종상황을 유발하는 수직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해체하고 보다 수평적이며 민주적인 조직을 만드는 것이 이상적인 해결책이겠지만, 우리의 관심사는 테크 스타트업이 아니라 딱딱한 관료제 조직이기 때문에 보다 지루한 해결책이 필요하다. 폭설이 오면 제설작전을 전개해서 삽시간에 수십cm의 눈을 치울 수 있는 것도 관료제 조직이고, 대학생을 “탁 쳐서 억 하고” 죽일 수 있는 것도 관료제 조직이다. 우리는 전자에 해당하는 기능을 키워야 하고, 후자와 같은 상황을 방지해야 한다.
조직의 효율성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불필요한 복종구조를 줄여서 개인의 주체의식에 대한 훼손을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조직의 존재목적이 무엇인지 확실히 하고, 이를 구성원들과 비구성원 모두에게 지속적으로 소통해야 한다. 목적 달성에 기여하는 행위를 한 자에게는 상을 줘야 하고, 목적달성을 저해한 자에게는 벌을 가해야 한다. 목적 달성을 저해하지 않는 선에서 투명성을 극대화해서 이러한 신상필벌 과정을 외부화해야 한다. 위계질서가 명확하고 책임이 고도로 분산된 조직은 절대 안에서부터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태까지 이렇게 길게 늘여 썼지만, 조직은 개인과 다르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한명이라도 있을까? 그렇다면 왜 내 지인들은 개인이 선하므로 조직도 선할 것이라고 했을까? 몇 가지 설명을 시도해볼 수 있다.
1. 경험부족으로 인한 미숙한 상상력: 조직생활을 해본 경험이 없고, 본인 주변의 “착한” 사람들이 소속되기를 희망하는 조직이 잘못된 행위를 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상상력의 부재.
2. 동일시: 많은 경우 관료제 조직에서 의사결정권한이 있는 이들은 본인과 경제적 환경, 학벌, 사회적 배경을 공유함. 이들이 소속된 조직에 대한 비판을 본인 혹은 본인이 속한 집단에 대한 비판으로 받아들여서 방어적인 답변을 했을 가능성.
3. 도덕의 부재: 부도덕함이 아닌, 도덕적 가치판단 기준의 부재를 의미. 이들은 도구적인 지능은 비상하지만 이를 관장하는 도덕관을 보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평소에 조직 속의 개인, 조직의 부도덕한 행위라는 주제에 대해 고민해본 적이 없고, 고민할 계기조차 없었을 수 있음. 때문에 조금만 생각해봐도 이치에 맞지 않음을 알 수 있는 답변을 했을 가능성.
4. 성인군자들: 알고 보니 주변 지인들이 복종상황 하에서 발생하는 주체의식, 책임감 감소를 이겨낼 정도로 강한 의지력과 원칙을 가졌을 가능성. 희박하다고 생각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