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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윤 Jul 10. 2020

할머니의 고무신

지금도 하얀 고무신을 볼 때마다

할머니 생각이 난다.
운동화를 신고 다니던 나와는 달리
고무신을 신은 할머니의 발은 위태로워 보였다.
할머니의 넓고 커다란 발이
어쩜 저렇게도 작고 뾰족한 고무신 안에

들어갈 수 있는지 볼 때마다 신기했다.
할머니의 고무신을 몰래 신었다가

한걸음도 못 떼고 작은 맨발이 헐떡거렸다.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게 된 어느 날부터
할머니가 작은 고무신에
커다란 발을 구겨 넣었듯이
나는 작은 마음에다
커다란 당신을 구겨 넣었다.
그때마다 할머니의 고무신이  생각났다.
자신의 발보다 훨씬 작은 고무신을 신고
그 먼 길을

 긴 시간을
매번 무거운 짐을 들고 한 번도 휘청이지 않고

걸어왔던 할머니의 모습이 생각났던 건
나의 작은 마음에다 커다란 당신을 구겨 넣고 휘청거리지 않고 싶어서였다.
작은 마음 안에 구겨 넣은 커다란 당신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내 마음은 할머니의 고무신처럼 작기만 해서 커다란 당신을 다 넣을 수가 없었다.
외로웠을 할머니의 맨발처럼

외로운 내 마음에다
오늘도 기어이 당신을 구겨 넣는다.
할머니의 낡은 고무신처럼
다 낡고 낡아서 버려질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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