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학기술은 직관적인 번역이 필요하다

기술을 인간의 언어로 번역하는 공학자

by 영초이

한때 컴퓨터는 전문가의 전유물이었다. 코드와 명령어를 이해하지 못하면 이 기계를 사용할 수 없었다. 컴퓨터를 다룬다는 것은 곧 난해한 기술 언어를 배우는 고된 과정이었다. 결국 컴퓨터는 대중에게 닿지 못한 채, 전문가의 세계에만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이미 1970년대 Xerox PARC 연구소는 마우스와 아이콘 기반 인터페이스 등 현대 컴퓨터의 핵심을 발명했다. 하지만 이 혁신은 연구실 밖을 나오지 못했다. 기술은 뛰어났으나, 그것을 세상의 맥락과 연결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기술을 보고 다른 가능성을 떠올린 사람이 있었다. 바로 스티브 잡스였다. 그는 컴퓨터를 전문가의 도구가 아니라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개인의 도구로 바라보았다. 복잡한 명령어 대신 아이콘을 누르고 파일을 폴더에 담는 매킨토시의 방식은, 공학의 언어를 일상의 언어로 번역한 일대 사건이었다. 기술이 사용자의 경험 속으로 들어온 순간, 컴퓨터는 일반적인 도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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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전문성은 장벽이 되어서는 안 된다. 특히 그 분야에 정통한 사람일수록 자신의 언어에 갇히기 쉽다. 세련된 단어와 오탈자 하나하나에 신경을 쓴다. 동료 개발자나 연구원끼리는 자연스럽게 통하는 용어들이다. 복잡한 기술 용어와 전문적인 설명은 때로 지식의 깊이를 보여주지만, 동시에 보이지 않는 장벽이 되기도 한다. 그 용어들은 현장의 사용자나 경영진에게는 외계어처럼 들릴 수 있다.


진정한 전문가는 복잡한 개념을 쉬운 비유로 풀어낼 줄 아는 사람이다. 기술 설명은 정보 전달을 넘어, 상대의 맥락으로 이 기술을 번역하는 과정이다. 투자를 이끌어내고 기술을 실현하고 싶다면 "이 기술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설명하기보다는 "이 기술이 당신의 삶을 어떻게 바꾸는가"를 보여줘야 한다. 공학자는 설계자인 동시에 기술과 사람을 잇는 번역가여야 한다.


공학자들의 기술 번역의 정점은 결국 직관에 있다. 사용자가 이해하기 쉽게 소개하는 것이다. 2007년 아이폰 출시 무대에서 스티브 잡스는 복잡한 기술 사양을 늘어놓지 않았다. 그는 강연 중 소파에 앉아 손가락 하나로 기기를 조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어떤 설명보다 강력하고 직관적인 몸짓이었다.


만약 스티브 잡스가 "전화기, 아이팟, 그리고 인터넷 기기. 이 세 가지를 하나로 합친 제품입니다."라고 말만 늘어놓았다면 애플의 성공은 없었을지 모른다. 그는 말보다 쉬운 번역으로 공학 기술이 나아가야 할 표준을 제시했다.


기술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누구라도 단번에 이해할 수 있도록 번역되었기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결국 기술의 가치는 공학자의 손끝을 떠나 사용자의 일상에 안착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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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다. 공학자가 기술을 만든다고 제품이 완성되지는 않는다. 기획자, 디자이너, 마케터 등 수많은 전문가의 손을 거쳐야 한다. 각자가 추구하는 최적화의 기준이 다르기에 충돌은 필연적이다. 이때 필요한 것이 내 설계의 완벽함만 고집하지 않는 공학적 공감과 이를 전달할 번역 자료다.


사실 이 지점은 공학자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이다. 연구개발 단계에서 공학자들끼리는 같은 기준을 보기에 협업이 쉽지만, 타 부서와의 협업에서는 내 설계를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 내 기술은 충분히 쿨하고 논리는 완벽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쿨한 기술은 혼자서 완성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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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의 사례를 다시 보자. 터치스크린과 모바일 인터넷은 새로운 발명이 아니었다. 공학자 입장에서는 크게 달라질 것 없는, 어쩌면 쿨하지 못한 기술들이 덕지덕지 붙은 제품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아이폰을 혁신으로 만든 것은 이 기술들을 하나의 경험으로 엮어낸 분야 간의 번역과 조율이었다.


디자이너는 복잡한 외형을 단순하게 깎아냈고, 기획자는 이를 대중의 언어로 묶어냈다. 그리고 엔지니어는 디자이너와 기획자가 만든 제품이 구현가능하도록 물리적인 외형과 기능을 구현해 냈다. 각 분야가 자신의 기술을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는 경험으로 번역해 냈기에, 비로소 정교하게 조율된 스마트폰이라는 결과물이 탄생했다.


결국 협업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 기술의 가치를 타 부서의 언어로 얼마나 정확히 번역하여 전달하느냐가 제품의 성패를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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