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좋은 성격으로 펼 수 없는 마음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마음

by 하빛선

좋은 성격으로 펼 수 없는 쪼그라든 마음

성격이 참 좋네요. 정말 좋은 분 같아요.

이런 말들을 많이 듣고 사시는 분들이 주변에 많이 있을 것이다. 성격이 좋은 사람들을 보면 보통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이 많지 않다. 어쩌면 어려움이 없다기보다 힘든 상황속에서도 관계를 잘 풀어나가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나는 내가 성격이 좋은 줄 알았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과의 문제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부터 성격이 좋다는 소리를 많이 듣고 자랐다. 부모님 말씀도 잘 듣고, 언니나 동생과 싸우지도 않고,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고 어디를 가든 모나지 않게 드러나지 않게 그냥 그렇게 평범하게 잘 살아왔기 때문에 사람들은 나에게 성격이 좋다고들 말했다.


예전에는 나와 맞는 사람과 맞지 않는 사람을 구분하지 않았다. 모두에게 잘 맞는 사람이 되려고 애썼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나와 잘 맞는 사람들과 있을 때나 좋은 사람들을 만나면 나는 덩달아 이해심 많고 성격 좋은 사람이 되지만, 나와 잘 맞지 않는 사람들을 만날 때는 마음이 예민해지고 자꾸 쪼그라들어 소극적이 된다.


갱년기라서 그런지,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나이가 들면 어린아이가 되어간다는데 나도 조금씩 젊어지고(?) 있는 걸까? 나는 이제 점점 예민해지고, 마음이 자꾸 움츠러든다.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 귀를 쫑긋세우고, 그 말들과 행동들로 인해 마음은 상처투성이가 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변해가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혼란스러워진다. 나는 원래 쿨한 사람이었는데 내가 변한 걸까. 아니면 사람들이 변한 걸까.


어쩌면 나는 원래부터 예민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마음이 좁은 사람이었는데 자라면서 환경에 의해 무던해진 것인가 싶기도 하다. 내가 너무 예민하기 때문에 오히려 둔감해지려고 했던 건 아닐까?

만일 내가 예민하게 굴었다면 나 자신을 잘 견뎌낼 수 기 때문에 스스로 신경 끄기를 선택했는지도 모르겠다. 스트레스가 많은 일들이 있을 때도 나는 말로는 괜찮다고, 견딜만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자꾸 소화도 되지 않고 두통도 생긴다. 동료들은 내가 괜찮은 것 같아도 몸은 저절로 스트레스에 반응을 하는 거라고 말한다. 정말 그런 거 같다.


그럼에도 가끔은 예민해지거나 마음이 쪼그라드는 것이 싫지 않을 때가 있다. 내 마음이 민감해지는 수많은 시간 속에서 터득한 게 있다. 내가 간과했던 사람들의 마음, 자주 상처받는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예전에는 내가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말을 깊게 공감하지 못했다. 뭐든지 쉽게 생각하고, 큰 문제가 아니면 모두 수용하려고 했다. 내가 가끔 하는 말이 있다. "죽는 일 아니면 다 괜찮아"이다. 죽을 것 같은 일이 아니라면 뭐든지 수용해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죽을 것 같은 일이 꼭 대단한 일들이 아님을 깨닫게 되는 데는 그다지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았다. 사람들은 아주 사소한 일에도 죽을 것 같이 힘들어지기도 하니까.


그리고 예전에는 예민한 사람들의 지적들이 늘 불편하기만 했다. '뭐 그런 것까지 신경을 쓰지?' '별 것도 아닌 일에 또 트집을 잡네.'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별 것인 일이었음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그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그 사람들은 자꾸 마음이 움츠러들고 결국 마음의 문을 닫게 될 테니까.


이제는 나와 비슷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만날 때, 말이나 행동을 더욱 조심하게 되고, 상대방의 필요에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게 되고, 불편함이 없게 배려하려고 한다. 마음이 자주 쪼그라드는 사람들을 만나면 어떻게 대해줘야 할지 여러 번 생각해 보기도 하고, 이미 쪼그라든 사람들의 마음을 어떻게 다림질할 수 있을지 고민도 한다.


내 주변에 마음이 닫혀 스스로 혼자임을 선택한 지인들이 있다. 처음에는 왜 그렇게 혼자만 갇혀 지내나 궁금하기도 했다. 연락을 끊고 사는 것이 이해가 안 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분들의 마음이 얼마나 쪼그라들어 있을지 생각하니 마음이 아린다. 나도 한동안은 상처로 인해 혼자임을 택한 시간들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상처가 조금 아물기는 했지만, 한번 받은 상처는 나를 가두고 사람들을 회피하게 만들었다. 다시 집밖으로 나오기까지 꽤 긴 시간이 걸렸다.


이제는 성격 좋다는 말을 듣지 않아도 괜찮다. 성격 좋은 사람이 아니라 나처럼 힘들었던 마음을 찾아 같이 위로하며 스스로 싹싹 다릴 수 있도록 물도 떠다 주고, 빳빳하게 잘 다릴 수 있게 마음 한 귀퉁이도 잡아주고 싶다. 마음이 쪼그라들었던 경험이 있으니 사람들의 쪼그라든 마음을 조금은 더 잘 이해하고 보듬어 줄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오늘도 쪼그라든 마음을 가지고 쪼그라진 마음 펴는 연습을 해 본다. 마음 좋은 척, 성격 좋은 척하지 않고 그들의 상처가 아물기를 바라며... 손을 내밀어 본다. 그들의 마음이 펴지는 순간 내 마음도 활짝 펴질 것 같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사람을 통해서 치유되는 법이니까.



keyword
이전 01화마음이 쪼그라들었다