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렌즈로 날아든 새들>
운동을 가는 길이었다. 커다랗게 자란 화단을 지나치다 시선 끝, 무언가 걸렸다. 황조롱이 새끼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날 보고 있었다.
'네가 왜 여기서 나와?' 딱 이 심정으로 멍하니 바라봤다. 그러다 어미새가 근처에서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심스럽게 자리를 비켰다. 그저 지나가는 길이었는데 해코지할 인간으로 보여 공격당하고 싶지 않았다. 귀여운 외모와 달리 황조롱이는 맹금류니까.
운동을 마치고 나오니 새끼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집으로 가는 내내 황조롱이가 내 머릿속을 날아다녔다. 비둘기, 참새, 박새, 직박구리는 봤는데 황조롱이라니. 비둘기처럼 에어컨 실외기나 화단에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운다는 이야기를 기사나 동물농장에서 접한 적은 있다. 하지만 이렇게 공사가 끊이지 않는 시끄러운 동네에 올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 동네를 와야 할 만큼 갈 곳이 없었던 걸까?
궁금해져 『카메라 렌즈로 날아든 새들:몽골의 검독수리부터 우리 아파트의 황조롱이까지 』를 읽게 됐다.
책은 도시부터 한국의 철새도래지, 몽골, 시베리아의 오지에서 볼 수 있는 새를 소개한다.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새는 이미 언급한 참새, 박새, 직박구리가 있다. 도시가 점점 팽창하면서 김포의 뒷산에는 수리부엉이가, 고양시의 아파트에선 발코니에 놓인 화분에서 황조롱이가 새끼를 키웠다. 황조롱이는 바위 절벽에서 번식을 하는데 아파트 외벽이 그렇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살던 터전을 빼앗았으니 함께 살아야 한다는 말은 쉬워도 실천은 어렵다. 제비가 처마 밑에 집을 짓는 일은 흔하지만, 매일 들리는 새소리와 함께 똥과 동물 사체까지 감수하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이야기 속의 사람들은 달랐다.
황조롱이에게 공간을 내주신 집주인분들은 청소는 물론 가끔 먹이를 주시며 공동육아를 하셨다. 또 주유소 사무실 안에 터를 잡은 제비를 위해 더러움을 감수하면서 같이 지냈고 일주일간 주차해 둔 트럭 범퍼 틈에 둥지를 튼 딱새를 위해 생계를 잠시 멈춘 트럭 주인까지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지켜낸 딱새 새끼들이 많은 사람들이 다녀간 후 사라지고 말았다. '아, 결국 인간이...'란 탄식이 나왔는데 의자 밑에서 배가 불룩한 누룩뱀을 발견됐다. 인간이 아니라 뱀이 한 짓일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트럭 주인은 이 또한 자연의 법칙이라며 뱀을 놓아주었다.
물론 인간이 한 개체를 죽임으로써 그 종의 자취를 지워버린 사례도 있다. 한국전쟁 이후 오랜만에 황새가, 그것도 한쌍으로 발견되었다. 그 사실은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는데 사흘 만에 수컷이 사냥꾼에게 희생되고, 다음 날 누군가 알을 훔쳐갔다. 암컷 황새는 무정란을 낳다 동물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이후 복원이 시작되어 2010년대가 되어서야 황새는 다시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인천공항 근처의 섬에서 장다리물떼새가 번식을 시도했다. 인공적인 시도를 하지 않아도 집단 서식지가 된 것이다. 하지만 대규모 개발 사업을 위해 바닥이 파헤쳐졌다. 새를 찍으려는 사람이 몰려들어 새들에게 방해가 되었다. 줄어든 서식지와 인간의 과한 관심에 장다리물떼새는 이듬해 보이지 않았다.
탐조 여행을 위해 떠난 몽골의 국립공원과 러시아의 시베리아에서는 크기가 큰 새들, 큰고니, 검독수리, 쇠재두루미등을 만날 수 있다. 이런 곳에서는 자연이 우선이라 사람들은 날벌레, 모기와 싸우느라 지친다. 새들에게 접근하는 것도 장기 모니터링(조류링:bird ringing를 사용) 연구를 통해 보전 필요성을 제시하고 효과적인 보호 대책을 세우기 위해서다.
우리 주변과 먼 곳에 살고 있는 새들을 보면 한 생명체가 빠르게 바뀌는 환경 속에서 적응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 알 수 있다. 본능에 각인된 장소와 비슷한 아파트를 고르고, 뜨거운 기온에 더 멀리 날아 쉴 만한 곳을 찾아 나선다. 인간이 욕심을 내지 않고 건드리지 않는다면 이런 노력 없이도 잘 흘러갈 텐데 말이다.
그날 화단에서 우연히 마주친 황조롱이 새끼가 몇 달이 지난 지금도 문득 떠오른다. 좋은 집주인을 만났던 걸까, 어미와 다시 만났을까, 하늘을 마음껏 날고 있을까, 아니면 이 시끄러운 동네를 벗어나 더 좋은 둥지를 찾았을까.
다음에 또 마주치게 된다면 이번엔 조금 더 오래 바라보고 싶다. 서로 놀라지 않을 만큼 자연스러운 만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