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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다른 사람들

수용과 인정

by 하빛선

살면서 나와 생각이 전혀 다른 사람들을 만나 본 적이 있는가?

그들과 함께 일하거나 생활해 본 적이 있는가?

사사건건 나와 다른 의견을 내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에게 말한다. "정말 달라도 너무 달라"라고.

그 사람도 나를 두고 그렇게 말하겠지.


그렇게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만날 때면 내 마음이 자꾸 쪼그라든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저 사람은 또 어떤 트집을 잡을까? 미리 겁을 먹게 된다.

그 사람을 설득하기 위해 많은 말을 해야 한다. 어쩔 때는 내 의견에 동의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쩔 때는 강하게 반대하기도 한다. 그래서 늘 그 사람과의 대화가 피곤하다.


나는 내가 나름 정의롭다고 생각했었다. 나는 내가 조금은 지혜롭다고 생각했었다. 문제해결 능력도 어느 정도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여지없이 그 사람은 나의 생각을 무너뜨린다.

나의 생각에 브레이크를 건다. 나는 그 사람으로 인해 하려던 일을 자주 포기하게 된다.

무엇이 옳은 것일까. 누가 맞는 것일까.

정답은 없다. 그의 말이 정답이 될 때도 있고, 내 말이 정답이 될 때도 있다. 하지만 끝없이 이어지는 의견대립으로 내 마음이 쪼그라든다. 내 말이 오답이 될까 봐 겁을 먹는다


이렇게 쪼그라든 마음을 펴는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했다. 아픈 시간을 보냈다.

나와 다른 그들의 생각을 수용하는 것, 그것이 내가 찾은 답이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라고 생각의 크기를 넓혀본다. 내 생각의 크기를 넓히니 받아들이지 못할 일이 별로 다.

내가 그 사람의 일을 인정할 때 책임은 내 몫이 아니다. 내게는 편안함이라는 녀석이 찾아온다.

나는 더 이상 쪼그라들 필요가 없게 된다.


반대로 내 의견이 관철되었을 때 나는 무서운 책임감을 가지게 된다. 내가 맞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하니까.

나는 더 큰 부담으로 움츠러든다.


우리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다. 또한 생각의 크기도 다른 사람들이다. 내 그릇으로 상대방의 생각을 수용할 때 우리는 조금 더 성숙된 모습으로 새롭게 펼쳐지는 상황을 볼 수 있다.


수용이라는 것은 '동의'라는 의미가 아니다. 그냥 인정하고 받아들여 준다는 의미이다. 내가 상대방의 생각을 인정해 주면, 대부분 나의 생각도 받아들여진다. 그러면 나와 상대방의 관계는 매끄러워진다.


살다 보니 정답이 없다는 걸 알게 된다.

내가 옳다고 끝까지 주장한 일도 결국은 완전한 성공이 아니었다. 그리고 상대방이 옳다고 강하게 주장한 일이 정말 옳았던 적도 있었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의견은 내가 싸워야 할 대상이 아니었다. 내가 생각지 못한 부분을 읽어 주는 새로운 관점이었고, 내가 찾아내지 못한 또 다른 방법이었다. 그것이 짜증난다고 해서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결국은 자존심때문에 인정할 수 없는 싸움일 뿐이었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사는 삶, 그것이 바로 관계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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