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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의 시대

이것도 난 모르겠다

by 방구석예술가
알로록 달로록 유리




어느 날이었다.

몇 명 없는 카톡 친구 목록에 변화가 생긴 것이.

주르륵 만화사진으로 바뀌었다.


"이건 뭐람. 애니메이션화 시킨 건가."


곧이어 AI에게 "지브리풍으로 바꿔줘."라고 말하면

그런 식으로 바꿔준다는 걸 알게 되었다.

셀카도 찍지 않고, 보정어플도 쓰지 않고,

AI에게 말 한번 붙여본 적 없는 나에겐 생경했다.


뒤로만 가려는 나와는 반대로,

인류는 또 한 번 새로운 시대로의 계단을 오르고 있음을 느꼈다.


예술가들이 많이 모여 이야기하는 스레드에서는 난리가 나 있었다.

지브리 스튜디오의 수장 미야자키하야오도 AI를 비판했다는 기사도 보았다.

그때까지 나는 별 생각이 없었다.


첫째. 나에겐 애니메이션화시킨 결과물로 보였을 뿐. 지브리를 담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지브리의 색감도, 감성도 전혀 담겨있지 않았기에 우스울 뿐이었다.


둘째. 사람이 없었다면 애초에 나오지도 않을 결과물인데 그게 의미가 있나? 싶었다.

따라 하는 가짜일 뿐인데, 그런 가짜를 의식할 필요가 있나?

거기다 지금도 비슷하게 서로를 따라 하는 창작가들은 널렸지 않은가.


나의 의견에 어떤 분이 AI는 사람이 다 보지 못할 방대한 자료를

몇 시간 만에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본인의 창작물을 만들 수 있음을 알려 주었다.


나는 그래도 "에이~~~~ 컴퓨터가 하는 거는 다르지~~ 감성이 없지!!"라고 생각했지만,

AI는 모방을 통해서 내가 가장 중요시 여기는 [감성], [창의성]도 그럴듯하게 표현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가짜임을 알아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것도.


달갑지 않았지만 "에이..." 하는 의구심을 남겨 두었다.

.

.

.

내가 충격을 받은 건 몇 달 뒤, 의외의 곳에서였다.

미용실 헤어 디자이너분과의 대화에서였다.


"영상 레퍼런스를 보여주고, 이런 이런 식으로 만들어줘. 하면 다 만들어줘.

내가 아이디어 짤 필요도 없고, 다 편집하고 할 필요가 없고.

영상프로그램 켤 필요도 없다니까?

그래서 그걸로 광고 붙여서 하는 사람들 엄청 많다니까?? 어르신들도 다 해.

AI가 다 해줘. 전부 다."


헤어 디자이너분은 본인도 부업으로 그 일을 할 거라며 희망에 차서 말하셨다.

그분께는 새로운 기회로 새로운 세상으로 가는 계단이 펼쳐진 것이었다.

그분은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몰랐다.

내가 제일 듣기 싫었던 영상수업을 대학교 4년 내내 들어야 했다는 것도 당연히 몰랐을 거다.


나는 과제물이라고 하기도 부끄러운 영상들을 4년 내내 만들었었지만,

어쨌든 동영상프로그램을 켜고 영상작업을 해 본사람은 알 것이다.

0.1초를 다룬다는 것은, 말 그대로 노가다작업이다.

같은 노래를 여러 번 듣고, 영상을 앞에서 뒤로 무한정 돌려보고,

타이밍을 다시 맞추고, 편집을 다시 하고,

그렇게 몇십 번 반복하면 달이 지고 해가 뜬다.


나는 여러 날들이 머릿속에 생각났다.

빼곡하게 그림을 그려 놓고 어질러지게 글을 쓴 내 노트가 생각났다.

학교 컴퓨터실에 남아 밤새 영상작업을 하며 먹던 레드불캔이 떠올려졌다.

레드불캔을 찌그러 뜨린 뒤 새벽하늘을 바라보며 이야기하던 동기 녀석이 생각났다.

그 새벽의 찬 공기를 마시며 입김을 불던 모습이 떠올려졌다.

그런 시간들.

그런 시간들이 없어도 무언가를 만들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어이가 없는 일이다.


지금의 나는 그림을 더 많이 그리지만, AI가 뚝딱 그림을 그려낸다는 사실에는 별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왜 영상을 뚝딱 만든다는 말에는 흔들리게 된 걸까.

아마도 내가 울며 겨자 먹기로 들었던 4년의 영상 수업이

AI를 통해선 몇 초면 퉁쳐진다는 게 충격적이었던 것 같다.


아직도 본질을 창조하는 인간이 모방하는 AI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에게는 따라 해서는 잡히지 않는, 그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예술은 특히 정말 미묘한 감각을 담아내는 분야이기 때문에 흉내로는 부족하다.


그럼에도 사람이 설 자리는 어디이고, 예술의 방향은 어디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전공자가 아니어도, 재능이 없어도, 예술적 작업물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춰 주기도 한 것인데,

그렇다면 누구나 예술을 누릴 수 있는 셈이다.

내 주변 사람들은 카톡 프로필 사진을 지브리풍으로 바꾸면서 다들 행복해하지 않았던가?


모든 일에는 양면이 있으나 나는 어두운 쪽에 서 있으니, AI가 달갑지는 않다.

내가 망해가고 있는 게 AI 때문은 아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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