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기술보다 필요한 기술
매년 1,300만 명 이상의 아기들이 미숙아로 태어난다. 그중 상당 수가 체온 조절에 실패해 결국 죽음에 이른다. 한국처럼 의료 시스템이 잘 갖춰진 나라에서는 체온 조절 실패로 생명을 잃는 비율이 현저히 낮다. 한국에서 저체온증으로 죽는 아이들에 대한 소식은 들은 적이 없다. 하지만, 아프리카와 같은 오지의 아이들에게는 이것이 곧 생사의 갈림길이 된다.
하지만 공학자들이 내놓은 답이 항상 정답은 아니었다. 저개발 국가의 미숙아 사망률을 낮추기 위해 구호 단체들은 최첨단 인큐베이터를 보급했다. 대당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이 기계들은 온도와 습도를 정밀하게 제어하는 공학 기술의 집약체였다. 하지만 현장에서 이 기계들은 오히려 애물단지가 되었다. 아프리카의 전력 공급은 너무도 불안정했고, 지속적인 보온이 필요한 인큐베이터는 수시로 멈춰 섰다. 복잡한 장치들이 소비하는 막대한 전력량과 고장 시 현지에서 수리할 방법이 없다는 점은 치명적이었다. 기술 공급자의 시선에서 정의한 문제는 장비의 성능과 보급률이었으나, 아프리카 현장에서의 최첨단 인큐베이터는 현장과 동떨어진 값비싼 고철 덩어리였다.
스탠퍼드 대학의 임브레이스(Embrace) 팀은 설계자의 책상을 떠나 현장의 부모들에게 주목했다. 인큐베이터라는 공학적 해답은 실제 사용 환경에 적합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들은 정교한 전자회로 대신 특정 온도에서 열을 흡수하고 방출하는 특수 왁스 파우치를 선택했다. 뜨거운 물에 데운 파우치를 침낭 속에 넣으면 아기의 적정 체온이 최대 6시간 동안 유지된다. 직관적이고 간단한 방법으로 아이들의 체온 조절 문제를 해결했다. 아프리카 현지의 엄마들이 손댈 수 없는 문제에서, 할 수 있는 노력으로 바꿔주었다.
그러나 이것으로 모든 것이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기계가 없어서가 아니었다. 결국 체온 유지만으로는 부족했다. 이 아이를 안전하게 병원까지 데려가야 했다. 그러나 마을에서 병원까지 가는 길 자체가 너무 멀고 험난해, 병원에 도착하기도 전에 아기들이 위험해졌다. 그래서 이 문제는 이동 중에도 아이의 체온을 지켜줄 수 있는 접근성으로 재정의되어야 했다. 임브레이스는 이 지점을 파고들어 이동 편의성이 극대화된 제품을 완성했다. 화려한 사양은 덜어냈지만, 엄마가 아기를 품에 안고 이동할 수 있는 인간적 맥락을 채워 넣은 것이다.
그 결과 임브레이스 워머는 기존 인큐베이터 가격의 1%도 안 되는 비용으로 수십만 명의 생명을 구했다. 어떻게 하면 더 완벽한 기계를 만들까?라는 공학적 질문을 어떻게 하면 엄마가 아기를 안전하게 병원까지 데려갈 수 있을까?라는 공감의 질문으로 바꾼 덕분이다. 아프리카에서 벌어지는 안타까운 사건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용자 환경에 맞춘 공감이 필요했다.
결국 진정한 기술의 완성도는 실험실의 통제된 변수가 아니라, 제품이 사용될 실제 환경에 대한 치밀한 공학적 상상력에서 결정된다. 아무리 정교한 알고리즘을 갖추었더라도 그것이 놓일 물리적 공간과 사용자의 신체적 제약, 그리고 사회적 인프라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그 기술은 무용지물에 불과하다. 기술은 가상의 시뮬레이션값이 아니라, 예측 불가능한 외부 변수 속에서도 목적을 수행해 내는 현장성에서 그 가치가 증명되기 때문이다.
공학자가 설정한 최적화의 기준은 단순히 수치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 기술이 누군가에게 사용이 될 때 진짜 사용할 수 있는지를 고려해야 한다. 그래서 이 기술이 사회적 약자들의 기술 장벽이 되지 않는지, 그 기술이 세상에 어떤 선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지 살피는 인문학적 시선이 동반되어야 한다.
아이를 살리기 위해 수천만 원의 치료비를 감당하려는 마음은 부모라면 누구나 같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가정이 그 선택을 할 수 있는 환경에 놓여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진짜 중요한 기술은 단 하나의 완벽한 해답을 만드는 데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절실한 부모들이 아이를 살리기 위해 상황과 형편에 맞는 여러 선택지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문턱을 조금씩 낮춘 다양한 기술들이 존재할 때, 공학기술은 일부에게만 허락된 가능성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열려 있는 기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