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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7] 설득은 결국 ‘사람’의 문제였다

정흥수 작가 『설득자』를 읽고, 저 자신을 다시 비춰봅니다.

by 낭만기술사

가끔 우리는 책을 읽다가
마치 오랫동안 잊고 지낸 자신의 마음 한 조각을
다시 발견하는 순간을 만나곤 합니다.
정흥수 작가님의 『설득자』가 제게 그랬습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지난 시간 동안 제가 일과 사람, 그리고 저 자신을 대하던 방식들이
조용히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설득은 말을 잘하는 일이 아니라,
내 안의 ‘사람다움’을 꺼내는 일이라는 것을.


1.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설득은 시작된다

책의 프롤로그를 읽었을 때
저는 문득 신차 발표회에서 프롬프터만 바라보던 발표자가 떠올랐습니다.
말은 오차 없이 정확했지만, 마음이 닿지 않았던 그 순간들.
그때 알았습니다.

말보다 먼저 필요한 건,
눈을 맞추는 일, 사람을 보는 일이라는 것을.

누군가의 말이 오래 남는 이유는
그 사람이 단어를 예쁘게 골랐기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이 나를 온전히 ‘보아주었기’ 때문이었음을
PM으로 살아온 세월 속에서 저는 배웠습니다.

설득은 결국 사람을 향한
조용한 시선에서 피어납니다.


2. 질문은 마음의 문을 여는 작은 열쇠

질문을 한다는 건
상대의 세계 안으로 조심스레 걸어 들어가는 일입니다.

경청 없이 던진 질문은
벽을 향해 날아가는 화살처럼 공허하지만,
경청 후의 질문은
상대의 마음을 살그머니 흔드는 따뜻한 손바닥 같습니다.

저는 늘 믿어왔습니다.
위대한 질문이 위대한 결과를 만든다고.
그리고 이제는 더 확신합니다.
질문은 설득의 기술이 아니라
타인을 예의 있게 초대하는 인문학적 행위라는 것을.


3. 마음은 술이 아니라 진심에 기울어진다

“마음을 얻는 것은 술잔이 아니라 진심과 실력에서 나온다.”
이 문장을 읽을 때 저는 소리 없이 웃었습니다.
너무도 공감했기 때문입니다.

30년 가까운 자동차 개발의 세계에서
저를 움직였던 것도,
제가 사람들을 움직였던 것도
결국 그 사람의 책임감, 존중, 진정성이었습니다.

술이 아니라 대화가 관계를 깊게 하고,
분위기가 아니라 태도가 신뢰를 자라게 한다는 걸
저는 수많은 협업의 밤에서 배웠습니다.

마음은 결국
목적이 선명한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기울어집니다.


4. 논리는 설득의 마지막 조각, 마음이 먼저다

아무리 정교한 논리라도
상대의 마음이 닫혀 있다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오히려 “왜 이 선택이 당신에게 더 좋은가”를
나의 말이 아닌 ‘상대의 관점’에서 건넸을 때,
그제야 상대의 눈빛이 부드럽게 바뀌었던
그 미세한 순간들을 저는 잊지 못합니다.

설득은 마음의 이동입니다.
그 마음의 문은
내가 그 사람을 얼마나 이해하려 하는가에 따라 열립니다.


5. 말투가 바뀌면 인생이 달라진다

말투는 우리의 세계를 조금씩 바꿉니다.
부정 대신 긍정,
소극 대신 주체성,
애매함 대신 확신을 담는 순간
우리의 생각과 행동, 그리고 삶의 방향까지 조용히 달라집니다.

저는 세바시와 페이스북에서
수없이 많은 이야기들을 보며 느껴왔습니다.
언어의 결은 곧 그 사람의 온도라는 것을.
결이 고운 언어는
설득의 공기마저 따뜻하게 만듭니다.


6. 부딪힘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비로소 설득이 시작된다

설득은 부드러운 기술이지만,
때로는 부딪힘의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반대는 거절이 아니라 관심의 신호이고,
반문은 무례가 아니라 깊이 들었다는 증거이고,
솔직함은 때로 가장 강한 설득입니다.

저 역시 PM 업무 속에서 배웠습니다.
정중한 요구는 참음보다 강하고,
정확한 발언은 오해보다 밝으며,
솔직한 마음은 논리보다 길게 남는다는 것을.

설득은 갈등을 피하는 일이 아니라
갈등을 관계로 바꾸는 기술입니다.


7. 설득의 마지막은 ‘나’가 아니라 ‘우리’다

저는 오래전부터
사람을 기억하는 습관을 지켜왔습니다.
이름을 저장하고, 먼저 인사하고,
짧은 대화조차 소중히 여기는 습관을.

책은 말합니다.
“관계를 기억하는 사람이 관계를 얻는다.”

이 문장은 제 마음 깊은 곳에 오래 머물렀습니다.
설득자는 결국
상대를 주인공으로 세우는 사람,
‘나’에서 ‘우리’로 이동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
“위대함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위대함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에게 찾아온다.”

이 문장을 읽으며
제가 ‘낭만기술사’라는 이름을 짓던 순간이 떠올랐습니다.
이성적인 기술과 낭만적인 인문학이
조화롭게 흐르는 전문가.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가고 싶은 제 마음의 원형을
책이 다시 깨워준 것만 같았습니다.


다시, 나는 어떤 ‘설득자’로 살고 싶은가


책을 덮고 조용히 생각했습니다.
내가 앞으로 이어갈 설득의 방식은 무엇일까.
자동차 개발의 치열한 현장 속에서,
관계와 갈등이 얽히는 PM의 자리에서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그리고 제 마음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진심으로 듣고,

정확하게 말하고,
솔직하게 요청하고,

따뜻하게 인사하며,

배움을 멈추지 않는 설득자. 설득은 누군가를 향해 내미는 손입니다.


저는 그 손을
더 따뜻하게, 더 단단하게, 더 낭만적으로 내밀고 싶습니다.

오늘도 조용히 마음의 온도를 건네는 설득자,
그 길을 저는 천천히 걸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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